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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4일 오전 부산지방법원 제6 민사부 김종기 부장판사는 외교통상부에 대해 [한일협정] 관련문서의 송부를 촉탁하기로 결정했다. 재판부는 또한 [한일협정]의 주역인 김종필을 증인으로 채택해 달라는 신청과 관련해서는 관련문서를 검토한 후 추후 결정하기로 했다.

이날의 결정은, 한국인 징용피해자 6명이 부산에 연락사무소를 두고 있는 일본 미쯔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의 1심 재판 과정에서 내려진 것이다. 원고들은 일제강점기에 징용 당해 미쯔비시중공업에서 강제노동을 했던 피해자들로서, 지난 2000년 5월 1일 미쯔비시측에 대해 미불임금의 지급과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징용과 일본군'위안부' 등 일제의 강점에 의해 피해를 입은 한국인들은 1970년대부터 일본에서 다수의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일본의 재판소가 그들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한국에서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 것이었다. 이 소송은 일본의 법과 재판소의 보수성으로부터 자유로울 뿐만아니라, 피해당사국이기도 한 한국에서 제기된 것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서 제기된 소송과 함께 주목을 받아왔다.

그간의 재판과정에서 중요한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1965년 [한일협정] 체결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국가의 청구권 외에 한국인 개인의 청구권도 포기했는가라는 점이었다. 이날의 결정은, 그 점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관련문서의 공개와 김종필의 증언이 필요하다는 원고측 변호단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문제의 [한일협정] 관련문서는 한일 양국 모두에 의해 공개가 거부되어 왔다. 그 결과 개인의 청구권과 관련한 해석이 대립되어 왔으며, 소송이 제기되기에까지 이르렀다.

이날의 결정은, 한일간의 과거청산에 관련된 중요한 법적 쟁점을 종결지을 수 있게 했다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게다가 그러한 결정이 한국의 법원에 의해 내려졌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라고 평가된다. 협정 체결 후 37년 동안이나 공개를 거부해 온 한국 정부가 어떤 판단을 내리게 될지 주목된다.

공판이 끝난 후 법원 구내식당에서 원고측 참가자들의 정리모임이 열렸다. 그 자리에는, 원고와 변호단, 지원단체, 공판을 참관한 대학생들이 모여 공판의 의미를 확인했다.

모임에서 원고인 이근목씨(81세)는, "재판부의 용기있는 결정에 감사하며, 더욱 힘을 내서 이겨내겠다"고 다짐하고, 대학생들에게 "단지 개인의 고통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의 아픔에 관련된 문제이니 젊은 여러분들이 힘을 보태달라"고 부탁했다. 정재성 변호사(43세)는 "1심 재판 종결을 향해가고 있는 시점에서 매우 커다란 진전을 보여준 결정이었다"라고 평가했다.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이희자 이사(60세)는 "한국 정부는 이미 전산작업이 끝난 48만여명의 징용피해자 명단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 명단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일제 피해사실을 외교통상부 스스로가 은폐축소하는 짓으로 유족들의 가슴에 다시 못을 박는 것"이라고 하였다.

재판지원회 김창록 대표(42세, 부산대 교수)는 "법원의 획기적인 결정을 환영하며, 이를 계기로 한국의 법원에서 뒤늦게나마 피해자들의 아픔을 감싸줄 수 있는 판결이 나오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문서송부촉탁결정은 민사소송법에 의해 문서소지자를 상대로 그 문서를 법원에 송부하여 줄 것을 촉탁하는 것으로 외교통상부가 법원의 결정에 승복할 것인지가 향후의 관심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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