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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일 오전 경북 포항 해변에 도착한 미군이 상륙작전을 펼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상륙정이 해변에 도착하기 직전 한 시위자가 훈련장으로 뛰어들었다. 훈련장 부근에서 대기중이던 경찰이 뒤쫓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한미 군사훈련장의 반전 깃발 / 김호중 PD


수평선 너머로 태양이 고개를 내민 아침, 포항 흥해읍 독석리 해변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같이 평온한 침묵은 해변에서 멀리 떨어진 미군과 대한민국 해군 소속 상륙함 6척이 작은 점처럼 보이는 무엇인가를 토해내면서부터 깨지기 시작했다.

상륙함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것은 상륙장갑차인 LVT와 AAV 무리. 일렬로 늘어선 장갑차들은 서서히 육지로 향하기 시작했고, 이날 '독수리 훈련'의 일환으로 준비된 한미연합상륙훈련 리허설은 순조롭게 시작하는 듯했다.

"장갑차들의 상륙 직전인 오전 8시께, 해안에서 여러 차례 폭발이 있을 겁니다. 이것은 전시라면 상륙함에서 장갑차들을 지원하기 위한 엄호사격을 나타내는 것이죠. 이어 전투기들과 코브라 등 헬기들의 지원사격으로 상륙을 지원하게 됩니다."

미군 관계자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기자들에게 훈련 리허설을 설명했다. 하지만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 명의 민간인이 구호를 외치며 훈련장인 해변으로 뛰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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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불기둥이 솟는 가운데 장갑차들이 상륙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전쟁반대! 연합훈련 결사 반대한다"

이들은 연합전시증원훈련·독수리 훈련 반대를 위해 포항에 모인 민족화해자주평화통일협의회(아래 자통협),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아래 실천연대) 등 단체 회원. 이들이 뛰어든 곳은 폭약이 설치된 곳과 아주 가까웠다.

"위험해! 곧 폭탄이 터진단 말야!"

순간 당황한 군 관계자의 절규에 찬 외마디 소리가 들렸다.

시위자들을 본 기자들이 이들을 향해 달렸고, 이들의 뒤를 쫓던 경찰들이 뒤엉켜 고요했던 해변가는 아수라장으로 돌변하고 말았다.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장갑차들은 육지를 향해 괴성을 토해내며 계속해서 다가왔다.

두 명의 시위자 중 한 명은 곧바로 경찰에 붙잡혔지만, 한 사람은 '대북 전쟁 겨냥한 연합전시증원(RSOI)·독수리 연습 반대'라고 쓰여진 플래카드를 두른 채 100여m를 뛰어오다 붙잡히고 말았다. 다행히 폭탄은 터지지 않았지만 아찔한 순간이 지나갔다.

"기자들이 위험한 곳으로 가니까 더 엉망이 된 것 아냐!"

한 군 관계자가 불만섞인 목소리를 토해냈다. 사실 지난해 3월 22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열렸던 상륙훈련에서 8명의 시위자들이 훈련에 반대하는 시위를 가졌다. 이를 걱정했던 군 당국은 경찰에 도움을 요청, 이미 마을 근처 곳곳에는 경찰 병력이 배치된 상태였다.

오전 7시 45분께 있었던 기습시위로 상륙훈련은 긴장된 분위기에서 시작했다.

▲ 상륙정에서 내린 미군들이 자동화기를 준비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번 상륙훈련은 방어용 훈련이다"

훈련 예정시간인 8시. "폭발 5, 4.... 1", "쾅, 쾅, 쾅" 천둥소리와 같은 폭발음이 들린 뒤 5대의 장갑차들이 육지로 올라오는 동시에, 하늘에서는 전투기와 헬기들이 장갑차를 지원했다. 안전하게 도착한 장갑차에서 수십 명의 전투병들이 나와 진격하기 시작했다.

"Go, Go, Go! Go to the Hill!"

7차례에 걸쳐 상륙을 시도한 한·미 연합군은 1시간 40여분 동안 실전을 방불케 하는 리허설 훈련을 선보였다. 실제 훈련은 다음날인 22일 실시된다.

이번 상륙훈련은 "유사시 적 후방에 기습적인 상류작전을 감행하여 적 후방지역에 제 2전선을 형성, 적을 앞뒤에서 공격하여 궤멸시킨다는 시나리오 아래 한·미 해병대 연합상륙작전능력 향상과 공조체제 구축을 위해 실시됐다"고 해병대 측은 밝혔다.

RSOI와 독수리 연습은..

연합전시증원(RSOI)연습

연합전시증원(RSOI)연습은 한·미 연합사 주관 하에 전시 한반도에 증원될 미 증원군의 수용, 대기, 전방이동 및 통합절차와 이를 지원하는 한국군의 전시지원, 상호군수지원, 동원, 연합후방지역조정관(CRAC)임무, 전투력 복원절차 등을 컴퓨터 모의를 통해 실시하는 지휘소 연습이다.

연합전시증원연습은 1994년부터 연례적으로 실시되고 있으며, 한국군은 국방부, 합참, 각군본부, 작전사급 부대가 참가하고, 미군은 연합군 사령부와 주한미군 사령부, 미 증원부대 등이 참가한다.

독수리(FE)연습

독수리 연습(FE : Foal Eagle)은 한반도에서 전쟁억제를 위해 한·미간의 군사적 결의를 과시하고 연합 및 합동작전태세 완비를 위해 1961년부터 연례적으로 실시하는 연합·합동 야외기동 연습이다.

1999년의 독수리 연습은 한반도 내 한·미 양국군과 미국 본토로부터 전개되는 증원전력, 연습지역내 행정관서와 예비군이 참가하여 실시하였다. 이 연습은 후방지역에 북한의 특수전부대가 침투하는 것에 대비하는 연습으로 여단 쌍방 야외기동훈련, 연합상륙작전 연습이 중점적으로 실시되었다.

또한 연습기간 중 부산, 울산 광역시와 경남에서는 화랑훈련을 병행 실시하였고, 2부 연습간에는 군단급 야외기동훈련(FTX)과 한·미 해병대, 해·공군이 연합상륙작전을 실시하여 한·미 연합 전투준비태세를 향상시켰다.
이날 상륙훈련 리허설에는 총 3천여명(한국군 연대급 2천여명, 미군 1천여명)의 병력이 참가했다. 이와 함께 상륙함 6척(해군 3척, 미해군 3척)을 비롯해 수륙양육장갑차 총 30대, 공기부양정 1대, 공군지원 전투기 와 코브라 헬기 등 다양한 무기들이 선보였다.

하지만 최근 이 훈련과 관련, 북한을 공격하기 위해 준비된 훈련이라는 의혹을 의식해서인지 미군 관계자는 "적지에 후방을 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인천상륙훈련도 그랬다"라면서 "특별한 지역이 상정돼 있던 팀스피리트 훈련과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또한 "평소 해왔던 RSOI 연습과 야외 기동훈련인 독수리 연습의 일환일 뿐"이라고 "통상적인 의미 외에는 다른 목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대북 전쟁 겨냥한 RSOI와 독수리 훈련 중단하라!"

하지만 이날 시위를 준비했던 관계자들의 입장은 달랐다. 1차 시위가 실패로 돌아간 뒤 20여명의 시위 준비자들은 경찰에 발각돼 훈련장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강제 이동됐다. 하지만 훈련이 끝날 무렵 10여명의 참가자들이 다시 기습 시위를 벌이려 시도하다 경찰에 막히고 말았다.

결국 이날 훈련이 끝날 즈음인 오전 8시30분께, 인근마을에서 시위를 준비했던 자통협, 실천연대,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민주주의민족통일울산연합, 부산주한미군철수운동본부 등 6개 단체 소속 회원 20여명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오늘 우리는 한·미 연합훈련인 독수리 훈련의 일환인 대규모 상륙훈련이 벌어지는 포항 앞 바다에 서 있다"며 "우리가 이곳에 선 것은 대북 공격적 성격의 RSOI와 독수리 훈련의 중단과 나아가 부시정권의 한반도 전쟁위협 중단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는 이 땅에서 그 어떤 전쟁도 반대하고 진정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모든 세력과 힘을 합해 부시 정권에 한반도 전쟁위협을 반드시 분쇄하고야 말 것이다"라고 밝혔다.

▲ 경찰에 의해 훈련장 접근이 저지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인근도로에서 훈련중지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들이 이번 훈련을 북한을 겨냥한 공격용 훈련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우선 미국 본토에서까지 5천명의 병력이 동원되는 것을 포함, 무려 20여만 명이 훈련에 참가하는 것.(이라크 전쟁 동원 병력이 30여만 명이라는 점에 주목)
▲ 이번 훈련을 위해 F-117 스탤스기와 항공모함 칼빈슨 호 등 최첨단 무기를 배치한 점.
▲ 김정일 정권의 전복, 북한군 궤멸, 평양 장악을 내용으로 하는 작전계획 5027에 따라 훈련되는 것.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20여명의 단체 회원들은 'Stop RSIO', '팀 스피리트 훈련 부활한 연합 훈련 중단하라'는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흔들며 "대북 전쟁 리허설, 연합전시증원훈련 중단하라", "전쟁위기 고조시키는 연합전시증원훈련 중단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연합훈련 중지하라"는 등을 외치며 기자회견을 끝낸 뒤 해변 옆 마을을 따라 거리행진을 벌였다.

▲ 전방을 향해 조준하고 있는 미군.
ⓒ 오마이뉴스 권우성
▲ 여러대의 대형헬기가 상륙작전 중인 군인들의 머리위로 날아오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모든 행사가 끝난 뒤 독석리 해변은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미군과 해병대 관계자들은 훈련이 무사히 끝난 것에 대해 만족해했다. 한 미군은 "오늘 훈련에 만족한다"며 "한국에서 미군에 반대하는 분위기에 대해서는 할말 없다"고 말했다.

"북핵 문제와 관련 한반도 정세에 관심이 많아 취재를 왔다"는 일본 NTV 기무라 기자는 "한·미 연합 훈련을 통해 전쟁을 억제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군 관계자의 말은 이해하지만 이를 봐라! 이번 훈련이 공격용이 아니면 무엇인가"라고 말해 한·미 연합군의 입장을 일축했다.

그는 이어 "일본 국민들은 이라크 전쟁보다 북핵문제 등 한반도 정세에 더 관심이 많다", "북한의 핵 개발의 근본적 원인은 미국이지만 함부로 미국을 비난하기는 어려운 문제다", "한국과 일본은 현실적으로 이라크 전을 지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등의 말을 했다.

이날 훈련에는 110여명의 기자들이 참가해 열띤 취재경쟁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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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실천하고 나누기 위해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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