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에서 셰익스피어의 초기 비극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를 공연한다. 국내 초연인 이 작품은 모가지가 잘리고 손목이 잘리는 등 잔인한 표현으로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작품이지만 자극적인 내용이 인기 있었던 엘리자베스 시대에는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이었고 <리어왕>, <오셀로>등 셰익스피어의 대표적 비극의 기초가 되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공연은 국립극단의 예술감독 김철리씨가 직접 연출을 맡았다. 그는 국립극단 출신이 아닌 최초의 예술감독으로 국립극단의 구태의연한 작품선정에서 탈피 다양하고 예술성 높은 작품을 발굴 공연하여 국립극단의 성격을 성공적으로 바꾸어 놓았다고 평가받고 있다.
3월 25일 오후 국립극단 연습실에서 김철리씨와 만나 공연 준비중인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에 관해 이야기 들었다.
- 연습중인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에 관해 설명해 달라.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는 셰익스피어 초기 비극으로 정치적 성격을 많이 가지고 있는 로마를 무대로 한 작품이다.
로마라는 나라는 제국주의 국가처럼 해외 정복을 해온 나라이다. 타이터스 장군이 국력신장을 위해 몇 십 년 동안 영토 확장을 하고 개선을 하는 데서 연극은 시작한다. 로마의 두 왕자가 서로 왕권 다툼을 한다. 한 명은 자기가 장자니까 황제 계승권을 가져야 한다고 하고 또 다른 한쪽은 자유로운 국민의 선택에 의해서 선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타이터스가 개선을 하자 민중들은 타이터스를 황제로 추대하려고 한다. 타이터스는 자기에게 걸맞지 않은 자리이기에 노인으로 돌아가겠다고 한다.
새로 황제가 된 새터나이너스는 타이터스가 잡아온 적국의 여왕을 마음에 들어해서 결혼하게 되고 여왕의 두 아들은 일종의 복수심으로 타이터스의 딸을 사냥터에서 납치해서 강간하고 폭행을 가하고 손도 자르고 코도 자르고 한다. 또한 타이터스의 아들 둘은 모함을 쓰고 죽게 된다. 타이터스도 모함 속에서 손목이 잘리고 수많은 폭행이 자행된다.
타이터스가 복수해 나가는 이야기가 기본 줄거리다. 끝에 가서 장남 루시어스는 추방 당해서 해외로 갔다가 외세를 끌어들여서 로마를 뒤집어엎으며 연극은 끝난다.
굉장히 오래 전, 1500년대말에 셰익스피어가 쓴 작품이지만 400년 이상 지난 지금도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많은 작품이라 생각한다. 특히 우리 한국의 정치적 문제도 그렇고, 조금 확대해서 보면 이라크 전쟁 문제도 그렇고.
사람의 권력욕이라는 것은 끝이 없다. 권력욕에 의한 비극적인 성격과 인종차별의 문제, 종교차이의 문제, 남성과 여성의 문제 이런 것들을 골고루 담고 있는 작품이다."
- <타어터스 앤드로니쿠스>는 이번이 국내 초연이다. 외부의 상업극단이나 실험극단이 아닌 국립극단에서 이 작품을 최초 공연하게 되었는데 이 작품을 공연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셰익스피어의 대부분의 작품은 지금도 소통되는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다른 작품보다 강렬한 작품이다. 셰익스피어의 다른 작품들이 사변적이고 문학적인 면이 많아 무대에 올리기에 어려운 데 반해 이 작품은 엑티브하고 액션이 많은 작품이다.
사실 국립극단 오기 전부터 언젠가 한 번은 꼭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작품이다. 국립극단이라는 조건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조금 더 쉽게 해보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실험적으로 가지는 않는다. 대본을 거의 삭제하지 않고 무대나 연극을 풀어가는 방식을 현대적으로 끌고 오는 것이지 대본을 삭제, 첨삭해서 실험적으로 만드는 작품은 아니다."
- 연극 공연으로서는 특이하게 '고교생 이상 관람가', '임산부와 노약자의 관람을 금한다'라고 하는데 얼마나 잔혹한가?
"잔혹하다, 잔인하다라는 것은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이다. 우리가 잔인하다, 잔혹하다 그러면 시각적으로 피가 튄다든가 이상한 소리가 난다든가 조명을 충격적으로 한다든가 이런 쪽으로 생각하게 된다. 저는 이렇게 풀겠다는 생각은 없다.
작품 자체에 무대에서 죽는 사람이 10명이 넘는다. 잘린 모가지, 잘린 손 이런 것들이 예고 없이 나오기 때문에 이것이 물론 가짜지만 굳이 더 복잡하고 희한하게 자극적인 것을 안 해도 그 자체가 충격으로 와 닿을 수 있다.
사실 별안간 머리통이 나오거나 잘린 손이 나오거나 하는, 대본에 있는 데로만 하더라도 임산부들은 쇼크를 먹을 수 있다. 그것이 아무리 가짜라 해도. 우리가 관객을 생각해야 되기 때문에 피가 무대 전체를 덮는다든가 그런 식은 아니다.
피를 무대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은 하고 있다. 잘못하면 관객에게 알맹이는 빼버리고 쇼크만 주는 것이 되어 버린다. 20여일 남았으니까 조금 망설이고 있다. 무대에서 연습 해보고 굳이 그럴 필요까지 없다 싶으면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잔혹성만 가지고 갈 것이다. 괜히 군더더기처럼 관객에게 충격 효과만 주게 된다면 빼버릴 것이다."
- 이 작품을 어디에 주안점을 두어 연출 할 것인가?
"셰익스피어 작품을 연출할 때 정통적으로 하게 되면 문학성에 너무 치우쳐져 극이 활력 없게 되고 연극성만을 쫓아가게 된다면 셰익스피어가 가지고 있는 언어의 맛을 과감하게 삭제함으로써 원작을 훼손시킬 수 있는 위험이 있다.
그 두 가지를 다 한다는 것은 욕심이다. 하지만 문학적인 면이 있다면 그것도 살려내고 말을 통한 표현의 재미 이런 것도 살려내고 그러면서 연극적인 맛, 연극성도 살아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이다.
셰익스피어는 당시 대중적인 작가였다. 시대가 바뀌어서 그 대중성이 떨어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현대에도 살려낼 수 있는 대중적 요소가 상당히 많다. 문학성, 연극성, 대중성까지 살려낼 수 있다면 그것이 제 바람이다."
- 최근에는 연출보다 희곡 번역을 더 많이 한 것 같다. 연극계에서 희곡 번역을 많이 한 연출가로 알려져 있는데 번역 작업이 연출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되는가?
"한동안 제가 번역한 것을 제가 연출 안한 경우가 많았다. 초기에는 제가 번역해서 연출하는 쪽으로 가다가 어느 단계부터는 다른 분들이 번역한 작품을 수정해서 한다든가 이런 쪽으로 많이 했다.
번역을 하게 되면 이런 장점이 있다. 아직 컴퓨터를 못해서 손으로 글을 쓰는데 그러다 보면 토씨 하나, 어미 하나까지 고민하게 된다. 어떤 단어를 쓰면 좋을지 고민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내용에 대한 고민은 거기에서 끝나버린다. 그러면 대본을 무대화시키는 쪽으로 좀더 집중하게 된다. 뜻을 찾고 의미를 찾고 하는 부분에 1차 점검이 되니까. 그런 부분에 유리한 부분이 있다. 더군다나 직접 쓰니까.
연출들에게 대본 한번 써보는 것이 좋다고 하지만 실천하기가 어려운 일이다. 배우들도 자기 대사 한번 써보는 것이 좋다고 하지만 생각보다 실천이 어렵다. 일단 그것을 하게 되니까 작업에 들어가면 대본을 거의 안 본다. 내가 첫 번째 관객이 되어야 한다. 관객들이 대본을 보고 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대본을 거의 안 본다. 서로 문제가 되면 대본을 뒤져서 점검을 한다. 하지만 연습장에서는 대본을 손에서 거의 놓고 있다."
- 그간 연출해온 작품들을 보면 정통극에서부터 실험극, 뮤지컬까지 다양하다. 서로 다른 특성을 갖은 작품을 연출했는데 이 모든 작품을 꿰뚫는 나만의 연출 스타일이나 특징을 꼽는다면?
"스타일이 없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제 나이가 50이니까 너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시간이 없다. 인생 자체와 연결되는 쪽으로 정리가 되어야 할 것 같다. 스타일을 고정시킬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넌버벌 연극까지 연출하지는 않을 것이다.
연극을 함에 있어 언어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언어자체가 옛날처럼 의미를 갖지 못한다고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의사소통을 할 때에 굉장히 중요한 것은 입을 통해 나오는 언어이다. 그 부분이 소홀이 된다는 점이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런 쪽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제가 만든 연극이 지루했던 점도 있다. 그 대신 배우들의 액팅을 통한 동선이 좀 다양하고 다양성 속에서 이유가 명확하게 있는 그런쪽의 연극을 만들어 보려고 노력을 했다. 배우들을 고정시키고 입만 가지고 하던가 그렇지 않으면 조명만 가지고 하던가 하는 식의 것과 다르다. 도리어 조명의 변화가 많지 않더라도 배우들의 움직임과 말의 변화 이런 것을 통해서 연극을 만들려고 노력해왔다."
- 연기자가 연출을 하는 경우는 있어도 연출가가 연기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 연출님께서는 2000년 로버트 윌슨의 작품에 배우로 출연한 적이 있다. 어떤 계기로 출연하게 됐는가?
"로버트 윌슨을 말로만 들었지 해외 나갔어도 공연을 본적이 없다. 어떤 스타일의 연극을 한다는 이야기만 들었고. 마침 우리 나라에서 공연하는데 오디션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오디션을 해보자 생각했다. 사실 주변의 연출가들이 반대를 했다. 왜냐하면 떨어지면 망신이라는 것이다.
오디션에 참가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로버트 윌슨이 하는 그러한 연극 방식을 물론 곁에서 연습장에 가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참여해서 직접 접해보고 싶었다. 몸으로 겪는 것이 최고다 생각했다.
또 하나는 우리 나라는 오디션이 정착이 되어있지 않다. 나이나 먹고 그러면 '다 아는데 쪽팔리게 무시 하냐' 뭐 그렇게 된다. 그런 것도 불식시키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 뒤로 오디션 한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다.
다행이 오디션이 됐다. 사실 오디션 하러 가는 날 준비를 많이 했다. 안경도 준비하고 의상도 로버트 윌슨이 좋아할 분위기로 신경 쓰고 그랬다. 오디션 할 때는 그래야 한다. 이왕 다른 사람과 비슷하다면 연출가와 분위기가 맞고 역할에 대해서 겉모습이라도 애를 쓴 사람을 선택할 것 아닌가?"
- 기회가 된다면 계속 무대에 설 것인가?
"기회가 있으면 배우를 하고 싶다. 힘이 떨어지고 능력이 안되면 할 수 없겠지만 무대 위의 배우라는 것은 내가 아직 버리지 않은 꿈이다. 사실 로버트 윌슨 오디션에 참가하기 전에 동료 연출가나 선배, 후배 연출가들에게 많이 이야기했다. 연극판에 대머리에다 이 나이 된 배우가 흔하지 않다. 그러니까 혹시 필요하면 그냥 불러달라는 것이 아니라 개인 오디션을 한번 해라. 떨어져도 전혀 섭섭해하지 않겠다. 그런데 다들 웃기만 한다. 몇 년 동안 제가 악을 쓰면서 다녔는데도 트라이를 안 한다. 난 게런티도 싸게 받겠다고 그랬는데.
그게 서로 쑥스러워서 그런 것 같다. 전혀 쑥스럽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데도. 만약 내가 잘하면 이제부터라도 배우로 뜰지 모르는 일이다. 인생은 모르는 것이다. 자발적으로 그러겠다는데 왜 그 기회를 박탈하는지."
- 자신이 연출하는 작품에 출연할 생각은 없는가?
"내가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못 본다. 물론 외국의 경우는 그렇게 하는 사람이 있다. 예를 들어 로렌스 올리비에 같이 진짜로 대단한 실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그 사람은 자기가 연출도 하면서 주연도 하지만 저는 그렇게 대단하지 못하기 때문에 제가 배우하면서 연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본다."
- 작년부터 국립극단의 예술감독으로 일하면서 많은 성과를 일궈냈다고 평가받고 있다. 올해 국립극단의 계획은 어떻게 되는가?
"지난번에 <집> 재공연을 했고, 이번에 <타이터스 앤드러니쿠스>하고, 그 다음 5월 중순정도에 작년에 창작 공모해서 당선된 작품을 김광보씨가 연출하고, 9월에 이윤택씨가 기존 창작극중에서 연출하고, 11월 달에 프랑스 연출가가 와서 몰리에르 작품을 하나 연출한다. 올해는 그렇게 된다. 그 중간에 <집>이 지방 공연을 다녀온다."
- 올해 어떠한 계획을 가지고 있는가?
"옆에서 열심히 도와야 한다. 제가 연출하는 작품은 제가 완전히 주도해서 해야되는 것이고 그 밖의 작품은 옆에서 열심히 도와야 한다. 특히 한국연출들은 큰 문제가 없겠지만 외국 연출이 왔을 때는 문제가 있다. 그 사람들이 우리말을 모르니까 아무래도 연출적인 시각에서만 하게 된다. 동선을 긋는다든지 하는 시각적인 면에 집중하게 된다. 언어를 못 알아들으니까 설명을 하더라도 포괄적인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제가 한국 쪽 조연출처럼 말을 가지고 하는 부분에 있어 배우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은 도움을 주겠다. 그때는 조연출로서의 적극성을 갖게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 꼭 무대 위의 배우 김철리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의 성공을 기원한다.
덧붙이는 글 | <공연정보>
공 연 명 :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
공연장소 : 국립극장 달오름 극장
공연기간 : 4. 18 ~ 4. 25
문의전화 : 02-2274-350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