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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관의 석고붕어빵
ⓒ 임재광
현대의 미술은 예술지상주의와 지나친 관념화 또는 개념화로 치달아 왔으며 따라서 화이트큐브로 불리는 미술관과 갤러리의 공간에서 대중과 유리된 채 기형적으로 발전되어 왔다. 아울러 대중과 시민사회의 발달과 관련된 시각적 환경의 변화에 둔감했던 우리의 순수미술은 대중적 관심에서 멀어져 극심한 소외감을 느껴야 되는 현실을 맞이하고 있다.

최근 미술이 대중에게 가까이 가기위해 애쓰는 모습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지난해 '쇼핑·쇼킹 백화점에 간 미술가들'이라는 기획으로 개관 1주년 기념전을 열었던 대전 롯데화랑의 큐레이터 윤후영이 금년에는 '보물찾기'라는 새로운 부제를 달고 또 다시 탈 갤러리 전시를 보여주고 있다.

▲ 고경욱의 작품
ⓒ 임재광
백화점 매장에서 보물을 찾는다?

우리는 학창시절 소풍지에서 보물을 찾기 위해 풀밭과 나무들 그리고 바위틈을 뒤지고 다닌 추억이 있다. 보물을 찾은 순간의 기쁨과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고 시간이 지나도록 찾지 못한 사람은 끝내 낙담을 한 채 다음 소풍을 기약한다.

기대와 희열과 낙담이 교차하는 인간 욕망의 현장, 이런 감정의 진폭은 우리를 재미의 세계로 인도한다. 유희의 동물인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와같은 놀이를 즐기게 되어있다.

미술품을 상업적인 공간에 숨겨놓고 찾으러 다니도록 유인하는 방법은 백화점의 판촉행사를 위한 이벤트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보면 미술가들이 인적 드문 화랑에서 뛰쳐나와 사람들이 바글대는 시장바닥을 찾아 나선 격이다.

적나라한 상업공간에 보물찾기라는 속물적 유희의 방법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관객의 눈길이 자신에게 향하길 바라는 미술들, 이 미술들은 이미 과거의 관념적이고 고고한 미술의 모습이 아니다.

매장을 돌며 작품을 찾아다니다 보면 상업적인 제품들과 미술품의 차이는 적어도 시각적으로 그리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 도자기 코너에 있는 판매용 도자기나 작가의 작품이나, 신발 매장의 다양한 신발이나 작가들의 작품이나 또는 광고판에 걸린 광고사진들이나 작가들의 사진 또는 회화작품이나 눈에 들어오는 순간적인 인상은 거의 비슷하다.

다만 다른 점은 미술품은 직접적으로 현실에 쓸모가 없다는 것이고, 상품은 인간에게 유용한 용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미술이라고 부르는 시각적 형상물이나 산업 생산품이나 모두 미술가들의 손을 거쳐서 나왔다는 것은 공통점이다.

엄밀히 말하면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물건 치고 디자인되지 않은 것은 없다. 특히 백화점의 상품들이야말로 첨예한 디자인의 과정을 거친 치열한 제품들이다.

▲ 도일의 작품
ⓒ 임재광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디자인은 미술이다. 시각예술이다. 다만 좀 더 엄밀히 본다면 순수 미술에서 파생된 파생상품이다. 그러나 작가와 디자이너의 차이는 행위 자체에 있지 않다. 둘 다 미적 표현에 최선을 다한다. 디자이너도 시각적으로 추구하는 최상의 표현 요소가 있으며 화가나 조각가도 시각적으로 추구하는 최상의 표현 욕구가 있다.

▲ 김성곤의 작품
ⓒ 임재광
다만 그 차이는 '주문생산방식'이냐 '생산 후 판매방식'이냐의 차이라고 본다. 디자이너는 실용과 쓰임에 우선하여 제한된 표현을 하는데 비해 순수미술가는 자신의 표현을 우선으로 작업을 한다. 그러나 순수미술가라고해서 관객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가하면 절대로 그렇지 않다. 목적은 다를지언정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미술가는 없다.

한편 유희적인 측면에서 보면 순수미술가들이 디자이너들보다 더 가깝다. 쓰임에 또는 판매에 신경쓰지않고 시각적인 유회를 즐기는 것이 최근의 미술가들의 경향이다.

최근의 젊은 미술가들은 미술의 목적에 대해, 자신의 표현 또는 사상의 시각화 또는 인격도야 등 과거 미술가들이 목적으로 했던 예술가상과는 많이 달라진 경향을 보인다. 시각적인 유회의 대상이며 충격과 재미를 주는 표현에 더욱 큰 가치를 두고있다.

<재미있다> 라는 감상이 <훌륭하다>라는 칭찬에 앞서는 현실이다. 우리의 90년대는 80년대의 무거움을 벗어 던지기 위해 노력한 시기였다. 그 결과 드디어 "가볍게, 가볍게" 가 가치를 얻게 되었다.

백화점의 상품들 속에 상품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숨어 숨기장난을 하자하는 미술품들이 이 시대 젊은 감성들인 것이다.

전시의 기획자는 한술 더 떠서 보물을 성공적으로 찾은 사람들에게 상품을 제공하여 명목 뿐이 아닌 진짜 보물찾기 게임을 마무리한다. 즉 작품이 있는 각 매장에 카드를 비치하고 관객들이 3점씩의 작품을 찾아 기록하여 함에 넣으면 추첨하여 작가의 작품을 상품으로 주는 방법이다. 추첨이라는 절차가 더 있기는 하지만 보물찾기 상품으로 작가의 작품이 제공 된다는 것 또한 이 전시의 재미다.

대중의 참여를 확대하고 이벤트적인 행사를 곁들여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전략은 백화점의 고객유치 작전과 닮았다. 다시 말해 이는 하나의 마케팅 기법이다. 최근 우리 미술계에서도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마케팅의 개념이 현실화되는 장이라고 본다.

▲ 박대규의 작품
ⓒ 임재광
이 전시의 작품설치 특징은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매장에 진열된 상품과 형태적으로나 이미지에서 상관이 있는 작품을 병치한 것이다.

지하 1층의 식품부 매장에는 석고로 붕어빵을 찍어 계란판에 거꾸로 꼽아놓은 이종관의 "기합"이라는 작품과 과일과 채소를 구리선으로 용접하여 둘러싼 후 시간이 지나면 동선만 남고 과일은 쪼그라드는 물질과 시간성에 대한 사유를 하는 박영호의 작품이 있다.

구두와 피혁제품 매장에는 여러 작가들의 다양한 신발이 상품과 함께 진열되어있으며 여성복 코너에는 길게 늘어진 유방이 달린 윤지선의 옷이 걸려있고 김진경의 도편으로 연결한 란제리가 진열되어있다.

가전제품을 파는 코너의 모니터 화면에는 최희경을 비롯한 영상 비디오 작가들의 작품이 상업방송의 화면과 나란히 방영되고 있으며 컴퓨터 모니터에도 컴퓨터 그래픽 작가들의 작품이 떠있다.

이러한 디스플레이 전략은 상품과 작품간에 시각적 유사성이 강해 쉽게 발견되지 않게 함으로서 '보물찾기'의 기본 기획 의도와 잘 맞아떨어지게 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예술과 상품과의 경계를 반추해 보게 함으로써 이 시대 시각예술의 현상을 재확인하게 하는 교육적 효과까지 얻고 있다.

둘째는 공간의 인테리어와 시각적 상관이 있는 배치를 하는 것이다.

5층에 집중 배치되어 있는 사진작품들은 매장과 매장 사이의 파티션에 부착되어 마치 광고포스터와 같은 효과를 주고있으며 특히 엘리베이터의 문에 실상사 꽃문의 사진을 디지털 프린트하여 전혀 새로운 느낌을 창조한 김성곤의 작업은 장소 성을 잘 살려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4층의 숙녀 명품관에는 김홍주, 김택상, 신중덕, 정장직의 회화 작품이 진열대와 공간의 구조와 어울려 설치되었으며 6층 스포츠와 아동 매장에는 경북 영주에 살면서 소소한 가정사와 어린이를 주제로 그리는 박형진의 천진난만한 그림이 걸려있다.

▲ 이인희의 '잉어 비늘로 만든 구두'
ⓒ 임재광
구경숙의 진열대 유리를 이용한 현장작업이나 김동유, 전형주, 이순구의 작품들 또한 인테리어와 어울린 현장성의 작업으로 기억된다. 미술품의 현실적인 용도의 하나인 장식성과 현장성을 부각시킨 배치였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51명 작가 전원의 작품을 8층 메인 갤러리에 한 점씩 전시하면서 인적 사항이나 작품 설명을 붙여 준 것은 일반인들이 작가와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으로 서비스의 좋은 예라고 볼 수 있다. 이런 태도는 변화하는 세태와 시대상을 적극 반영하는 것으로 대중과 미술의 거리를 좁히는데 일조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 이정희의 작품
ⓒ 임재광

덧붙이는 글 | 지난 13일에 대전롯데백화점에서 시작한 이 전시는 4월 3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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