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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가르치는 일보다는 봉투 챙기기에 힘을 쏟던, 김봉투 아닌 김봉두 선생이 산골 오지 학교로 발령을 받는다. 봉투를 가져오지 않은 아이를 괴롭히다가 사고가 난 것이다. 먼 길을 달려 찾아간 학교는 전교생 다섯 명에, 보이느니 첩첩이 둘러싸고 있는 산 뿐이다. 답답함에 화가 나고 속이 끓어 얼굴은 초췌해져가고 서울로 돌아갈 날은 아득하기만 하다. 사람들이 다 자기를 잊고 다시는 돌아볼 것 같지 않아 초조하다.
폐교를 앞당기기 위해 아이들에게 서울 전학을 부추기고, 돈봉투를 바라며 학부모들에게 압력을 가하지만 아무도 김봉두 선생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영화는 김봉두 선생의 눈물 나는 노력과 아이들을 통해 바뀌어가는 김봉두 선생의 속마음을 터지는 웃음 속에 그려내고 있다.
이 마을에 혼자 사는 괴짜 할아버지가 한 분 계신데, 하도 무서워서 아이들은 할아버지와 마주치면 꽁무니를 빼면서 피할 구멍을 찾느라 바쁘다. 어느 날 담배가 떨어진 김봉두 선생이 담배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최씨 할아버지를 찾아가게 되고, 두 사람의 만남은 처음부터 삐그덕거려 김봉두 선생은 할아버지에게 물벼락을 맞고 쫓겨난다.
며칠이 지난 후 할아버지가 김봉두 선생을 찾아오는데, 자기에게 글을 좀 가르쳐달라는 것이었다. 이미 할아버지한테서 물벼락을 맞은 김봉두 선생이 녹록하게 허락할 리가 없다. 그러면서 김봉두 선생은 할아버지께 이야기한다. "그 연세에 글은 배워 뭐하시게요? 그냥 사시던 대로 사세요."
예전에는 글을 모르는 것을 보고 문맹(文盲)이라고 했지만, 요즘은 비문해(非文解)라고 한다. 문자를 해독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한글은 그 어느 글자보다 배우고 익히기가 쉬워서 우리 나라의 비문해율이 비교적 낮은 편이라고 하지만 어르신들은 좀 다르다.
한국교육개발원의 2002년 자료를 보면 70대의 81.4%와 60대의 33.2%가 읽기 문해의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70대 이상의 할머니, 할아버지들 대부분이 겨우 떠듬떠듬 읽을 정도로만 글을 깨치셨다는 이야기이다.
김봉두 선생의 허락을 받아 다섯 명의 아이들과 한 교실에 앉아 글을 배우기 시작한 최씨 할아버지. 침바른 연필심으로 꾹꾹 눌러쓰는 글씨들이 어찌나 맛있는지 할아버지는 참 행복하다. 태어나 처음 다녀보는 학교 생활도 재미가 나서 아이들과 비석치기도 같이 하고, 폐교 후에 서바이벌 게임장을 만들려고 하는 업자한테서 오랜만에 봉투를 받은 김봉두 선생이 기분 좋아 선물로 사온 동화책 한 권에도 입이 벙싯 벌어진다.
다른 아이들 다 하는 가정방문을 왜 자기만 빼놓느냐며 삐친 할아버지, 밤늦게 찾아온 선생님한테 닭을 삶아 내놓으신다. 그 자리에서 할아버지는 요즘은 그동안 읽지 못하고 상자에 고이 간직해 둔 미국에 사는 손자의 편지를 꺼내 읽는 맛으로 살고있다고 고백하신다.
평생 글을 읽지 못하고 살아오신 분들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눈물겹다. 노인복지관에 근무할 때 다른 프로그램들은 최소한의 수강료를 받고 운영했지만, 한글교실만은 무료로 이용하시도록 했다. 글을 깨치신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은행에 가서 내 이름을 처음 써봤다고 하시거나 버스 정류장 표지판을 소리내어 읽어봤다는 말씀을 하실 때면 콧잔등이 시큰해지고는 했다. 그 분들의 비뚤비뚤한 글씨가 담긴 스승의 날 카드야말로 최고의 선물이었다.
폐교 전 마지막 졸업식 날, 마을 사람들의 정성이라며 눈쌓인 운동장에서 김봉두 선생에게 찔러주시던 할아버지의 봉투는 그래서 더 이상 '그 봉투'가 아니었다. 얼마 되지 않는 자그마한 뜻을 나타내는 적은 선물이라는 뜻인, 말 그대로 '촌지(寸志)'였다.
아버지의 영전에서 다섯 명 아이들에게 절을 하며 엎드린 김봉두 선생. 역시 우리는 아이에게서 배우는구나 싶었다. 주름진 얼굴의 최씨 할아버지도 아이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한 글자 한 글자 깨치는 아이들의 눈망울이 예쁘고 귀한 것처럼, 평생 못배운 한을 지닌 할머니, 할아버지의 마음 역시 우리들이 들여다보아야 할 곳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그냥 사시던대로 사시라고, 그 연세에 새삼 뭘 배우려 하시느냐고 묻지 말자.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우는 존재, 그래서 우리들도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지 않은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마음 역시 우리와 같다. 배우고 싶어하실 때 작은 도움으로 함께 하는 일, 바로 우리들의 노년을 앞당겨 경험하는 일이 될 것이다. 김봉두 선생 역시 다섯 명의 아이들은 물론이지만 글을 깨치며 행복해 하던 최씨 할아버지를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선생 김봉두 Teacher, Mr. Kim, 2003 / 감독 장규성 / 출연 차승원, 변희봉, 성지루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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