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수사가 뜻밖에 언론계로 불똥이 튈 모양이다. 검찰이 이석희 전 국세청 차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언론계 인사가 있다고 밝힌데 이어 참여연대가 이들에 대해 배임수재 혐의로 재수사를 촉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세풍 수사결과 이석희 전 국세청 차장과 한나라당 관계자로부터 돈을 받은 언론인이 2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검찰을 통해 확인된 '세풍자금' 수수 언론인은 10여 명에 달한다.
10일자 <한겨레>는 "9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지방 방송사 보도국장이던 ㄱ씨 등 언론인 10명이 이씨가 관리하던 차명 계좌에서 출금된 수표를 사용했다"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검찰 계좌추적 결과, 이들이 사용한 돈은 대부분 200만~300만원 선이었으며, 한 중앙일간지 정치부 차장이던 ㅇ씨는 1500만원을 쓴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 같은 보도 내용에 대해 검찰의 고위 관계자는 "당시 국세청이 모금한 수표 중 대부분은 누가 사용했는지 밝혀져 있다"며 "언론인도 몇 명 관련돼 있다"고 <오마이뉴스>기자에게 확인해 줬다.
또 지난 8일 국세청 대선자금 불법모금 사건(세풍)을 수사중인 서울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서우정)는 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이석희씨가 관리하던 차명계좌에 출금된 수표가 일부 기자에 들어간 사실이 확인됐다"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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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풍자금 수수 언론인' 선거보도 영향을 끼친 인물들"
<오마이뉴스>는 11일 '세풍자금'을 수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언론인 10여 명의 명단을 입수, 본인들과 전화통화를 통해 사실확인에 들어갔다. 14일 현재 대상자 10명 가운데 전화통화가 된 사람은 7명, 3명은 연락이 닿지 않았다.
확인한 결과, 이들은 대부분 당시 해당 언론사의 정치부장, 보도국장 등 선거보도에 영향을 끼칠 만한 지위에 있었거나 직접 선거보도를 맡았던 인물들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들 가운데는 대구지역 언론인 2명을 비롯 전국부장, 경제부장까지 끼여 있어 언론인에 대한 금품살포가 정치부 간부를 넘어 지역 언론인까지 광범위하게 이뤄졌음이 확인됐다. 이들은 '세풍자금' 수수 사실을 전면부인했다.
언론비평전문지 <미디어오늘>은 지난 99년 7월 8일자에서 동아일보 정치부장 출신의 이도성 부국장이 경기고 선배인 이석희 전 차장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했다는 의혹을 처음 제기한 바 있다.
이씨는 이후 보도를 통해 금품수수 사실이 내부적으로 확인됐지만 99년 2월에 정치부장으로 승진한 데 이어 2000년에는 부국장으로 승진하였다. 이씨는 현재 소화기 계통의 지병으로 몇 주 전부터 병가를 내고 회사에 나오지 않고 있는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이 문제를 취재했던 한 기자는 "당시 언론 보도를 통해 이씨의 금품수수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사실무근'이라는 태도를 계속 견지했다"면서 "이는 유력 언론과 검찰의 전형적인 유착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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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품수수 의혹 언론인들, 이구동성 "돈받은 사실 없다"
[한 중앙일간지 정치부장 출신 A씨] : "이석희 씨로부터 밥 한 그릇, 차 한잔 얻어먹은 적이 없다. 어떻게 해서 그런 얘기가 검찰에서 도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정치부장 할 때 경기고 출신 친구와 경기고 모임에 간 적이 있는데 그때 그 양반을 봤다. 공식적인 자리였다. 그때 얼굴 한번 본 것이 전부다. 그 이상의 관계나 접촉은 전무하다."
[지역 방송사 보도국장 출신 B씨] : "얼토당토않은 얘기다. 이석희 씨는 얼굴도 모른다. 수표에 내 이름이 이서가 돼 있다는데 내 필체와 대조해보면 사실 유무가 밝혀질 것이다. 우리 방송사는 내가 주도가 돼 촌지 안받기운동을 오래 전부터 했다. 솔직히 당시에는 이쪽 사람 저쪽 사람 만났다. 이런 얘기하기 싫은데 (사람들이 찾아와도) 거절했다. 내 추측인데 거절할 때 우리는 내용물도 확인하지 않고 거절하는데 주는 측에서는 줬다는 것을 징표로 남기기 위해 가짜로 했는지 모르겠다."
[한나라당 출입 모 중앙 방송사 기자 C씨]: "어떤 출입처를 나가서도 돈을 받아본 적이 없다. 게다가 나는 그 당시 그런 돈을 받을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 또 이석희 씨는 만난 적도 없다. 당시 정당마다 정치자금이 들어오면 전액 세탁할 수 없어, 큰 수표를 세탁함에 있어 신원이 확인되는 기자들의 이름이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런 경로가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회사와 개인의 명예가 달린 문제인 만큼 사실확인 없이 이를 기사화 할 경우 회사차원에서 법적 대응을 할 것이다."
"그때는 그런 것(촌지 주고받는 것)이 없었다고 할 수 없는 시절"
반면 당시 한 중앙일간지의 경제부장을 지낸 G씨는 "이석희 씨로부터 돈을 받은 적은 없다"면서도 "그 당시는 뭐 더러 그런 것이 없었다고 할 수 없는 시절이었다"며 촌지수수가 관행적으로 이뤄져 왔음을 시인했다.
그는 이어 "당시 경제부장이었으니 이석희 씨를 만날 수 있었겠고, 정치부를 오래 했으니 한나라당에도 아는 사람이 많았다"며 "하지만 이석희 씨로부터 받은 적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편 10여 명의 언론인 명단 가운데는 모 방송국 경리담당자의 이름도 들어 있다. 그는 "보도국 행정 담당이다 보니 기자들의 출연료, 출장비, 경비 등을 관리하는 통장이 모두 내 이름으로 되어 있다"며 "기자들은 보통 경리들을 통해 고액 수표를 자주 현금으로 바꿔갔다"고 말했다.
그러나 만약 이들이 '세풍자금'을 받았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난다고 해도 이를 사법 처리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한 고위 관계자는 <오마이뉴스> 기자에게 "대가성 입증과 관련해 금품 대가에 대한 구체적 연관성이 없어도 포괄적으로 대가성이 있는 것으로 본다"면서도 "이번 경우 이석희씨는 국세청 차장이었고 업무상으로는 관련이 없는 정치부 기자들에게 돈을 줬다면 직접적인 업무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보기는 어려워 사법처리는 불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세풍자금 수수' 정치인, 언론인 배임수재혐의 고발
한편 참여연대는 14일 '국세청 대선자금 불법모금' 사건과 관련, 돈을 받은 정치인과 언론인을 각각 업무상횡령 및 배임수재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발했다.
참여연대는 "일부 정치인들이 사적 용도로 자금을 유용했는데도 검찰이 횡령죄의 공소시효(5년)가 지났다는 등 이유로 조사하지 않았다"며 "선거자금 사용을 국회의원의 업무로 본다면 자금유용은 업무상 횡령에 해당하므로 업무상 횡령의 공소시효(7년)가 남았기 때문에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는 또 "이석희씨에 대한 공소시효가 해외도피로 정지된 만큼 공범관계인 금품수수 언론인들도 공소시효가 정지됐다고 봐야하기 때문에 이들의 배임수재 혐의 공소시효 역시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재수사를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