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가 버린 구정물 YMCA 웬 말이냐"
"YMCA는 표용은·권호경의 놀이터가 아니다"
"용역인부 동원해 노조를 파괴했던 인물로는 YMCA 개혁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들은 말이 없었다. 그냥 그렇게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회장실' 앞을 지키고 서 있었다. 결국 17일 'YMCA 전체위원 친교회'에 참석 공식적인 회장업무를 시작하려던 권호경 신임 YMCA 회장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날 오후 6시 30분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YMCA 2층 강당 앞에서 20여명의 YMCA 상근 간사들은 신임 권호경 YMCA 회장의 출근을 저지하기 위해 회장실 앞을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표 이사장이 물러난 후 겨우 YMCA가 암흑 같던 긴 터널을 빠져 나와 새로운 길을 헤쳐나갈 것이라는 것에 기대감에 차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멉니까. 뼈를 깎는 내부개혁을 통해 초창기 시민운동의 맏형으로써의 자부심을 되찾으려는 우리에게 대안으로 제시된 사람이 CBS를 빚더미에 앉힌 장본인인 권호경 목사입니다."
YMCA에서 3년여 동안 활동가로서 일했다는 한 운동가는 절규하듯 이렇게 말했다.
그는 "권 목사는 표 이사장의 최 측근이자 CBS 사장 시절 비자금 문제로 검찰에 고발되는 등, 숱한 문제로 노조와의 오랜 갈등 끝에 결국 물러나게 된 사람"이라며 "권 목사를 선임한 이사회의 터무니없는 결정에 대해 경악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허탈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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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이날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회장실'을 나섰던 권 신임회장은 YMCA 간사들이 막아서는 바람에 그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권 회장은 상기된 얼굴로 아무 말 없이 다시 회장실로 들어갔고 그 뒤 외부와의 연락을 끊었다.
기습적으로 선출된 서울YMCA 신임회장
지난해 8월 표용은 전 이사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 문제로 촉발된 'YMCA사태'는 지난 2월 22일의 100회 총회에서 표용은 목사가 이사장직 사퇴의사를 밝히고 헌장개정특별위원회, 개혁특별위원회, 여성특별위원회 등 개혁기구구성이 결의되면서 수습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새 서울YMCA 신임 회장으로 권호경 전 CBS 사장을 선임하면서 사태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권 목사의 서울YMCA 회장 선임은 지난 4월 14일 온양에서 열린 임시이사회에서 기습적으로 이루어졌다.
당시 이사회에서는 '헌장개정' '개혁과제' '여성이사참여' 그리고 '신임회장 선출'에 대한 분과토론이 계획되어 있었다. 하지만 관례적으로 참석해왔던 국장들도 제외된 채 진행된 이번 이사회에서 예정에 없던 '신임회장 선출'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날 신임회장 선출은 이사회 전원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이 같은 사실을 뒤늦게 알게된 서울Y개혁재건회의(이하 Y개혁회의)는 17일 성명서를 내고 "권호경 목사를 회장으로 선임한 박우승 이사장과 이사회는 총 사퇴하라"며 전면전을 선언했다.
Y개혁회의는 "박우승 이사장을 필두로 하는 현 이사회는 개혁에의 의지가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최소한의 시민적 상식에도 미치지 못하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면서 "이로 인해 표용은 전 이사장이 여전히 이사회를 뒤에서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어 "이번 회장 선임은 서울YMCA를 대내외적으로 욕되고 사회적 조롱거리가 되게 한 실로 부끄러운 처사"라면서 "우리는 앞으로 이사회와의 모든 대화를 거부하며, 현 이사회가 총 사퇴할 때까지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여 전면 투쟁할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박우승 이사장 "권 사장 문제 사전에 몰라"
한편 서울Y 재건회의 측과 다른 목소리를 내던 직원협의회도 이번만은 같은 주장을 펴고 있다. 직원협의회 소속 50여 명의 간사들은 16일부터 '권호경 회장 출근 저지 투쟁'을 벌이고 있다.
직원협의회 소속 김상진 간사(청소년사업부)는 "규정과 약속에 따라 문제를 풀지 않아 문제가 많다"면서 "직원협의회 소속 160여 명의 실무자들은 계속해서 권호경 회장의 출근을 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박우승 YMCA 이사장은 <오마이뉴스>기자와 전화인터뷰를 통해 "상근 간사들이 저렇게까지 반대할 줄 몰랐다"며 난감해 했다.
박 이사장은 "권 사장이 선임된 것도 표 이사장을 반대하는 쪽에서 추천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며 "노조의 반대로 CBS 사장을 3선을 연임을 못했다는 것 이외에 권 사장과 관련된 문제들은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또 "회장은 기습적으로 선출된 것이 아니라 이사회를 소집할 때 이미 통보했던 사실"이라며 "회장대행 체제를 길게 끌고 갈 경우 YMCA 개혁을 진행시킬 구심점이 없다는 문제가 있어 이날 정당한 절차를 거쳐 회장을 선출한 것"이라고 밝혔다.
박 이사장은 이어 "이미 이사회 결정을 통해 선임된 회장을 무를 수도 없고 난감하다"며 "YMCA 상근자들과 대화를 통해 빠른 시일 안에 일을 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