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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4 재보궐선거의 결과는 향후 정치권 변화의 계기가 될 전망이다. 이번 재보선 결과에 따라 정치권에는 어떤 변화가 전개될 것인지, ① 위기의 민주당- 봉합이냐 분당이냐 ② 거칠어지는 한나라당- 내각제로 가는가 ③ 노무현 대통령의 선택, 이 세 가지 문제를 세 차례에 걸쳐 집중 점검한다. <편집자 주>

▲ 25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이번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홍문종, 오경훈 당선자에게 박수를 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원내 의석 153석. 4·24 재보선을 거치면서 한나라당은 부동의 원내 제1당의 위치를 확인했다. 재보선이 치러진 세 곳이 모두 민주당이 의석을 보유했던 지역임을 감안하면 한나라당이 2승을 거둔 것은 승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이번 승리로 대선 패배를 말끔히 씻어낸 표정은 아니다. 원내 제1당의 위용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에게는 기본적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자리하고 있다. 이회창 전 총재라는 구심이 사라진 상태에서 한나라당은 차기 집권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지 못한 상태이다. 외형적으로는 지나칠 정도로 비대한 상태이지만, 정작 미래의 결정적인 승부카드를 갖고 있지 못한 것이다.

강공으로 선회하는 한나라당

최근 들어 한나라당에는 강경한 기류가 지배하고 있다. 고영구 국정원장에 대해 이념적 편향을 이유로 임명 반대에 나섰는가 하면, 정연주 KBS 사장 내정자에 대해서도 친북인사라는 용어까지 써가며 거친 공세를 전개하였다. 과거의 색깔론이라는 무기를 다시 손에 쥐어든 모습이다. 심지어 추경예산안과의 연계 검토론까지 나오고, 5월 임시국회를 소집하여 고영구 국정원장에 대한 해임권고결의안 채택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당 개혁 문제로 내부 진통을 겪었던 한나라당이 이제 본격적으로 정국주도권 탈환에 나서려는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이번 재보선 결과는 이같은 한나라당의 강공 선회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연결될 것으로 보인다. "이대로 선거를 치러도 승리하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가운데, 한나라당에서는 개혁소장파의 입지가 더욱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들어 한나라당이 그동안 자제해왔던 색깔공세를 재개한 것도 보수성향 중진들이 주도하고 있는 당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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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4 재보선을 거친 한나라당은 더욱 힘을 얻고 더욱 거칠은 대여공세를 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정작 주목해야 할 것은 이같은 공세의 다음에 있는 프로그램이 무엇일까 하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몸집은 비대하지만 차기 대안은 부재한 딜레마로부터 내각제에 대한 관심이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솔솔 피어나고 있고, 이는 향후 정계개편 문제와 맞물리면서 정치권의 주요 화두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이제 재보선을 끝내고 17대 총선을 1년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한나라당이 갖고 있는 내부적 화두는 두가지이다. 하나는 소장개혁파가 요구해왔던 당 개혁이고, 다른 하나는 영남권 중심의 중진들이 구상하고 있는 내각제 개헌이다.

이 두 가지 가운데 당 개혁 문제는 이미 한계가 드러나 어느정도 결론이 난 상태이다. 당 지도부는 개혁작업을 마쳤다는 것이고 한나라당은 이제 대표선출을 위한 당권경쟁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 당내 소장개혁파는 여전히 당의 변화를 요구할 것이지만, 더 이상 힘이 실리기는 어려운 당내 분위기이다. 대선 이후 제기되었던 하나의 화두는 사실상 효력이 종료된 셈이다.

그 대신 재보선 이후 향후 정국에서 등장할 새로운 화두는 내각제 문제가 될 것이다. 한나라당에서 내각제 논의가 시작된 것은 대통령선거 직후부터였다. 대선이 끝난 직후부터 당 중진들 사이에서는 내각제론이 거론되기 시작하였지만, 선거에서 지자마자 내각제 얘기를 꺼내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에 따라 덮어두었다. 그 뒤 당 개혁특위활동 과정에서도 내각제 개헌 문제가 잠시 돌출되었으나, 소장개혁파들의 반발에 따라 다시 없었던 일이 되었다.

▲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 권한대행이 25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동료의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그러나 그동안 영남권을 중심으로 한 중진들은 내각제의 불가피성을 끝임없이 거론해왔다. 마침내 이회창 전 총재의 측근이었던 하순봉 최고위원이 내각제 공론화의 총대를 맸다.

하 최고위원은 지난 3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권력집중의 폐해를 막고 국정혼란과 국론분열을 최소화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를 모색할 때"라며, "지난 헌정 반세기를 진지하게 되돌아 보면서 백년대계를 내다보는 국가 기본틀을 새롭게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내각제라는 표현만 쓰지않았지, 내각제개헌론의 공식적 제기와 다를 바 없었다. 물론 한나라당은 당론이 아닌 사견이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한나라당 내부 분위기를 들여다보면 내각제론은 이미 단순한 사견의 수준을 넘어서는 상황이다.

대선이 끝난 뒤 얼마후 <조선일보>가 한나라당 의원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내각제 선호 의원이 응답자 123명 가운데 70명를 차지하여 57%에 이르렀다. 당시 초·재선 의원들은 찬·반이 비슷했으나 다선(多選)일수록 찬성자가 많았고, 특히 당론을 주도하는 3선 이상 응답자 39명 중 3분의 2 정도인 69%가 내각제에 찬성했다. 대선 직후의 의견분포가 이럴 정도였다면, 한나라당의 지배적 분위기는 내각제 선호라고 할 수 있다.

한나라당 내부에서 내각제론이 확산되고 있는 이유는 차기 대안부재의 상황 때문이다. 이회창 전총재가 떠나버린 한나라당으로서는 4년 7개월 뒤에 있게될 대선에 내보낼 주자를 찾기가 여의치 않다. 당권에 가장 근접해있다고 일컬어지는 서청원 대표도, 보수계의 대표주자인 최병렬 의원도 대권도전의 대안이 되기 어렵다는 것이 당내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한때 대중적 인기가 높았던 박근혜 의원도 지난해 대선과정에서 탈당과 복당을 거듭하면서 입지가 상실되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강재섭 의원같은 경우가 차기 주자로 거론되지만, 막상 당내 기반이 절대적으로 취약한 편이다. 김덕룡 의원이나 이부영 의원같은 경우은 한나라당의 보수적 정체성을 감안할 때 현실성이 없는 경우들이다. 한마디로 포스트 이회창 시대의 대안이 부재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국민정서상 이회창 전 총재의 정계복귀를 생각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문제는 이같은 상황이 몇 년이 지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한나라당의 성격상 외부 인사가 영입되어 차기 대권주자가 된다는 것을 생각하기는 어렵다. 결국 지금의 인재풀내에서 대선주자를 정해야 하는데, 답을 찾기가 쉽지않다.

한나라당 중진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내각제로 관심이 향하도록 되어있는 상황이다. 한나라당의 입장에서는 내각제 카드가 향후 정국을 주도할 수 있는 최적의 의제로 인식될 수 있다. 그리고 한나라당 주변에서는 내각제가 이회창 전 총재의 정계복귀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길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이 전총재의 정치스타일로 보아서 대권 3수를 위한 복귀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지만, 내각제가 이루어지면 그 때는 이야기가 다를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조심스러우면서도 기대섞인 관측도 생겨나고 있다.

정치권 내각제연대 형성의 가능성

그런데 과거의 내각제론과는 달리 최근의 내각제론은 현실적 가능성을 갖고 있다. 한나라당이 국회 과반수의 원내 제1당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의석에다가 자민련, 그리고 내각제에 관심이 많을 민주당내 구주류와 연대하면 개헌에 필요한 3분의 2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실제로 이들과의 연대는 가능성이 열려있는 상황이다.

자민련은 몰락에도 불구하고 내각제를 향한 일편단심을 버리지않고 있다. 김종필 총재는 지난 7일에도 내년 총선 이전 정계개편 가능성을 시사하며, "보혁이 분명히 갈라져서 상호견제하고 정책대결을 할 수 있는 정계개편과 내각제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보수세력이 내각제를 고리로 연대할 수 있다는 얘기인데, 그냥 넘겨버릴 내용은 아니다.

실제로 민주당 내에서도 동교동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내각제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고 있다. 한화갑 전 대표는 대선이 끝난 뒤, "내각책임제 개헌 문제를 거론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며 내각제 논의에 가세했다. 당시 당내 반발 속에서도 민주당 구주류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3단계 개헌론과 분권형 대통령제가 거론되는 마당에 내각제 논의 자체를 막아서는 안된다며 거들고 나섰다.

독자적인 대안을 내세우기 어려운 구주류의 입장에서는 내각제가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보장 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음은 분명하다. 실제로 이번 재보선 결과에 따라 민주당내 신-구주류간의 분열이 심화되어 파국을 맞을 경우, 구주류가 내각제 연대에 참여하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어보인다.

그런 점에서 내각제 연대는 반(反)노무현 연대의 성격을 띠게 되어있고, 그 결과에 따라서는 현정부의 국정운영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한나라당의 의사, 그리고 민주당 내 분열 양상에 따라서는 내년 총선 이전이라도 내각제연대가 구축될 수도 있고 내각제 개헌도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도의상, 그리고 국민여론을 감안할 때 총선을 눈 앞에 두고 개헌을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그보다는 내년 총선에서 내각제 개헌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부상되고, 총선결과에 따라 개헌이 추진되는 상황을 예상할 수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17대 총선과 내각제개헌 국민투표를 함께하려는 시도까지도 예상해 볼 수도 있다.

물론 지금 논의되는 내각제론에는 상당한 역풍이 따르게 될 것이다. 당장 내각제론을 주도하는 한나라당 내부에서의 반발이 간단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연초 당개혁특위에서 내각제론이 대두되었을 때 강력한 반대의사를 보였던 소장개혁파들은 내각제 추진에 강력하게 맞설 가능성이 크다. 당 지도부가 내각제 추진을 강행할 경우 부분적인 탈당사태로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그런 점에서 내각제의 문제와 정계개편의 문제는 맞물려 있는 상황이다.

또한 국민여론이 내각제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현재의 논의수준으로 보면 내각제론은 구정치세력이 자기 입지를 지키기 위한 방책임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내각제가 갖고 있는 본래적 의미와는 달리 구정치세력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공론화되는 내각제론은 국민여론으로부터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북한 핵문제와 경제사정 악화라는 환경이 지속될 경우 개헌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내각제론의 입지를 좁혀놓을 가능성이 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변수는 내년 17대 총선까지 노무현 정부의 국정운영이 어떠한 상태에서 어떠한 평가를 받느냐 하는 점이다. 내년 총선까지 비교적 안정적이고 성공적인 국정운영이 이루어질 경우 내각제론의 입지는 크게 확대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노무현 정부의 지지도가 급락하고 이른바 조기 권력누수가 나타날 경우에는 내각제론이 힘을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결국 내각제의 추진 강도는 노무현 정부가 하기나름에 달려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17대 총선을 앞둔 정치권의 격랑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남은 1년 동안 어떠한 일들이 일어날지, 4·24 재보선은 그 격랑의 출발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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