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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 3500여 세대, 인구 7000여 명의 작은 마을 정선군 사북읍, 그곳엔 이제 얼마 안 있음 폐광될 동원탄광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정선은 과거 전국 무연탄 생산량이 30%정도를 차지할 만큼 우리나라 대표적인 석탄 생산지였습니다. 그러나 6000여 명에 달하던 광부는 700여 명으로 줄었고, 90년 이후 인원충원이 없던 탓에 광부들의 평균 나이는 48세, 평균 근속기간은 16년 정도나 됩니다.
사북을 그리고 우리나라 광산업을 40년간 지켜온 동원탄광의 미래는 더 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광부입니다. 이름은 이세근, 55년생입니다. 광부란 이름으로 살아온 지 벌써 17년째랍니다. 그 옛날 전봇대에 붙어 있던 전단지가 그를 사북으로 이끌었다고 합니다. 당시 광부는 인기가 꽤 좋았나 봅니다. 6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그가 광부가 됐으니 말입니다.
그의 집은 강릉에 있습니다. 때문에 그의 처와 자식은 강릉에서, 그는 사북에서 각각 생활합니다. 가족들이 눈에 밟히는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여건상 한 달에 한 번 정도 얼굴을 봅니다.
그는 아직도 막장에 처음 들어가던 날이 생생합니다. 사방은 캄캄하고 그의 움직이는 머리를 따라 한줄기 하얀 불빛도 함께 했습니다. 그는 막장에서 탄을 운반하는 차를 운전합니다. 막장 안은 분업이 철저해서 각자의 역할이 분명합니다. 광부라 함은 모두 탄을 캘 거라 생각하지만, 실제 탄을 캐는 사람은 절반 정도이고 나머진 탄을 운반하거나 보수와 같은 일들을 합니다.
그도 예전엔 탄 캐는 일을 했었습니다. 시작하고 한 4년쯤 지날 무렵이었습니다.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화약으로 길을 뚫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화약이 안에서 폭발해 막장 안이 무너졌습니다. 다행히 그는 목숨을 구했지만 함께 일하던 동료 한 명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다른 동료 두 명이 다치는 사고가 또 발생했습니다. 이런 일들이 있고 한동안 힘들었습니다. 화약을 지고 걸어가면 뒤에서 누가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곤 했으니까요. 같이 가자고 자꾸 잡아당기는 그 느낌 말입니다.
결국 탄 캐는 일은 그의 일이 아니란 생각에 지금의 일로 전환했습니다.
동면에 가면 구암사라는 절이 있습니다. 그 곳엔 그와 동료가 함께 쌓은 탑이 하나 있습니다. 폐광된 후 다 떠나고 나면 남은 게 없을 거 같아 기념이 될 만한 일을 남기고 싶어 택한 것이 탑을 쌓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찾아가 돌을 하나하나 쌓아 올렸습니다.
처음엔 8m 80cm를 쌓는다니까 무리라고 말씀하시던 스님들도 막상 6m가 넘는 탑을 완성하자, 맨 꼭대기에 동자승 하나를 얹어 주셨습니다. 돌도 주변에서 직접 골라 쌓은 것이니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사실 쌓을 때 그리 탐탁하게 여기질 않았습니다.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키보다도 몇 배나 높은 탑을 사다리 하나에 지탱해 쌓는데 불안하지 않겠습니까? 까딱하다 탑이 무너지기라도 하면 크게 다칠 텐데 말입니다. 다행히 별 탈 없이 탑이 완성됐고 이제 무엇인가 기념이 될 만한 것도 생겼습니다. 동료는 맞은편에 하나를 또 쌓자고 합니다. 다칠까 또 걱정을 해야겠군요.
사람들은 모릅니다. 그들의 삶을, 그들만의 즐거움을.
"사람들은 보통 시멘트 바닥에서 왔다 갔다 하잖아요. 하지만 우리는 대자연과 투쟁하고 정복하는 겁니다. 그리고 휴일이면 산으로 놀러가고. 안에선 자연과 전쟁하고 밖에선 자연과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지요."
자연과 전쟁하고, 또 자연과 벗하는 그 즐거움은 어떤 느낌일까요?
그가 막장 안으로 들어가려고 갱지에 올랐습니다. 갱지는 그네들 말인데, 엘리베이터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제 갱지가 그를 550m 아래 막장으로 데려가겠지요.
막장 안의 기온은 약 24도 정도 됩니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나는데 열심히 일하는 건 오죽하겠습니까? 막장을 나올 때면 땀에 흠뻑 젖게 마련입니다.
그가 17년을 변함없이 걸어온 길입니다. 이 길 끝에 갱지가 있습니다. 복도와 벽, 그리고 낡은 의자들은 40년 세월을 고스란히 말해줍니다.
광부로 살아온 지 17년, 돌이켜 보니 항상 긴장하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매일 아침 5시 30분 눈을 떠 출근준비를 하고 하루 8시간씩 일을 합니다. 그리고 가끔씩 즐기는 퇴근 후 생맥주 한 잔으로 여유를 되찾곤 했습니다.
며칠 전 어린이날. 그는 강릉에 갔습니다. 아이들에게 맛있는 것도 사주고 함께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아이들보다도 그가 매우 기뻤던 날입니다. 그날, 그는 처음으로 어버이날 선물을 받았습니다.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 녀석이 카네이션 한 송이를 준 것입니다. 처음이었다고 합니다. 이제 그 녀석도 제법 컸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모라면 누구나 자식이 어떻게 자라길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도 있습니다. 간단합니다. 건강하고 착하게 자라주면 됩니다.
단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고 한다면 무엇을 바라겠냐고 하자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
“전 소원이란 것은 없습니다. 그저 사람답게 살 수 있으면 됩니다.”
그의 눈에 비친 현재의 우리 모습은 가진 자가 못 가진 자를 무시하고, 못 가진 자가 가진 자를 욕합니다. 결국은 서로 무시하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모두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 자기 도리를 하며 사는 사람들이 그가 바라는 대한민국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