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요? 평탄하게 가족 행복에 해 끼치지 않고 활동 꾸준히 했으면 좋겠어요. 저는 화려하고 불같은 인기는 원하지 않아요."
가수 백지영(25)씨는 평범해 보이지만 그렇지만은 않은 꿈을 갖고 있었다. 그의 상처는 완전히 아물지 않아 보였지만 자신의 꿈을 위해 다시 일어섰다.
"평생 치유될 수 없겠지요. 하지만 이제는 누가 직설적으로 물어봐도 아무렇지 않게 대답할 수 있어요."
'비디오 사건' 이후 모습을 쉽게 볼 수 없던 백지영씨. 벌써 2년여가 지났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그를 '비디오' 속에 가둬두고 있다. 그는 재기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자숙'하라는 따가운 시선만이 돌아올 뿐이다. 그런 가운데 그는 최근 SBS <그것이 알고싶다> '사이버 테러'편 등 방송에서 그동안의 고통과 상처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굉장히 많이 아팠어요. 다시 그때 생각이 났지요. 하지만 한꺼번에 날려버린 것 같기도 해요."
그리고 10일, 그는 당당히 안티 미스코리아 페스티벌(아래 안티페스티벌)무대에 섰다. 이번 안티페스티벌의 주제는 '여성이 만드는 평화'(Oh! Peace Korea). 백씨는 평화를 만드는 여전사로 공연장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이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백지영씨 편이에요."
사회자 개그맨 김미화씨는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백지영씨에게 이렇게 전했고 공연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큰 박수와 환호로 백씨를 환영했다. 백씨 역시 열정적인 무대를 선보이며 이에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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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개런티를 전액 이라크 여성과 어린이를 돕는데 쓰겠다는 백지영씨는 이번 안티페스티벌에서 단연 관심의 대상이었다. 무대에 섰을 때부터 끝날 때까지 많은 취재진들이 그에게 집중 플래시를 터뜨렸다. 백씨 측은 결국 행사가 끝난 뒤 무대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오마이뉴스> 취재진은 기자회견 뒤 백씨와 30여 분 동안 추가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백씨는 이번 인터뷰에서 상처와 치유, 도움을 줬던 사람들, 최근 팬들이 보내는 메일 등 최근 근황에 대해 심정을 토로했다.
백지영씨와의 일문일답이다.
"비디오 파문 당시 유일하게 도움 줬던 곳이 여성단체였다"
- 오늘 공연을 치른 소감은 어떤가?
"주최측이 여성운동 하는 곳이라는 특성 때문에 딱딱할 거라고 예상을 했지만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어요. 사실 기존의 팬 층은 주로 10대에서 20대 초,중반정도까지인데 오늘 오신 분들은 이모, 어머니 뻘 정도 분들도 계셨죠. 굉장히 재미있는 경험이었어요. 모두 '백지영 편이다'란 말을 들었다면 나 말고 다른 사람이라도 행복했을 겁니다. 감개무량했어요."
- 이번 공연에서 인상깊었던 점은?
"남자들이 많았던 것에 놀랐어요."
- 이유가 있다면.
"여성단체에서 하는 공연이었기 때문에 여성들만의 공연이라고 생각했는데 남성이 많이 보이더라고요. 공연 때도 '남성분들 왜 어떻게 오셨어요'라고 말하지 않았나요."
- 어떻게 안티페스티벌에 참가하게 됐나.
"처음엔 망설였죠. 예전엔 여성운동가 하면 과격하고 일만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어요. 만약 친오빠가 여성운동가를 결혼 상대자로 데리고 온다면 '어떻게 살려고 그래?'라고 말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미팅(행사 관련)을 가진 뒤 생각이 바꿨어요.
사실 (비디오 파문 당시) '한밤의 TV 연예'에서 (상대) 남자 인터뷰한 내용을 방영했을 때 상처가 컸어요. 인간적으로 마음고생 심했죠. 그 때 유일하게 여성민우회에서 비판적으로 운동도 벌이시고 그랬죠.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사실 너무 과격하고 급진적인 모습들은 반감을 줄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도 이해하게 됐어요."
- 여성주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
"아직 페미니즘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어요. 아는 내용도 별로 없고. 하지만 편견이나 왜곡된 시각이 개선돼야 한다는 것엔 공감합니다. 조심스러운 부분이기도 하고요. 좀 더 공부를 해야겠어요. 이런 공연을 통해 단순히 여성의 문제를 떠나 사회문제로 부각될 수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 앞으로도 이런 여성 행사에 참가할 생각인가?
"안티페스티벌에 나간다는 얘기에 주위 분들이 '여자 국회의원 되겠다'는 소릴 하세요. 아직은 경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될 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여학생부터, 주부, 어머니 같은 분들이 말없이 이해하고 계시는 것 같구나 느낍니다. "
- 미스코리아 대회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릴 때부터 집에서 대회 할 때면 온 가족이 TV앞에 모여 앉아 보곤 했어요. 하지만 미스코리아의 조건 자체가 변해야 할 부분은 있죠. 미용실이나 치맛바람에 의해 진선미가 결정되는 등의 끊임없는 잡음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점을 극복하고 지식과 미모를 갖춘 사람이 뽑혀 해외에 나가 국위선양을 한다면 좋은 것 아닌가요."
- 참가 개런티를 이라크 구호를 위해 쓴다고 하던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이 자리에 섰어도 그랬을 겁니다. 이라크의 여성들과 어린이들의 피해는 심각하다고 들었어요. 사장님이 기부할 것인지 묻기에 그렇게 하겠다고 했어요. 도울 기회가 돼서 한 것 뿐입니다."
"비슷한 처지 사람들 메일 보내 서로 위로 받아"
- 공중파 복귀 준비가 됐다고 생각하나?
"계속 해왔던 곳에서 떠나 있어서 그런 말씀들을 하는 것 같아요. 솔직히 공중파에 욕심은 없어요. 언론 보도나 사람들은 공중파에 복귀해야한다고 말을 하지만 굳이 꺼린다면 억지로 나가고 싶지는 않아요. 콘서트나 공연을 통해서도 팬들을 만날 수 있지 않나요. 이런 공연도 행복합니다. 하지만 명예회복과 비슷한 측면으로 보면 공중파에 나가고 싶은 건 사실이죠."
- 요즘 봉사활동 한다고 들었다.
"그 이야기 안했으면 좋겠는데. 특별히 봉사정신이 있어서 그런 건 절대 아닙니다. 단지 애들이 너무 좋아서 그런 것뿐이죠. 우리 동네 4거리 바로 건너편에 있는 곳이에요. 좋은 일을 하고 싶었는데 그런 곳은 보통 너무 멀거나 큰 규모의 시설들이 대부분이었죠. 그래서 인터넷을 통해 검색을 해봤더니 바로 동네에 위탁시설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아이들은 아무 것도 몰라요. 안아주면 좋아하고, 기저귀 갈아주면 행복해 하고 단순하죠. 처음엔 엄마 없는 아이들을 불쌍한 마음으로 대했어요. 하지만 그런 마음은 봉사하는 사람들이 가지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죠. 보통 집에서 엄마와 함께 자라고 교육받는 아이들과 같은 애들이구나. 그들과 똑같이 기뻐하고 낯가리기도 하고요."
(백씨는 현재 대한사회복지회 서울 영아 임시보호소에서 엄마 잃은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그는 봉사활동이 재기를 위한 홍보전략 아닌가라는 비판에 대해 부담스러운 눈치였다.)
- 많이 힘들었을 텐데 힘이 되셨던 분들이 있다면.
"물론 가족에게 너무 감사하다. 주위에 친구, 동생들이 많이 도와줬고 인터넷을 통해 응원해주시는 많은 분들도 도움을 주시죠. 팬클럽 친구들도 고맙고.
얼마 전 메일을 받았는데 가슴이 뭉클했어요. 한 어머니의 사연이었죠. 그분 아드님이 (백지영씨)비디오를 봤다는 걸 아신다는 겁니다. 너무 미안해서 망설이다가 '아들 대신 사과한다. 미안하다'고 그러셨어요. 이렇게 소리 없이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계시는구나. 감동했지요."
- 어려움 처한 분들로부터 e-mail을 많이 받는다는데, 이야기 해줄 수 있는지.
(잠시 망설인 뒤)"비슷한 경험한 여성들도 있고 가정학대를 받는 분들도 있죠. 성적 문제와 왕따 문제까지도 접하고 있어요. 직접 당한 친구가 보낸 메일이기 때문에 리얼해요. 처음엔 제 3자 입장에서 '그냥 한번 대들면 되지', '네가 그 상황 박차고 나가야 한다'는 식으로 메일을 보냈어요. 하지만 그런 게 쉬운 것이 아니더라고요. 혼자의 힘으로는 안되니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구나… 그러다가 혼자 나락에 빠지고 잘못되면 결국 자살까지 가는 거 아닌가요. 그저 들어주고 마음 속으로 용기를 주는 것뿐이죠."
- 왜 백지영씨에게 메일을 보낸다고 생각하는지?
"그냥 언니 같고, 이모 같고, 친구, 누나 혹은 딸 같아서지 않을까요. 그리고 제가 요조숙녀는 아니잖아요. 그분들은 내가 겪었던 상처를 이해하시려고 노력하면서 자신이 겪고 있는 아픔을 나눴으면 하시는 것 같아요. 메일을 보면 '지영씨도 힘들텐데 이런 얘기해서 더 힘들게 하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아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데 나도 (지영씨)아픔을 나눴으니 지영씨도 나눴으면 한다'는 내용도 있죠. 그러면서 서로 위로를 받는 것 같아요. 나도 의지가 됩니다."
"언론 왜곡된 시선 버리지 않으면 '눈물바다 기자회견' 계속될 것"
- 최근 연예계 S씨 피살사건에 다시 여성 연예인들이 등장하고 있다. 스포츠지에서 특히 크게 보도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세계 어느 나라에 가든 연예인들에 대한 스캔들이나 가십거리 기사는 나옵니다. 그 것 자체를 부정하지 않아요. 만약 내 옆에 있는 매니저랑 같이 다니는 모습을 보면 '백지영, 매니저랑 사귄다'는 기사가 나겠죠. 내 마음이 문제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한 것 같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런 스캔들의 경우 당하는 사람들의 인권보호가 전혀 안 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 일 있을 때 가십거리로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덮어주고 감싸줘야 할 사람들까지 특히 언론 등에서 말초적이고 자극적인 기사를 내보내죠. 이번에 나오는 S양 등의 이니셜은 얼마나 자극적인가요. 그런 것이 개선되지 않으면 '눈물바다 기자회견'이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여성단체에서는 남자연예인보다 여성연예인들이 더 많은 피해를 본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남자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런 문제를 가지고 데모, 궐기대회 등을 하는 것도 괜찮지만 의식이 차차 높아지면서 언론도 따라 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언론이 여론을 이끌어야 하는데... 우리나라 스포츠신문은 말초신경 건드리는 기사를 만듭니다. 물론 모든 기자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전혀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그런 기사를 1면에 꼭 내보내야하는지..."
"평생 치유될 수 없을 것... 하지만 많이 회복"
- 언젠가 '전쟁터에 혼자 나간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하는데.
"그 때(비디오 파문 당시)에는 두문불출하는 시기였어요. 그리고 나와서 만나는 사람마다 그 이야기만 했죠. 그 속에서 나락에 떨어진 기분이었어요. 지금은 나 스스로, 주변 분들도 달라졌다. 지금은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 지금 어느 정도 치유가 됐는지 물어도 되는지.
"평생 치유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얼마 전 '그것이 알고싶다' 하면서 굉장히 힘들었어요. 많이 아팠어요. 다시 그때 생각이 났지요. 하지만 한꺼번에 날려버린 것 같기도 해요."
- 수치로 표현을 한다면.
"70% 정도. 이제는 누가 직설적으로 물어봐도 아무렇지 않게 대답할 수 있죠."
- 4집에 대해 말해달라.
"댄스로 갈지 발라드로 갈지 등 고민을 많이 했어요. 지금은 일단 곡을 받는 중입니다. 이전에는 10곡을 받으면 8곡 정도는 라틴 계열 음악이었죠. 하지만 저는 발라드에 욕심이 납니다. 앨범 만드는 속도는 조금 느린 상태죠. 지금 속도로 봐서는 6월말이나 7월초가 될 것 같아요."
- 이번 대회 주제가 '평화'였는데 개인적으로 제일 중요한 '평화'는 어떤 것인지?
"내 마음과 가족의 평화죠."
- 꿈이 있다면.
"꿈이라… 어릴 땐 떡볶이 장사였는데… 지금은 평탄하게 가족 행복에 해 끼치지 않고 활동 꾸준히 했으면 좋겠어요. 저는 화려하고 불같은 인기는 원하지 않아요. 하지만 제가 댄스 가수이고 하니까 제 나이와 역량에 맞게 이질감 주지 않는 선에서 열심히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