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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장의 모습. 개혁파 의원들은 왜 이때는 전혀 생각나지 않던 5·18정신이 지금에서야 갑자기 생각나는 것일까?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장의 모습. 개혁파 의원들은 왜 이때는 전혀 생각나지 않던 5·18정신이 지금에서야 갑자기 생각나는 것일까? ⓒ 주간사진공동취재단
기자는 순진하게 노 대통령이 집권하면 5·18정신이 자동적으로 실현될 줄 알았다. 그래도 혹 몰라 기자의 졸필을 동원해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로서 두 번씩이나 글을 올려 취임식장의 전·노 초청불가를 호소했지만 그 문제에 독자 몇몇 분이 격려해준 이외에는 아무런 관심도 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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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천 의원 등에게 묻는다. 현행법(전직대통령예우에관한법률)을 어겨가면서까지 5·18의 원흉을 초청하여 취임축하를 받고 노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청와대 만찬을 즐기는 일이 계속 반복될 경우에도 5·18정신과는 무관한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겠는가? 만약 이 일이 별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왜 그때는 별일 아니었는데 갑자기 생각이 바뀌어 중요한 일이 됐는지 설명해주기 바란다.

2. 5·18 정신을 계승하려면 5·18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기자는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광주의 학살극이 '우발적인 과잉진압'이라는 설명 외에 들은 바가 없다. 천 의원 등은 5·18이 우발적인 과잉진압에서 발생한 것인지 아니면 '쿠데타를 위한 고의적인 정치테러리즘'인지 다시 조사해 밝혀줄 용의가 있는가?

이제 와서 이 문제를 다시 거론하는 것이 5·18정신을 계승하겠다는 개혁신당의 정신에 맞는지 맞지 않는지 말해주기 바란다. 만약 밝히는 것이 어렵다면 이런 문제를 밝히지 않고도 신당의 5·18정신의 계승에는 별 지장이 없는지도 말해주면 좋겠다. 기자는 이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개혁그룹이 지금 전두환의 부정한 돈을 돌려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3. 5·18정신은 무엇보다도 제국주의적 세계지배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독재정권을 지원하는 미국의 행동에 대한 반대의 정신이 들어 있다. 미국은 당시 평시·전시 군작전지휘권을 모두 갖고 있었다. 애초의 쿠데타군의 통제불능상황도 문제지만 27일의 도청 진압과정에서는 군병력동원을 승인까지 했다. 그런데도 이 문제에 대한 미국의 사과를 듣지 못했다. 개혁신당은 이 문제에 대한 미국의 사과를 요구할 용의가 있는가?

천 의원 등 개혁그룹은 이 문제에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도 5·18정신을 계승하는 데 별 지장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묻겠다. 말하자면 미국의 제국주의적 세계지배에 눈감고도 5·18정신을 계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대답해주기 바란다.

4. 5·18정신은 최정운 교수의 말처럼 (실현불가능한) '절대공동체' 정신이다. 물론 이상으로서 지향해야 한다. 개혁신당이 자유주의적 정당인지 아니면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들을 위한 진보정당이 될 수 있는지를 대답해주었으면 한다.

광주의 5·18에 마지막까지 총을 들고 싸운 사람들은 사회에서 대접받고 살았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만약 개혁정당이 그들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정당이 될 수 없다면 그래도 5·18정신을 계승한 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를 설명해주었으면 한다. 아울러 민주당의 정강정책과 어떤 진보적인 차이를 둘 것인지도 말해주면 좋겠다.

관련해서 노 대통령이 혹 신당에 입당할지도 모르므로 한 가지 더 묻겠다. 기자가 알기에 대통령은 '국익'을 위한 국가원수로서의 지위와 국내적으로 국정을 조정하는 통치권자의 지위 말고도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정책실현의 권한과 책임을 지고 있는데도 노 대통령은 '정치와 통치는 다른 것'이므로 '누구의 편을 들 수 없다'라고만 강조하고 있다. 개혁그룹도 이 철학에 동의한다면 무엇 때문에 유권자들이 특별히 개혁신당을 지지해야 하는지 설명해주기 바란다.

5. 끝으로 신당이 모토로 내걸 지역주의의 청산에 대해서도 궁금한 것이 있다. 집권하면(이미 했다) 전두환의 민정당을 계승한 한나라당에 대해 헌법(제8조 제4항) 절차에 따라 위헌정당해산을 제소할 용의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혀주었으면 한다. 이런 문제는 5·18정신과 관련 없다고 보는가? 누구라도 '아우슈비츠 정신'을 말하면서 나치스당의 존재를 용인하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에 하는 말이다.

호남의 한나라당 거부는 분명히 5·18정신과 관련되어 있다. 단순한 지역주의가 아니다. 만약 단순한 지역주의였으면 영남출신의 노무현 후보를 그렇게 지지했을 이유가 없다.

다시 말해 5·18정신을 말만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법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정치적으로라도) '반한나라당'이 신당의 강령이 돼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가? 신기남 의원은 (5월 14일의 YTN의 뉴스인터뷰에서) 자신을 '원칙주의자'라고 소개했다. 그래서 기자는 지금 원칙을 묻고 있다.

기자는 이 다섯 가지 질문에 대해서는 최소한 분명한 대답을 들어야겠다. 그래야 그들이 5·18정신을 거론하는 진심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 다섯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은 반드시 이렇게 나와야 한다.

'전두환 파시즘은 결코 화해의 대상이 아니며, 5·18의 진실은 계속 밝혀나갈 것이며, 미국에 대한 사과와 자주적인 대미외교를 추구할 것이고, 진보정당을 지향하며, 5·18정신에 따라 한나라당을 청산할 것이다.'

기자는 신당이 이중 한 가지라도 목표로 하지 않는다면 5·18 정신을 계승한 정당이라고 보지 않을 것이다.

기자는 지금 개혁정당그룹에게 신당이 5·18정신을 계승한 정당이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당연히 5·18정신을 계승한 정당만이 좋은 정당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정당의 정강정책은 5·18정신 말고도 좋은 이념들을 얼마든지 많이 담을 수 있다. 민주, 법치, 자유, 평등, 정의, 복지, 환경 … . 얼마나 좋은 이념들인가? 다시 한번 묻는다. 왜 하필 5·18정신인가?

기자가 지금 우려하고 있는 것은 실현 가능하지도 않은 정략적 발상으로 5·18정신을 거론함으로써 다시 한번 역사의 아픈 상처를 건드리지나 않을까 우려하는 것이다.

기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5·18 정신의 실천 기회를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상실시켰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이 문제에 무슨 엄청난 기대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런데 다시 또 누군가가 상처받은 사람들을 향해 5·18정신을 말하고 있다.

신기남 의원. 신 의원 등은 호남표를 위해 5·18정신이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이 땅에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도록 하기 위해 5·18정신이 필요한 것인지 분명히 말해주기 바란다.
신기남 의원. 신 의원 등은 호남표를 위해 5·18정신이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이 땅에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도록 하기 위해 5·18정신이 필요한 것인지 분명히 말해주기 바란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신기남 의원은 "선혈이 낭자하도록 권력투쟁을 할 것"(<한겨레>, 2003년 5월 13일자)이라고 말했다. 개혁을 위해서 그런 결심을 하고 있다면 좋은 일이다.

그렇다면 신 의원에게도 묻겠다. 신 의원 등은 '선혈이 낭자하도록 5·18정신을 위해서도 투쟁할 것'인가? 권력을 위해서는 선혈이 낭자하도록 투쟁할 수 있지만 5·18정신을 위해서는 그럴 수 없다면 이상한 일 아닌가?

우리에게 무엇을 위해 권력투쟁을 하고 있는지를 알려주기 바란다. 만약 별 뜻 없이 5·18정신을 거론한 것이라면 제발 거두어주기 바란다. 5·18정신은 '지금 우리의 정치상황에서는' 정치인들의 적당한 각오로는 절대로 계승하기 힘든 정신이다.

2000년 5·18전야제의 이른바 '386세대' 정치인들의 술파티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5·18정신은 정치인들이 필요할 때 넣었다 뺐다 사용할 수 있는 편리한 장신구가 아니다.

지금도 5월만 되면 아물지 않은 상처를 부여안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도 학살원흉 전두환을 나라의 지도자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지금도 이 나라 역사에는 5·18이 광주의 한으로만 각인되어 있다.

제발 이 모든 부조리와 '선혈이 낭자하도록 투쟁'할 준비 없이 건성으로 5·18정신을 거론하며 분당하고자 한다면 지금이라도 재고해주기 바란다. 5·18의 영령들이 두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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