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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의 크리스마스> 중에서
1998년 1월 15일,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이 영화가 첫 상영되었을 때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름다운 영화 속 주인공의 사랑 만들기와 가슴 아픈 결말은 중학교 2학년, 사춘기 시절 가슴속에 알알이 맺혀 들어왔다. 그리고 그 감동은 5년이 지난 내 가슴속에서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었다. 영화는 이랬다.

서울의 변두리에서 작은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는 정원. 그는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있다.

어느 날 사진관에 다림이라는 아가씨가 나타난다. 그녀는 정원의 사진관 근처 도로에서 주차 단속을 하는 아가씨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사진관 앞을 지나고, 단속한 차량의 사진을 맡기는 다림은 차츰 정원의 일상이 되어간다.

다림은 정원의 가슴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정원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정원은 다림이 사진관에 오는 시간을 기다리게 된다.

정원은 상태가 악화되어 병원에 실려간다. 정원의 상태를 모르는 다림은 문 닫힌 사진관 앞을 몇 번이고 서성인다.

기다리다 못한 다림은 편지를 써서 사진관의 닫힌 문틈에 억지로 우겨 넣는다. 집으로 다시 돌아온 정원은 다림의 편지와 언젠가 찍어주었던 다림의 사진을 보면서 눈물을 떨군다. 다림은 더 이상 사진관에 나타나지 않는다.

크리스마스 이브. 다림이 사진관을 찾아온다. 사진관 안을 들여다보던 다림의 시선이 한곳에 머물고, 놀라움이 조금씩 얼굴에 드러나기 시작한다.

돌아서는 다림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미소를 머금은 채 떠나는 다림의 뒤로 사진관의 진열장엔 이 세상에서 가장 밝은 웃음을 짓고 있는 그녀의 사진이 액자에 넣어져 걸려 있다.

영화는 그렇게 끝을 맺었고 어릴적 기억으로는 나도 눈물로 그 영화를 끝맺음했던 것 같다. 드디어 난 서울의 한 작은 사진관으로 묘사된 강경의 살아 숨쉬는 영화장으로 발을 옮길 수 있었다. 5년 전 나의 소망이었듯이......

▲ 강경역에 도착했다
ⓒ 김선경
5월 2일, 논산에서 버스를 타고 강경 시내에 접어들었다. 서울에서 볼 수 없는 끝없는 논과 밭, 그리고 길게 뻗은 길가에 가로수가 일상과는 다른 새로운 공간으로 나를 데려가는 것 같았다. 강경에 내리자 코끝을 찡하게 해주는 젓갈 냄새가 맞이해 주었다. 시골의 훈훈함보다는 왠지 서글픈 느낌이 들었다.

강경의 첫 이미지는 내가 떠올렸던 활기차고 밝은 이미지는 결코 아니었다. 조용하다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적막했다. 바쁘게 사는 사람들보다는 햇빛을 피해 그늘진 곳에서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시는 할머니들만 눈에 띠었다.

강경 시내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왠지 모를 편안함을 느끼게 되었다. 동네의 적막함이 때론 무서움으로 느껴지기도 했지만 어디간 모르게 살아 숨쉬는 마을의 향을 느끼게 되었다. 수업을 마치고 골목 저편에서 나오는 아이들을 따라 길을 걷게 되었다.

▲ 시골의 훈훈함 보다는 왠지 서글픈 느낌이 들었다.
ⓒ 김선경
강경은 아직도 일제시대의 건물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곳으로 영화 속에 자주 나오는 곳이기도 하다. 오래된 건물을 찾아 나섰는데 왠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10분 여 걷다가 젓갈 시장을 돌아 조금 더 들어가자 순간 영화 속 장소로 들어 온 느낌이 들었다. 내가 그리던 강경의 모습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일제시대의 건물은 많이 헐었고 새 건물로 많이 바뀌었다. 남아 있는 건물도 창고로 쓰이던지 중소기업의 공장으로 쓰여지고 있었다. 그 시대 일본인들이 거주했던 강경은 역사 속에 조금씩 묻혀 가고 있었다. 강경 시장에서 만난 할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가끔 일본인들이 찾아와서 동네를 둘러보고 간다고 하셨다. 그래서 손자 녀석이 일본어를 배워야 한다고 떼를 쓴다고 한단다. 강경의 옛 건물들은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조용히 자취를 감추고 있다.

▲ 문방구 앞에서 오락도 하고 군것질거리를 사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나의 어릴적도 떠올리게 되었다.
ⓒ 김선경
옛 건물들을 찍으며 돌아다니다 보니 영화 속에 나왔던 곳을 찾게 되었다. 나의 기억 속에 널부러져 있던 퍼즐의 조각을 하나 하나 맞추어 나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쭉 뻗은 계단을 보게 되었다. 불현듯 발길이 닿았고, 그 위에는 강경이 한 눈에 보이는 곳이 있었다. 옥녀봉이라는 곳이었는데 드라마 '정 때문에'를 찍었던 곳이기도 했다. 강경 시내가 한 눈에 보였고 해 지는 금강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저기 멀리서 날아오는 새의 날개 짓이 너무도 가볍게 느껴졌다. 내 현실은 너무도 무겁다. 강경을 올 때까지도 나의 어깨는 좀처럼 가볍지 못했는데 새를 보며 마음이 확 트이는 걸 느꼈다.

▲ 강경은 아직도 일제시대의 건물이 가장 잘 보존 되어 있는 곳으로 영화 속에 자주 나오는 곳이기도 하다.
ⓒ 김선경
강경에서 혼자만의 보물찾기를 한 느낌이었다. 내가 봤던 건물 하나하나, 사람들의 모습과 금강의 아름다움은 초등학교 시절 보물찾기를 했던 그 감흥과 너무 흡사했다. 어떤 것을 바라기 보다 그 게임 자체만으로 즐거웠던 것처럼 강경이라는 동네 그 자체가 즐거웠다.

영화 속 그 곳은 영화 속에서만 존재하는 세상이었다. 내가 그려 놓은 그 곳 역시도 내 기억 속의 세상이었다. 강경은 영화의 배경무대였을 뿐이다. 그리고 내가 직접 찾아간 강경은 비로서 나의 공간이었다. 강경은 나에게 삶의 여유를 일깨워준 공간이었다. 빠르게 지나가는 삶 속에 한 잔의 여유로운 홍차가 되어 주었다.

8월의 크리스마스 속, 그 곳에는 내가 있었고 내가 잃고 갔던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5년 전 나의 꿈이 있었다.

▲ 강경은 역사 속에 조금씩 묻혀 가고 있었다.
ⓒ 김선경
▲ 해 지는 금강의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저기 멀리서 날아오는 새의 날개짓이 너무도 가볍게 느껴졌다.
ⓒ 김선경
▲ 높은 곳에서 바라본 강경의 모습. 어떤 것을 바라기보다 그 게임 자체만으로 즐거웠던 것 처럼 강경이라는 동네 그 자체가 즐거웠다.
ⓒ 김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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