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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이 넘으신 할머니가 모를 새기신다.
70이 넘으신 할머니가 모를 새기신다. ⓒ 느릿느릿 박철

모새기는 게 애들 장난 아니시다.
농사꾼이 쉬엄쉬엄 놀면서 농사지을 수 있겠소.
허리병이 나서 다시는 논에 안 들어가겠다고 맹세했어도
나도 모르게 논에 들어가 모를 새기고 있으니 어떡하갔소.
애들이 전화해서 엄마 모 새기러 논에 들어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어도 내 발이 저절로 논으로 가고마니 내 마음을 몰라요.
그게 농사꾼 마음이시다.
.............
(박철 詩. 농사꾼 마음)


쌀 수입 전면개방이 코앞에 다가왔다. 올해부터 정부수매가가 하락할 것이고, 계속되는 농산물 가격 폭락으로 농민들의 고통은 심화되어 가고 있다. 누가 농사짓겠다고 나선 사람이 있다면 대단히 용기 있는 사람이거나 매우 무모한 사람이거나 둘 중 하나다.

모를 새길 자리를 유심히 찾는다. 나의 빈자리는 어딘가?
모를 새길 자리를 유심히 찾는다. 나의 빈자리는 어딘가? ⓒ 느릿느릿 박철
내가 사는 교동 섬에 초등학교가 셋, 중 고등학교가 하나 있는데 장래희망이 농부인 아이는 거의 없다. 내가 교동에서 7년 째 살면서 장래희망이 농업이라는 아이는 딱 한 번 보았다. 실제로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대학진학을 하든지, 뭍에 나가 취직을 하든지, 아니면 군대를 가든지 하릴없이 놀든지 일단은 교동을 떠난다.

교동을 떠난다는 말은 농사짓겠다고 나선 젊은이가 없다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들에게 농사를 가르치지 않는다. 농사만큼 귀한 일이 없는데 그런 철학을 갖고 농사로 대물림을 하겠다는 사람이 없다. 그러다보니 농촌은 젊은이는 없고 노인들만 남아있다.

70대 노인들까지 힘든 농사를 한다. 사람이 죽어 장례를 치르는데 상여 멜 사람이 없다. 이 사회가 농민들을 천대하고 땀 흘려 살아가는 사람들의 수고와 희생을 천시 하다보니, 농사를 가장 가치 없는 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단단히 잘못되었다.

다운이 엄마 너무 힘들겠다. 좀 쉬었다 하지.
다운이 엄마 너무 힘들겠다. 좀 쉬었다 하지. ⓒ 느릿느릿 박철
요즘 농촌은 모내기로 정신없다. 옛날 같으면 사람들이 두레를 조직하여 일일이 줄을 띄우고 손모를 냈었는데, 요즘 거의 이양기로 모를 낸다. 사람이 하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게 되었다. 사람이 하는 일을 기계로 하는 세상이 되었다. 기계 없으면 농사를 못 짓는다.

그런데 다른 건 다 기계로 하지만, 모를 새기는 일은 반드시 사람이 해야 한다. 이양기로 모를 내다보면 모가 논바닥에 잘 박히지 않아 물에 뜨는 경우가 더러 생기고, 모가 안 박힌 데가 생긴다. 그 빈 구멍을 찾아내 사람 손으로 다시 하나하나 심는 것이다. 그걸 모를 새긴다고 한다.

모를 새기는 일은 사람 육신 뼈마디를 녹게 만드는 일이다. 너른 논에 들어가 푹푹 빠져가면서 모가 안 박힌 구멍을 찾아내어, 일일이 사람 손으로 모를 새기는 일은 고역 중에 고역이다. 허리를 납작 엎드려 하루 종일 모를 새긴다. 남자들 보다 주로 여자들이 하는 일이다. 모를 다 냈으면 빠진 자리가 있어도 내버려 두면 좋겠는데, 농촌 아낙들의 마음이 그렇지 않다. 그걸 단순히 경제적 재화의 개념으로 이해하면 안된다.

목사님, 일거리를 보고 어떻게 가만있을 수 있어요.
목사님, 일거리를 보고 어떻게 가만있을 수 있어요. ⓒ 느릿느릿 박철
농사를 설렁설렁 짓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단순한 욕심이 아니다. 농민의 마음이고 정성이다. 그렇게 공을 들이지 않고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모내기만 끝나면 사람들이 다 골병이 든다. 농촌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병이 관절염이나 척추디스크이다. 일종의 직업병이다.

농민들도 의료보험에 가입하여 정상적으로 의료 보험을 납부하고 있지만, 직업에서 오는 여러 가지 질병에 관련하여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다. 모 새기는 일이 뭐 그리 힘드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딱 하루만 해보면 그 일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지 알게 될 것이다. 농촌 아낙들은 그 일을 한달 내내 한다.

아이구 허리야. 모새기다 내 삭신이 다 녹는다.
아이구 허리야. 모새기다 내 삭신이 다 녹는다. ⓒ 느릿느릿 박철
흰쌀을 한자로 백미(白米)라고 한다. 米자는 열십(十) 자에 팔(八), 이(二)자를 합해 88이 된다. 쌀이 밥이 되어 밥상에 오르기까지, 88번의 과정을 거친다는 말이다. 그만큼 공과 정성을 들인다. 밥상을 대하면서 쌀 한 톨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생명의 신비와 농민들의 정성을 기억해야 한다. 옛날에는 밥 먹다가 밥알 하나 흘려도 다 주워먹게 했다. 지금처럼 냉장고가 없었던 시절, 쉰 보리밥도 물에 다 헹궈먹었다.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쌀밥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다. 어느 날 친구 집에 놀러갔다. 밥상 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밥이 올랐는데, 쌀밥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때 처음 보았다. 집에 와서 어머니 보고 “엄마, 하얀 밥은 뭘로 만든 거예요?” 하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제우 엄마 모새기다 하루 다 갔네. 가서 저녁밥 해야지.
제우 엄마 모새기다 하루 다 갔네. 가서 저녁밥 해야지. ⓒ 느릿느릿 박철
세상에 농사만큼 귀한 게 없다. 하늘이 내린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중 가장 귀한 일이다. 그런데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의 귀한 뜻이 어디가고 없다. 그걸 찾아내야 한다. 6십이 넘은 할머니들이 푹푹 빠지는 논 한가운데 허리를 숙여 모를 새기고 있다. 밥 먹는 시간도 아끼며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그 일을 하신다.

꽃 피는 계절이라, 산으로 들로 행락객의 인파가 미어터지는 때에 농촌의 아낙들은 허리를 구부려 모를 새긴다. 옛날 보릿고개 시절, 우리 어머니들이 다 닳은 옷이나 구멍 난 양말을 깁듯이. 황금만능주의로 병들고 구멍 난 마음을 한 올 한 올 깁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사랑하는 나의 누이며, 어머니다.

도시사람들이 쌀값이 비싸다 어쩌다 하는데 하루만 와서 모새겨 보라고 해요. 얼마나 힘든지.
도시사람들이 쌀값이 비싸다 어쩌다 하는데 하루만 와서 모새겨 보라고 해요. 얼마나 힘든지. ⓒ 느릿느릿 박철
백로도 모새기러 왔나보다. 네 팔자가 상팔자구나.
백로도 모새기러 왔나보다. 네 팔자가 상팔자구나. ⓒ 느릿느릿 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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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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