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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필자는 이충렬씨의 "'언제까지 김정일에게 끌려가나', 노 대통령 실용주의 외교 잘했다"는 글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기보다 사조직의 조직원들에 대한 교육용 지침서가 아닌가하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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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김정일에게 끌려가나" 노대통령 실용주의 외교 잘했다

더구나 글의 말미에 "진보세력은 노무현 대통령의 이번 행보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의 인격과 철학을 걸고 최선을 다한다는 믿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대목에서는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우선 이충렬씨는 노대통령을 가까이서 모셨기(?) 때문에 국민의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무언가를 보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것을 국민들에게까지 강요하는 것은 너무 무리가 아닌가 싶다. 국민은 너나할 것 없이 보이는 것만큼만 보고 판단할 뿐이기 때문이다.

어느 누가 국민들에게 지도자가 하는 행동과 말이 그의 생각과는 다르니 설사 잘못했다 하더라도 인격과 철학을 배려해 믿어달라고 주장할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이충렬씨의 말이 설득력이 없는 것은 금번 대미외교를 놓고 나오는 비판들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 자신이 '나는 이제 생각이 변했다'하고 직접 말하지 않았던가?

대통령의 행동과 말 하나하나는 수천만 국민의 안위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역사가 굴러가는 수레바퀴의 방향도 대통령의 생각이 아닌 행동과 말 하나 하나에 달려 있는 이 마당에 생각과 행동이 다르다는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리고 그것은 감히 국민을 상대로 할 말이 아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먼저 분명히 밝혀둘 것은 이번 대미외교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거둔 외교 성과는 미국의 처지에서 봤을 때 노무현 대통령이 전혀 의심할 바 없는 우군이며, 따라서 한반도 정책에서 미국의 방침을 그대로 관철시켜도 무방하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것이다.

일견 미국의 대한외교가 거둔 성과처럼 보이는 이 외교적 성과는 참으로 의아스럽지만 금번 대미외교에서 우리 측이 거둔 성과다. 조금 덧붙이자면 이충렬씨 말대로 미국의 한국(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불신을 말끔히 해소했다는 점이다.

즉 말로 아무리 해도 안 믿어주니까 직접 가서 몸으로 확인시켜 주었다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없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실리외교가 성공했다는 전부이자 핵심이다.

국민들은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통해 한반도에서 전쟁불안을 해소하고, 한반도 문제해결에 남한이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발판을 구축하기를 바랬다. 한반도에서 전쟁불안이 해소되면 경제불안도 자연 해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방문에서 얻은 눈부신 실리에도 국민들이 느끼는 전쟁불안은 단 한치도 가시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욱 커졌다고 느끼는 국민들이 더 많아졌다는 것은 노 대통령의 실리외교가 갖는 역설이다. 또 국민의 정부 5년 동안 쌓아온 남북간의 신뢰를 일거에 무너뜨림으로써 과연 그 신뢰를 어떻게 다시 회복해나갈 수 있을지 불안해하는 국민들도 많다.

다만 그래도 성과라고 보는 것은 것은 금번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통해 이제 국민들은 노무현 정부의 대미관과 대미외교 자세에 대해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즉 남북문제와 대미관에 대한 철학과 방침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 바로 성과라는 것이다.

이라크 파병 결정을 하던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이 문제는 국민들에게 많은 혼란을 주었다. 이충렬씨 말대로 노무현 대통령 자신의 인격과 철학을 걸고 뭔가 최선을 다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그때까지만 해도 강했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들 중 북핵문제해결과 전쟁발발 방지를 위해 미국과 일정하게 협조하면서 국제사회와 더불어 '평화적으로' 해결해나가야 한다고 믿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충렬씨는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가 미국과 국제사회에 제시할 수 있는 카드로,

1. 한미동맹의 파기를 선언하고 북한과의 민족공조를 통해 핵문제를 해결하는 방안.
2. 한미동맹도, 민족공조도 아닌 제3의 독자적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는 노선.
3. 미국과 일정하게 협조하면서 국제사회와 더불어 해결하겠다는 방안.


등을 제시하면서 왜 노 대통령이 실용주의 외교를 잘 했는지를 설명한다.

이충렬씨는 바로 이곳에 깊은 함정을 파 놓고 우리 국민 모두가 빠져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함정은 바로 이충렬씨가 제시한 세번째 카드에 있었다.

그는 의도적으로 '평화적으로'라는 말을 빼버렸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범주 안에 국민들을 가두려 했다. 우리 국민 중 북핵문제 해결에 있어 미국과 일정하게 협조하면서 국제사회와 더불어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믿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씨는 여기에서 '평화적으로'라는 말을 의도적으로 뺌으로써 노무현 정부의 실리외교에 허점이 있었음을 은폐하려는 음험한 시도를 했다. 이미 한미 두 정상간에 전쟁 가능성을 열어놓아 버렸기 때문에 핵심인 '평화적으로'라는 말을 넣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충렬씨는 자신이 추종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대미외교노선의 합리화에 급급한 나머지 마치 우리가 택할 수 있었던 카드가 3가지밖에 없고 나머지 둘은 가능성이 없으므로 나머지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것은 현실조건에서 가장 합당한 것이었다고 주장하면 국민들이 속을 거라고 착각한 모양이다.

그러나 이미 필자가 말한 대로 카드는 한 가지 더 있었다.

"미국과 일정하게 협조하면서 국제사회와 더불어 '평화적으로' 북핵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방안"이 그것이다.

핵문제를 전쟁수단으로 해결하려 했다면 굳이 노 대통령이 미국까지 날아가 그렇듯 저자세로 '실리외교'를 펼칠 필요까지 있었을까?

마치 되로 주고 말로 얻은 것같은 어조를 풍기는 '노대통령이 잘한 실리외교'에서 우리가 얻은 건 무엇인가? 아무리 살펴봐도 필자는 얻은 것은 없고 잃은 것만 많은 듯이 보인다.

우선 전쟁 가능성은 더욱 확대되었고 지난 여중생 사망 사건으로 촉발된 국민의 자주의식과 자존심이 심대한 타격을 받았으며 모처럼 무르익던 정치개혁의 분위기에 대미 굴욕외교는 원칙을 혼돈시킴으로써 찬물을 끼얹었다.

더욱 큰 것은 지난 5년간 공들여 쌓아왔던 남북한간의 동포애적 신뢰관계에 결정적으로 금이 가고 말았다는 점이다. 힘에 편승한 손쉬운 방법을 택함으로써 노무현 정부는 우리에게 너무 많은 것을 잃게 만들었으며 정부 자신도 국민적 지지기반을 적지 않게 상실했다. 물론 보수진영의 지지를 얻기는 하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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