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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오마이뉴스> 20일자에 이충렬씨가 쓴 <"언제까지 김정일에게 끌려가나"/노대통령 실용주의 외교 잘했다> 제하의 기사에 대한 반론입니다. <오마이뉴스>는 노 대통령의 방미 결과를 둘러싼 각계의 다양한 평가, 견해를 가감없이 전함으로써 이와 관련한 건강한 토론을 기대합니다....[편집자 주]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한편으로는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외교 논쟁이 '굴욕외교' 대(對) '실리외교' 사이의 문제인 양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고, 노무현 정부를 비롯한 방미 성과론자들은 비판 여론을 '반미'로 치부하면서 "그럼, 정부에게 반미하란 말이냐"는 식으로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 방미기간중인 지난 5월 13일, 워싱턴에 위치한 알링턴국립묘지에서 한 무명용사의 묘지 앞에 서서 묵념을 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 로이터 뉴시스

더욱 큰 문제는 노 정부의 전략적 착오를 합리화하기 위해 북한은 물론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까지 부정하는 논리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20일자 <오마이뉴스>에 실린 이충렬 기자의 주장은 이러한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

이 기자는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 발언 가운데 일부에 문제가 있고, 사전에 국민들의 양해와 협조를 구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도, "방미의 성공적 요소는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 근거로 "한미 양국간의 동맹과 신뢰를 재확인함으로써 그 동안 양국 사이에 드리워졌던 불안과 불신의 그림자는 거의 완전히 제거되었다"며, "안보, 군사, 외교, 경제적 불안요소는 사라지고 양국 사이의 안정적 관계발전을 전망할 수 있게 되었다"고 강조했다.

노무현의 변신이 북한과 햇볕정책 때문?

이충렬 기자는 "노대통령의 변화를 가져온 요인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때 그것은 DJ식 포용정책의 결함과 김정일 위원장의 오판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며, 노 대통령의 변신을 북한과 햇볕정책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즉, "김대중 대통령은 북한의 변덕이나 투정을 응석으로 받아들여주는 포용정책을 실시"해 북한 핵문제에 대해 남한이 '왕따'당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이 기자는 대북포용정책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 때의 남북관계를 투정과 응석 수준으로 바라보는 것도 절대 동의할 수 없지만, 햇볕정책을 "일방적 포용정책"으로 규정하고 김대중 정부가 마치 북한에 대해 저자세로 일관한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분명 사실을 잘못 보고 있는 것이다.

이 기자의 말처럼 북한이 여러 차례 변덕을 부리고 약속을 지키지 않은 부분이 있지만, 북한을 자극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쪽은 '부분적으로' 남한 역시 마찬가지였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김대중 정부는 국방백서에 북한을 주적으로 명시하고, 사상 유래 없는 전력증강사업을 추진해 북한으로부터 강력한 반발을 산 바 있다.

또한 북한에게 약속한 전력 지원도 미국의 반대로 하지 못했다. 이러한 남측 요인들은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이 실현되지 못한 가장 큰 요인 중에 하나이다. '탄탄대로'를 걸으면 좋겠지만, 남북관계는 이처럼 때로는 북한 때문에, 때로는 남한 때문에, 우여곡절을 겪어오면서 발전해왔고, 이것이 바로 포용정책의 근본 철학인 것이다.

이 기자는 또한 뉴욕타임즈의 보도를 인용해 노 정부의 오류를 두둔하고자 했다. 그는 한미공동성명과 관련해 "미국은 북한에 대한 군사적 대응을 포함한 조항을 요구했다는 뉴욕타임스의 보도가 있었다"며, "이런 점에서 '추가조치' 항목은 길고 집요한 협상의 산물"이라고 강조했다. 즉, 공동성명에 군사적 대응을 명시하자는 부시 행정부의 요구에 대해 '외교력'을 발휘해 '추가적 조치' 수준으로 선방(善防)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뉴욕타임즈에서 이런 보도는 찾아볼 수 없다. 이충렬 기자는 5월 15일자 NYT 기사를 읽은 것으로 보이는데, 대북한 무력 사용과 관련해 양국이 이견을 보였다는 부분은 있어도, 부시 행정부가 군사적 대응을 공동성명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했다는 내용은 없다. (제가 만약 이충렬 기자님이 인용한 부분을 찾지 못했다면, 그 부분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남한이 배제된 이유를 제대로 보기를

이충렬 기자는 노무현 정부의 '친미외교'라는 결과가 나온 것은, 북한이 핵 협상의 주체로 남한을 배제함으로써 "자신의 발등을 찍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역시 일방적인 주장이다. 북한을 탓하기에 앞서 노무현 정부가 주도적이고 건설적인 중재자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신뢰를 북한에게 주지 못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검제의 전면 수용, 강화된 형태의 한미합동군사 훈련, 이라크전 파병 등을 보고, 더욱 중요하게는 노무현 정부가 출범 이전과는 달리 최근 북핵 문제와 관련해 점차 부시 행정부 쪽으로 경도되는 것을 보고, 북한이 한국을 핵문제와 관련해 협상 파트너로 인정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북한'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이번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는 향후 한국의 다자회담 참여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을 '대북포용정책의 계승·발전자'로 알았는데, 이번 방미를 통해 '부시 행정부의 대북강경책의 지지자'로 드러나면서 북한의 한국 배제 입장은 더욱 강경해질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북한이 '작은 미국'을 반길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북한은 베이징 3자 회담에서 한국의 참여 문제에 대해 유연한 반응을 보인 바 있다. 노무현 정부는 이 기회를 살려 북한을 설득해 건설적인 협상자의 역할을 추구하려는 노력보다는 "핵문제는 북미간의 사안"이라며, 문제가 잘 풀리면 참여하지 않아도 좋다고 말해 버렸다. 그리고 이번 방미를 통해 다자 회담 참여의 가능성을 더욱 멀어지게 한 것이다.

▲ 권양숙 여사와 함께 워싱턴의 한국전기념관을 둘러보고 있는 노 대통령.
ⓒ 로이터 뉴시스

한미공동성명에 다자회담 한국과 일본 참여 입장을 명시했기 때문에, 미국은 앞으로 북한이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회담에 순순히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반면 북한은 위에서 설명한 이유로 남한과 일본의 배제 입장을 더욱 강하게 고수할 것이다. 하루가 안타까운 상황에서 핵문제가 더욱 장기화·복잡화될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남북경협과 핵문제의 연계 역시 그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생각했어야 했다. 이충렬 기자는 "미국의 일방적 군사조치라는 최악의 상황도 예상가능한 상황에서 정경분리라는 것은 문제의 해결 과정과는 전혀 동떨어진 의미없는 카드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과연 그런가? 남한 정부가 경협을 핵문제와 연계하는 상황에서 미국 주도의 대북한 경제제재와 해상봉쇄를 막을 명분이 있는가? 경제제재와 해상봉쇄가 본격화되면 한반도는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태로 내몰릴 것이라는 점을 정녕 모른단 말인가?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경협을 포함한 교류협력을 확대·발전시켜 미국도, 북한도 쉽게 무력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그나마 차선이라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방미, 나는 성공했다고 확신한다"는 이진씨에게

청와대에 근무하는 이진씨는 "방미, 나는 성공했다고 확신한다"는 글에서 "노 대통령의 방미 결과를 놓고 '저자세 외교' '굴욕적 외교'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며, "노 대통령을 반미주의자로 알고 있던 미국인들에게, 북핵 문제 해결의 협상자인 미국에게 노 대통령은 가서 무엇을 어떻게 말하는 것이 옳았을까"라고 비판 여론에 대해 반문했다.

한마디로 '대안이 뭐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녕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 발언과 한미공동성명이 다른 내용으로 채워질 수는 없었을까?

우리의 입장에서는 럼스펠드 독트린이 한반도에서도 관철돼 대북한 군사 행동 및 대중 봉쇄의 군사적 기반을 제공하는 대신에 탈냉전과 남북화해협력시대에 걸맞은 한미동맹의 비전을 담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또한 말로만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아니라 부시 행정부를 설득해 북한과의 진지한 협상에 나서도록 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내용의 최선인 만큼 현실성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노무현 정부의 일방적인 친미는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 잘하지는 못할 망정, 중간은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몇 가지 문제가 된 발언을 통해 '대안'은 없었는지 살펴보자. 먼저 가장 논란을 일으킨 정치범 수용소 관련 발언은 예를 들어 "미국이 53년 전 도와주지 않았다면, 오늘날 한국의 자유와 번영은 기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는 식으로 북한과 우리 국민의 자존심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미국에게 감사함을 표시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북한 정권을 믿지 않는다"는 발언은 굳지 하지 않아도 됐을 발언이다. "미국의 대북 공격 위협이 북핵 문제에 도움이 된다"는 발언 역시, "미국의 억제력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식으로 부시 행정부의 정책을 '모호하게' 지지하는 것으로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밖에도 "현 단계에서 북한과 정치적, 경제적 공동체를 만드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다"라든지, "북한의 행동과 요구는 국제사회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등의 발언은 굳이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특히 이들 발언은 해석하기에 따라 6.15 공동선언을 부정하고 부시 행정부의 대북한 비타협주의를 옹호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어, 오히려 '국익'을 저해한 발언들이라고 할 수 있다.

국익과 실리의 관점에서 보자

그렇다면 자존심은 상했더라도 이번 방미를 국익과 실리의 관점에서 성공했다고 볼 수 있을까? 주한미군 재배치의 신중한 추진, 한미간 신뢰관계 증진 등을 볼 때, 이번 방미를 100% 실패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노 대통령도 강조한 것처럼, 이번 방미의 성과 여부를 판단할 가장 큰 기준은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기여했는가의 여부를 따지는 데 있다. 이 점을 볼 때, 이번 방미는 참담함 실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는 '한미동맹 강화 =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단순 논법 이외에 국민들을 안심시킬 수 있는 정책적 내용을 하나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부시 행정부가 대북한 비타협주의를 고수하고 제국주의적 속성을 노골화하고 있는 것을 상황에서, 부시 행정부에 코드를 맞춰주는 것이 한반도의 평화를 보장해주기는커녕, 오히려 불안감을 높이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정부는 납득할만한 해명을 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공동성명에 "평화적인 수단을 통해 북한 핵무기 프로그램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제거를 위해 노력해 나간다"는 점이 명시된 것을 가장 큰 성과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평화적 해결 원칙은 미국이 계속 얘기해온 것으로써 이를 성과라고 말하는 것은 자화자찬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제거'라는 강력한 표현을 포함시킨 것은 기존의 '해결'보다 후퇴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더욱 큰 문제는 노무현 대통령이 부시 행정부로부터 대북한 무력 불사용에 대한 확약을 받아내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미국이 주장해온 평화적 해결 '수단'에 동의해주었다는 점에 있다.

그 동안 한미 양국은 평화적 해결을 얘기하면서도, 남한 정부는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해결을, 부시 행정부는 국제적 압박과 경제제재, 해상봉쇄, 고립화 가속 등 비군사적인, 그러나 강압적인 수단도 '평화적 수단'에 포함된다는 근본적인 차이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이번 방미에서 '추가적 조치' 명시, 남북경협과 핵문제의 연계, 북한 정권에 대한 불신 표현, 강압적 수단의 유용성 인정 등을 통해, 사실상 미국 주도의 대북한 굴복 외교에 동참하겠다는 점에 합의해주고 말았다.

대북한 압박과 경제제재, 봉쇄 등이 핵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위기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이를 반대해왔던 이전 입장과는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한미공동성명에서 럼스펠드 독트린을 한반도에도 적용하는 길을 열어줌으로써, 조만간 '최후의 수단'으로서의 미국 주도의 대북한 군사력 사용 옵션이 군사적 준비를 갖추게 될 것이라는 점에 있다.

이미 작년 12월 한미연례안보협의회를 통해 미국의 북폭을 '유사(contingency)'의 개념에 포함시키는 데 성공한 미국은 올해 들어 스텔스 전폭기의 남한 배치, B-1, B-52 폭격기의 괌 배치, 핵추진 항공모함인 칼빈슨호 배치 등을 통해 대북 공격 능력을 강화시켜왔다.

▲ 워싱턴의 미 상공회의소 및 한.미 재계 오찬 회의에서 연설중인 노 대통령.
ⓒ 로이터 뉴시스

여기에 덧붙여 미국은 올 여름까지 수도권 방어 계획을 마련하는 것을 비롯해 이른 시일 내에 대북한 감시·정찰 및 정밀타격 능력을 배가시키고, 패트리어트 최신형 등 미사일방어(MD) 계획을 마련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게다가 일본이 유사법제를 통과시켜 법적으로 미군을 후방지원하고 자위대의 해외 파병 길까지 열어놓은 것은 미국에게 대북한 군사행동의 자신감을 심어주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대북한 선제공격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군사력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을 설득해 이러한 조치에 신중해지게 만들지는 못할 망정, 이에 대해 동의·묵인하면서 어떻게 한반도의 전쟁 위기를 막겠다는 것인지, 그 의지와 의도에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정부는 정치적 수사의 모호화를 통해 비판 여론의 예봉을 피하려고만 하지말고, 이번 방미를 통해 한반도의 위기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그 정책과 비전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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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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