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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단체의 주민설명회에 모인 위도의 주민들
ⓒ 참소리
전북도 내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후보지 선정을 둘러싼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부안군 위도면 주민들이 방사성폐기물처리장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방사성폐기물의 안전성도 보장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 도의 일방적인 핵폐기장 유치운동으로 각종 몸살을 앓고 있는 상황에서 위도 주민들이 90%가 넘게 폐기장 유치에 동의하고 있는 상황은 의문점 투성이.

마침 환경운동연합, 반핵국민행동, 위도를사랑하는모임 관계자들이 주민설명회를 연다고 해 20일 위도 방문에 동행해 주민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위도로 들어가는 배를 타러 가는 길. 먼저 눈에 띄인 것은 곳곳에 걸려있는 20여 개의 현수막. '핵폐기물 처리장 유치 찬성 니네가 제정신이냐'라고 쓰여 있는 현수막은 위도 핵폐기장 유치 움직임으로 심각해진 군내 주민들의 갈등을 보여준다.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위도 주민들이 폐기장 유치에 나서게 된 데는 위도 주변에서 많은 개발사업들이 진행됐지만 정작 피해를 떠안아야 하는 주민들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는 것.

새만금 방조제 건설과 전남 영광 원자력발전소에서 배출되는 온배수는 어획량을 급감시키고 생계를 어렵게 만들었다. 거기에 위도에서도 예외가 아닌 농어가 부채는 주민들의 근심을 눈덩이처럼 불어가게 만들었다.

개발사업 휩쓸고 간 자리에 남는 것은 농어가 부채뿐

버스를 타고 마을 안쪽으로 들어갔다. 주민들이 물때에 맞춰 바다로 나간 뒤라 마을은 한층 한적했다.

한켠 집담 옆에 한가로이 앉아 있는 아주머니들이 보였다. 핵폐기장 문제로 찾아왔다고 얘기를 꺼내니 아주머니는 말한다.

"어. 먹고 살기도 막막하고... 난 모르겠어. 남자들이 다 잘 알아서 하겄지."
"그거 지으면 여기 발전되고 사람들도 많이 오고 그런다고 하더라고."
"보상금도 많이 준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디 사실인가?"

아주머니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동네사람들은 당장 돈 3억 정도가 1가구당 보상되는 것으로 알고 있어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도장을 찍었다고 한다.

몇 명의 주민들을 더 만나보니 모두 반응이 비슷하다. 주민들이 모두 찬성하니까 나도 찬성 서명을 하긴 했지만 내용은 잘 모른다.

위도 주민의 전반적인 정서는 정리해본다면 이런 것이었다.

대부분 자식들은 외지에서 살고 있고 자식들에게 해줄 거라곤 보상이라도 받아서 주는 것밖에 없다. 고창에 핵폐기장이 들어서면 어차피 간접 피해를 보는데 보상을 못 받을 바에 직접 유치해서 거액의 돈을 보상받아 늘어나는 농어가 부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로 삼아보자는 등, 국책사업을 유치해서 섬에 사는 어려움과 가난함을 벗어나고자 하는 바람이었다.

▲ 새만금 사업과 영광원전의 영향으로 어획량이 급격히 감소했다.
ⓒ 참소리

▲ 핵폐기장과 유치추진과정의 문제점 설명을 듣고 있는 위도 주민들
ⓒ 참소리
"희망을 걸 게 그것밖에 없었는데..."

환경단체가 준비한 주민설명회는 20여명의 주민이 참석해 조촐하게 치러졌다. 핵의 위험성, 핵폐기장 설치를 반대하는 다른 지역 사례 등의 이야기가 진행되자, 핵폐기물처리장에 대해 별다른 지식이 없었고 유치되면 가구당 3억 정도 받을 것으로 철썩같이 믿고 있던 주민들은 그건 사실과 다르다는 설명에 실망하는 눈치였다.

주민설명회가 끝나고 참석한 주민에게 물어보니 "아 그럼 반대해야지?" "아, 안 좋은 거구만" "그럼 그렇지. 그렇게 많이 보상해주겠어"라는 반응을 보였다. 겉으론 표정의 변화가 없었으나 마을사람들은 이미 상처받은 듯했다.

위도를 고향으로 둔 30, 40대로 구성된 온라인 모임인 위도닷컴의 송종갑씨는 말한다.

"13년간 끌어온 중요한 국책사업인데 이틀만에 90% 이상의 찬성 서명을 받아 제출하는 것은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보상금도 거액을 직접 주는 게 아닌데 주민들이 모두 그렇게 믿고 있는 걸 볼 때 유치추진위원회의 일방적인 설명에 문제가 있습니다."

위도를 나오는 길에 선착장이 있는 파장금 마을 이장님을 만났다. 이장님은 인터뷰를 한사코 거절하다가 지금 위도 주민들의 심경에 대해 몇 마디 말한다.

"지금 육지 사람들 장난하는 거여. 위도 주민들 가슴에 파도치게 하고 말여."
"위도 출신에 서울대 나온 두 명이 있는데 한 명은 찬성, 한 명은 반대. 도대체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이장님 옆에 있던 한 주민이 "그 안 좋다는 것 어디에다 설치하긴 해야는 것 아니여. 그거 위험하다면서 그니까 섬에다가 설치하면 좋은거 아녀"라며 말을 거든다.

다시 이장님은 말한다. "말하기도 싫다니까. 내가 찬성이다 반대다 말하면 주민들이 이렇다 저렇다 말이 많으니까 그런 줄 알아!"

▲ "그럼 그렇지. 그렇게 많이 보상해주겠어"라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는 한 위도 주민
ⓒ 참소리
"순박한 주민들에게 더 이상 상처를 주지 말라"

함께 동행했던 전주환경운동연합의 이정현 국장은 주민들의 이런 상황이 빚어진 것은 (주)한국수력원자력의 과도한 후보지 유치노력 때문이라고 말한다.

"농어가 부채로 가뜩이나 힘든 농·어민인 이 주민들이 새만금사업 등의 개발사업으로 어장마저 잃게 되면 당장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신세가 됩니다. 삶의 근간이 뿌리째 뽑히게 될 지경이 되니 조금이라도 희망이 될 만한 것은 붙잡으려 합니다.

이런 주민들의 취약한 부분을 들추어 폐기장을 유치하도록 만드는 것이 지금까지 한수원이 여러 번 진행해왔던 방식입니다."

개발사업의 거친 생채기가 남은 자리에 또 하나의 상처를 떠안으려는 위도. 돌아오는 길, 푸른 바다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섬 위도는 고요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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