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바탕골소극장'에서 지난 5월 8일부터 공연되고 있는 <돐날>이 화제다.
이 작품은 386 운동권 출신 지호의 둘째 아이 돌날 벌어지는 한바탕 소동을 통해 꿈과 이상을 잃어버리고 일상에 찌들어 사는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작품으로 386 출신의 젊은 작가 김명화씨가 희곡을, 같은 386 출신의 연출가 최용훈씨가 연출을 맡았다.
2001년 초연되었고 이번에 극장을 바꿔 세 번째 공연되는 이 작품은 섬세함과 사실적 표현이 장점인 작품이다. 김명화 작가가 만들어 낸 대사는 치밀하고 유머러스하며 배우들의 앙상블은 군더더기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이다. 작고 지저분한 아파트를 옮겨 놓은 것 같은 무대는 관객들에게 옆집을 엿보는 기분을 만들어 낸다. 홍성경, 길해연, 임성택, 서현철 등 배우들의 과장되지 않은 사실적인 연기는 이 작품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또한 보통의 연극에서 음식을 먹는 장면에서 흉내만 내는데 비해, 이 작품은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실제로 전을 붙이고 술을 마시면서 연기를 한다. 관객은 무대에서 나는 잔치음식냄새에 침을 꿀꺽 삼키게 된다. 이 작품은 눈과 귀뿐만 아니라 코를 이용해서도 작품과 접하게 되는 특별한 작품이다.
이 작품을 연출한 최용훈씨는 한국 연극의 대표적인 젊은 연출가로 20대 초반에 극단 작은신화를 만들어 대학로에 입성한 최연소 극단 대표출신이다. 5월 23일, 공연이 한창인 바탕골소극장에서 <돐날>을 연출한 최용훈씨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다.
- <돐날>은 어떤 작품인가
"<돐날>은 386세대 운동권에서 활동을 하던 주역들의 현재 생활을 담고 있다. 이미 30대 후반, 40대 초반에 접어든 주인공의 둘째 아이 돌날에 친구들이 모여서 벌어지는 한바탕 난장판이다. 학생시절의 치열했던 열정, 꿈, 희망을 삶이라는 현장 속에서 잊어버리고 상실한 채 하나씩 포기해 가면서 남루하고 비루하게 살아가는 386들을 통해서 우리 인생에서 가지고 가야할 것, 지켜내야 할 것, 그리고 결코 잊지 말아야 것들에 대한 얘기를 하는 작품이다."
- 사실적인 표현이 독특한 공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김명화 작가의 희곡을 읽었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궁금하다.
"2001년도 1월, 김명화 작가가 대본을 들고 찾아왔다. 우리극단에서 제가 연출해서 이 작품을 올렸으면 좋겠다고 해서 읽어봤다. 여기 등장인물들이 다 386세대이다. 제가 386세대여서 그런지 내가 살아왔고, 내가 고민하고, 내가 좌절하고, 기뻐하고 슬퍼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명화씨도 386이고, 우리 둘이 잘 이야기하면 좋은 작품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흔쾌히 같이 작업을 해보자고 이야기하게 됐다."
- <돐날>은 사실적인 연출,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연극식으로 접근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은 사건도 없어야 하고 더 일상적인 드라마를 다뤄야 한다. 이 작품은 드라마틱하다. 희곡을 읽으면서 구상을 하다보니 이것이 요즘 이야기하는 하이퍼리얼리즘 계열은 아니지만 하이퍼리얼리틱(hyperrealitic)한 표현을 갖는 대단히 연극적인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희곡을 읽는 순간 연극적인 약속과 기존의 연극적 표현에 의존해서는 이 작품이 담고 있는 느낌이나 정서를 전달하기에는 문제가 있겠다고 느꼈다. 386의 문제, 좌절, 고민들을 또 다시 연극적인 터치로 가기보다는 극장 안에 들어섰을 때 또 다른 일상을 만나는 것 같은 느낌을 관객들에게 주고 싶었다. 그것이 이 작품을 관객들에게 전달하는데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을 했고 그게 성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 디테일한 부분까지 잘 살아있다. 특히 배우들의 연기는 많은 연습을 통해 이루어진 것 같다. 연기지도를 어떻게 하는가
"지도라기보다는 연기자들과 대화를 많이 한다. 연기자들이 전부 극단 작은신화 멤버들이고 많게는 17년, 적게는 6년까지 쭉 같이 작업을 해왔던 친구들이다. 서로 조금만 이야기하고 눈빛만 봐도 서로 맞춰주고 받쳐주고 이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특별히 연기지도보다는 '전체흐름으로 이렇게 가져왔으면 좋겠고, 연기의 톤도 이렇게 갔으면 좋겠다'고 초반부에 이야기를 하면 배우들이 빨리 받아들인다. 서로 호흡이 잘 맞는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와 그들이 내 언어에 대해 반응하는 것이 이미 코드화되어 있다. 내가 어떤 말하면 빨리 흡수하고 그래서 특별히 연기지도보다는 그들과 많은 상황을 같이 공감하고 느끼고 이해하는데 많은 시간을 주력하고 있다."
- 2001년에 초연했고 극장을 바꿔서 이번이 세 번째 공연이다. 이전 공연과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2년만에 재공연이다. 최대한 초연 때 참여했던 스텝, 캐스트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작품을 만들었다. 그래서 연기자 같은 경우 한 명을 제외하고 전부 초연 멤버들이다. 디자이너 스텝들 모두 초연 멤버들이 참여했다. 희곡도 미국에서 돌아온 경주 부분을 조금 더 일상적인 터치로 다듬었고, 배우들의 앙상블이라든지 이런 것들은 초연 때 연기자들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연기의 성숙도를 높이는데 주력했다. 초연을 보고 다시 보러 온 분들도 많이 계신다. 네 번씩 보신 분들도 있는데 초연 때보다 훨씬 좋은 공연이 됐다는 평가를 해주셔서 재공연하는데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
- 여성 작가 김명화씨가 희곡을 썼다. 그래서 여성의 시각에서 극이 진행되는 것 같다. 여성 작가와 남성 연출가의 작업이 어떤 부분에서는 이견이 있을 것도 같은데
"작가의 기본 의도는 충분히 수용했다. 여성작가이기 때문에 조금 더 여성의 시각에 기울어 있는 게 사실이다. 원래 희곡에서는 남자부분의 터치나 수정되기 전 초연부분에서의 특히 주인공 지호의 모습이 지금보다 조금 더 냉정하게 그려져 있는데 이번에는 지호의 아픔을 조금 더 집어넣다. 초연 때부터 계속 연습해 온 것이지만 남자 캐릭터들은 작업하면서 작가와 같이 이야기하면서 함께 캐릭터를 만들었다. 그럼에도 여성작가가 쓴 여성 시각적인 작품이라는 것에 대해서 큰 충돌은 없었고 최대한 그것을 존중하면서 남성 캐릭터들과의 균형을 맞추려 노력했다."
- <돐날>의 작가 김명화 씨는 꾸준히 좋은 작품을 쓰고 있는 젊은 작가로 알려져 있다. 연출가 처지에서 김명화 작가를 평한다면
"굉장히 신중한 작가이다. 보통 요즘 젊은 작가들 중에는 빨리 많이 써내는 작가들도 있는데 신작을 하나 낼 때에도 한 2~3년씩은 묵혀두고 다시 쓰고 생각하는 굉장히 신중한 작가이다. 전체적으로 균형감 있는 작가라고 말할 수 있다. 보통 작가들이 대사가 좋다든지 구성이 좋다든지 어느 한 부분이 도드라지는 작가들이 있는데 김명화 작가는 대사 구사력이나 캐릭터 설정이나 드라마 플롯 구성이나 이런 것들이 균형이 잘 맞는 작가이다. 이번에 작업을 하면서 굉장히 편하게 했다. 작가도 내가 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해 주었고 나도 작가의 뜻을 잘 받아들여 굉장히 많은 합일점 하에서 공연을 올렸다."
- 극단 작은신화는 대학로 젊은 극단의 대표주자로 평가받고 있다. 극단 작은신화에 대해 소개하자면.
"작은 신화는 1986년도에 창단했다. 저를 포함해서 12명의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극단을 꾸렸다. 그 당시만 해도 우리 같은 20대 초반의 사람들이 극단을 조직해서 공연을 한다는 것 자체가 거의 없는 일이었다. 그 당시 여러 선배님들, 선생님들께서 '너무 무모하다', '애들끼리 모여서 무엇을 하느냐' 이런 지적을 많이 했다. 우리는 '애들은 애들끼리 할 수 있는 연극이 있습니다'라는 신조로 꾸준히 팀 작업을 했다.
우리가 극단을 운영하는 시스템이나 작업에 임하는 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번역극보다는 우리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우리 극을 일관되게 추구해오고 있는 것은 90년대 들어서 다른 극단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 것 같다. 주변에서 극단 작은신화의 영향으로 다른 젊은 극단들이 태동하게 됐다고 말하더라. 그래서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젊은 극단의 대표주자라고 하는 것 같다. 우리극단 공연이 뛰어나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고 먼저 스타트를 끊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처음 만들었을 때처럼 젊음의 도전정신,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우리 이야기, 우리 사회의 우리 이야기를 우리들의 시각으로 던지고자 하는 비전을 끊임없이 유지하고 극단에 들어오는 후배들에게 끊임없이 전수하고 있다. 우리 후배 세대들을 통해 젊고 깨어있는 극단으로서 작은 신화의 이름이 이어질 것이다."
- 극단 작은신화를 만들면서 최연소 극단 대표가 되었다. 어떤 계기로 연극과 처음 접하게 되었는가
"중학교 2학년 때 연극을 처음 봤다. 물론 그때는 청소년 공연이었다. 그때 공연 현장, 무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습에 매료됐다. 그때부터 연극 연출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중학교때부터 나 혼자 연극을 보러 다녔다. 당시 내가 중학생이었으니까 예매를 하고 갔다. 예매표 들고 매표구가면 사람들이 굉장히 이상하게 보고 그랬다. 10대 초반이었는데 또래들이 연극을 보러 다니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때부터 연극을 보러 다니면서 연극을 계속 느꼈고. 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연극반을 했고, 대학교 때 연극을 하려고 서강대학교에 진학했다. 서강연극회에 들어가기 위해. 서강연극회에서 연극공부와 실습을 많이 했다. 중학교 2학년때부터 계속 연극 연출을 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 어려서부터 연극의 매력에 흠뻑 빠진 것 같다. 연극의 매력을 뭐라고 생각하나
"사람과의 직접적인 교류라고 본다. 연습을 하면서 배우들과의 인간적이고 직접적인 만남이 있고 그 만남이 이루어진 다음 배우들을 통해 관객들과 자연스런 만남과 교류가 이루어진다. 사람들끼리 사람 사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연극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연극을 통해서 뭔가 거창한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보다 정말 사람들 이야기를 사람스럽게 하고 싶다. 그것에 가장 어울리는 매체가 연극이라고 아직도 믿고 있다."
- 극단 작은신화는 이후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나
"조그만 워크숍 공연은 계속하고 있고. 조금 규모가 큰 공연으로 이번 12월에 학전 블루 소극장에서 '우리 연극 만들기'라는 우리가 90년대 초반부터 하고있는 창작극 발굴 프로젝트가 있다. 신인이든 기성이든 공연 안된 작품들을 저희 극단 식구들이 같이 모여서 발표 기회를 갖는다. 견본시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거기서 많을 때는 네 작품, 다섯 작품, 적을 때는 두 작품씩 매회 공연을 해서 그 중에서 성과가 좋고 완성도가 있고 가능성이 있는 작품은 다시 우리가 정기공연을 하게 된다. 젊은 작가 작품을 발굴하기 위한 우리 극단 나름의 노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