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발 '동남풍'의 여파가 노동자의 도시 울산과 한나라당 지도부의 본거지 경남에까지 점차 확대되고 있다.
울산 정치개혁추진위원회(이하 울산 정개추)가 오는 6월 4일 출범을 앞두고 대대적인 여론몰이를 준비하고 있고, 경남지역도 본격적인 개혁인사 영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르면 6월께 개혁신당 PKU(부산·경남·울산) 벨트권이 형성되며 향후 범개혁신당 출범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울산 정개추는 노무현 대통령, 문재인 민정수석의 민변 동지인 송철호 변호사가 위원장을 맡고 있다. 지난 92년 노무현 대통령의 권유로 정치권에 첫발을 담근 송 변호사는 지난 6·13 지방선거 당시 민주노동당 울산시장 후보로 출마해 근소한 표차로 낙선할 만큼 지역내에서는 인지도가 높다. 비록 임명이 잠정 유보되긴 했지만 송 변호사는 최근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특보로 내정되기까지 해 더욱 주목받고 있다.
현재 울산 정개추는 지역내 개혁인사 세 모으기로 분주하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한 진보세력과 한나라당으로 중심으로 한 보수인사는 넘쳐나지만 정작 울산 정개추가 희망하는 '개혁적 인사'는 찾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등이라도 비빌 쪽은 기존 민주당 지지자와 대선 당시 국민참여운동본부 멤버, 노사모, 일부 시민단체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만큼 민노당과 한나라당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기가 벅차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러한 현실적 한계를 감안해 울산 정개추는 한나라당의 개혁세력, 민주노동당의 온건세력 공략에 적극 나서고 있다. 울산 지역 노동계 원로급 인사와의 친분을 적극 활용해 명망있는 진보인사를 참여시키고 시민단체 출신의 한나라당 인사 등도 함께 할 계획이다. 다만 국민을 정치혐오로 내몬 원죄를 씻어내기 위해 '고해성사 서약'에 동참한다는 전제하에서이다. 물론 송 변호사 자신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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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변호사가 대통령 정치특보로 내정된 다음부터는 정개추 사무실은 자발적 참여를 문의해 오는 전화가 폭주하고 있다고 한다. 한나라당 내에서도 비교적 소수파에 해당하는 박맹우 울산시장도 울산 정개추가 본 궤도에 오르면 참여할 것이라는 소문도 돌고 있다.
울산 정개추는 부산 정개추의 경우와 유사한 정치활동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즉 민생현안에 천착한 '생활정치'의 실천이 그것. 중앙 정치가 직접 챙기지 못하는 울산 시민들의 요구를 직접 해결하기 위한 스킨십 정치를 통해 지역민들의 지지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고속철도나 국립대학 유치, 산업재해의료원 건립, 신항만 문제 등 울산 시민들의 숙원사업 해결에 대통령 정치특보라는 프리미엄을 적지 않게 활용할 방침이다.
하지만 민노당의 협조와 호응이 없으면 울산 정개추의 이같은 구상은 공염불이 될 공산이 크다. 개혁·진보세력이 분열돼 정치개혁 운동의 탄력을 받지 못하면 정개추 활동과정에서 세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총선에서 한나라당 어부지리 승리를 자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송 변호사가 민노당과의 선거공조를 염두에 두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에 대해 그는 "2004년 총선에 앞서 당 대 당 경선도 생각 중이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문제는 또 있다. 정개추에 자발적 참여의사를 밝혀오는 인사들이 '지분'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종종 난관에 봉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송 변호사는 "신당이 국민으로부터 얼마나 지지를 받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본다. 바람이 강하다면 이들도 휩쓸릴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한나라당 장기집권이 개혁세력 뿌리 앗아갔다"
경남쪽도 상황이 비슷하다. 수십년간 한나라당의 텃밭이었던 까닭에 지역내 개혁인사는 거의가 한나라당에 조금씩은 적을 두고 있다. 게다가 중공업 단지가 집중돼 있는 마산·창원, 양산, 거제 등은 민노당 강세 지역이어서 이들과의 공조없이 '한나라당 뒤집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송인배 민주당 양산지구당 위원장과 함께 청와대 특별관리대상으로 지목된 장상훈 민주당 거제지구당 위원장은 이같은 현실을 감안해, 진보와 개혁, 보수적 개혁세력을 아우르는 개방기구로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그는 또 "한나라당의 일당 독재가 젊은 개혁적 정치신인의 생산을 가로막았다"며 경남 나름의 정치적 한계를 이해해 달라고 했다. 그는 경우에 따라서는 울산 정개추처럼 민노당과의 후보단일화를 추진할 수 있다고 공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남지역은 지방분권·정치개혁 추진위원회(이하 지정추)를 구성, 신당 창당의 기반을 닦는데 일정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민주당 밖 경남지역 개혁세력 모임인 참여개혁운동본부도 발족됐다. 지정추는 신당 출범을 전제로 기간당원 모집과 개혁인사 물색에 이미 돌입했고, 참여개혁운동본부도 시민단체과 개혁인사 모집에 적극 투신하고 있다. 현재 참여개혁운동본부에는 차정인 변호사와 김용기 교수를 중심으로 진주지역 김재경 변호사나 거창지역 권문상 변호사 등 국참 출신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몇 명의 덕망있는 인사 영입에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김정권 도의회 부의장이나 하동군수를 역임한 정구용 전 군수 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고 정해주 진주산업대 총장도 참여할 뜻을 내비치고 있다. 김병로 진해시장도 함께 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경남지역이 부산·울산과 다른 점이 있다면 개별 개혁인사의 지역기반이 없이 총선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다는 점. 따라서 탄탄한 지역조직과 신망이 갖춘 인사가 아니면 한나라당과의 맞대결에서 승리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김두관 전 남해군수의 행정자치부 장관으로의 '영전'을 이 지역 개혁세력들은 매우 아쉬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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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최근에는 "무차별적으로 유력인사들을 영입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개혁당 경남위원회는 지난 26일 논평을 통해 "현재 영남권 민주당 일각에서 공식, 비공식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유력 인사 영입작업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며 "특히 암묵적으로 유력인사를 사전 영입하고 그 후보를 이면에서 지원하는 조작된 경선방식을 획책하려 한다면 이야말로 상향식 공천을 빙자한 국민적 사기행각일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민주노동당과 한나라당의 양축 사이에서 '개혁'의 좌표 설정에 고민하는 경남지역 정치개혁세력의 몸부림이 '주류세력의 교체'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부산 못지 않은 동남풍 바람을 일으킬 잠재력을 충분한 것만은 사실이다. 신당을 추진하는 이들의 핸드폰이 쉴새 없이 울려대는 것이 바로 '희망'의 증거인 셈이다. 민노당과 한나라당의 두터운 벽을 깨고 지역 정가의 새로운 축으로, 지역주의 극복의 중추기지로 성장하는 것이 '꿈'은 아닌 듯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