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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의 출범이후 '한총련 합법화'를 둘러싼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5월 한달 만큼 한총련 학생들의 희비가 엇갈린 때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13일 대법원의 '이적단체판결'이라는 결과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민사회단체, 학계, 종교계까지 한총련의 전향적 해결을 요구하고 있는 현 상황은 아직 '한총련 검증'에 대해 충분히 논의하지 못했음을 역으로 나타내는 것은 아닐까?
참언론기자단에서는 합법화 요구현장 세 번째 순서로, 작년 이맘때쯤 한총련 수배자의 몸으로 공개교육실습을 진행하다 보안수사대에 연행되어 또다시 교사의 꿈을 미뤄야만 했던 김정희(27·경북대 국어교육 4년)씨를 만나 한총련 합법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두 번째 맞는 교생실습
시내 한 찻집에서 만난 김정희씨는 현재 경북대학교 사대부속고등학교에서 교생실습중이었다. 매일 밤을 새워가며 수업준비를 하면서도 아이들과 만나는 것이 너무도 즐겁다는 김씨는 자기 반 학생에게 받았다는 선물까지 보여줬다.
"작년에는 학교 교문을 드나드는 것 자체가 너무나 두렵고 피가 마르는 일이었어요. 또 한총련의 정당성을 알린다는 것을 교생실습과 함께 해나가야 했기 때문에 한곳에 완전히 집중하기도 힘들었구요"
라며 교문밖을 나서다 마스크를 쓴 공사 인부 차림의 수사관에게 붙잡혀 연행됐던 작년 기억을 힘겹게 떠올렸다. 하지만 올해는 김정희씨를 이렇게 시내에서 떳떳하게 만날 수 있다. 구속이라는 죄값(?)을 받았기 때문이다. 김씨는 교생실습 12일째 되던 날 연행되어 재판을 받고 2달 반 정도 수감생활을 했다. 그리고 작년 2학기 다시 복학을 해서 수업을 받았다. 수배의 몸에서 풀려난 김씨에게 이제는 누구도 그 교생실습을 방해할 이유가 없었다.
좀더 일찍 관심을 보여줬더라면…
그는 지금처럼 한총련에 대한 논의가 물꼬를 튼 상황에 대하여 기쁨보다는 씁쓸함을 나타냈다. "작년에는 소중한 교생실습을 '수배자'라는 이유만으로 박탈당해야만 했던 사실과 한총련 이적규정의 부당성을 그렇게 알리고 호소해도 침묵하던 언론들이 요즘은 오히려 과도할 정도로 수배논란을 부추겨 진실을 왜곡하고 있어요"라며 '한총련이라는 이유만으로 몇 년씩 감옥에서 썩고, 인간의 기본적 권리도 누리지 못하는 수배자들의 현실에 대하여 좀더 일찍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다주었다면'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한다.
이적규정 해제가 한총련을 변화시킬 수 있다
95년에 대학에 입학해 6년째 대학 4학년 과정에 머물고 있는 김씨는 한총련의 중흥과 쇠퇴를 모두 지켜본 산 증인이다. "제가 1학년때만 해도 한총련의 모습은 지금과 아주 달랐어요. 그야말로 전국의 모든 대학생들이 함께 숨쉬는 대중적 모임이었죠. 자신이 한총련 소속임을 떳떳하게 생각했고, 모두가 열린 공간에서 치열하게 나라와 사회를 걱정하고 논의했어요"라며 현재 한총련이 비판받고 변화하지 못하는 근본원인은 오히려 97년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옭아맨 것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김씨는 "많은 토론회나 간담회를 볼때마다 '한총련이 변화해야 한다. 지금 모습으로는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라는 똑같은 결론을 볼 때 더욱 답답해요"라며 '한총련도 사람의 조직인 이상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비판받을 점이 분명히 있다는 점은 이미 충분히 알고있다'라고 인정한다.
"한총련이 지금처럼 자생력을 가지지 못하게 된 것은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 탄압하고 압력을 가했기 때문입니다. 공개적으로 통일과 북한을 이야기할 수 없게 되면서 당연히 한총련은 학생들과 함께 호흡할 수 없는 폐쇄적 조직이 될 수 밖에 없었고 풍성했던 나무가 앙상한 가지만 남은 상태에서 무조건적으로 한총련만 변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역설이지요"라며 '무조건 법으로 억압하고 강경한 태도를 취하기보다 한총련에 대하여 애정을 가지고 비판어린 시선을 가져주는 것이 더욱 중요한 자세가 아닌가'라고 반문한다.
대학생이 통일과 북한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현실
여자로써 4년이라는 수배생활을 겪어낸 김정희씨. 98년 수배이후 '한총련 탈퇴서' 한 장이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그의 양심과 지지하는 수많은 후배들 앞에서 그는 한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때문에 작년 연행되어 취조를 받으며 자신의 죄목을 보게 되었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농활 자료집을 만들었다는 이유부터 '주체사상토론회'를 기획했다는 것도 죄가 되더군요"라며 씁쓸하게 말하는 김씨는 '한총련=빨갱이'로 보는 논리가 전쟁이 끝난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성립되는 논리인가라고 묻는다.
"주체사상토론회는 우리가 과연 지금 이 시대에 북한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갖고 준비했던 공개토론회입니다. 저희도 북한에 대하여 많은 정보를 가지고 계신 많은 교수님들 모시려고 정말 노력했지만 몇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거절하시더군요"라며 '대학생이 북한을 논의하는 것은 금기되는 일이고, 학자들이 이야기하면 "심포지움"이 되는 현실'에 많은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그럼 당시 참가하고 호응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죄인입니까?"하고 그는 반문한다.
대학의 본래모습과 정체성 찾아야
김정희씨는 사회가 점점 '개인화'가 되고 함께 어울리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잊어가고 것이 현실이지만, 대학만큼은 공동체문화의 보루로 사회에 대한 건강한 비판과 자극을 줄 수 있는 본연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남들이 하도 빨갱이라고 하니까 하루는 정말 진지하게 '정말 내가 빨갱이인가"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저는 단지 우리민족을 적이 아닌 민족의 처지로 보고싶다는 이유밖에 없어요. 항상 국가정보원에서 여과되고 걸러진 정보만 접하는 현실에서는 제대로 된 통일을 대비할 수 없어요"라며 '한총련이 북한만을 옹호하고 무작정 따라간다'라는 생각은 정말 큰 편견이며 북한에 대해 아직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며 언급조차 하지 못하게 하는 현실은 분명히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말한다.
나는 여전히 '한총련'
수배가 풀리고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여전히 마음은 '한총련'과 함께 하고 있다는 김정희씨. 하지만 그녀는 아직도 한총련에 대하여 변한건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저의 목소리가 양심을 지킨 죄밖에 없는 많은 수배자들이 합법화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족하다"는 그에게서 작년 어느기사에서 보았던 대답이 떠오른다.
"한총련 대학생들이 어려서 그렇다고 말씀하시는데요. 맞습니다. 어려서 그렇기 때문에 더욱 관용적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어른이라면 그들에게 '북한으로 보내버려'라고 말씀하실게 아니라, 남한이 정의로운 사회가 되도록 힘쓰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이 나라가 정의롭지 못하고 젊은이들에게 만족스럽지 못한 사회이다 보니까 열혈청년들이 저럴 수 있는겁니다. 자신과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 내 머리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무조건 감옥에 처넣어야 한다는 사고가 판치는 상황에서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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