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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지난해 1월 30일 국사편찬위원회 회의에 참석했던 편찬위원들의 발언내용 가운데 '친일인명사전' 편찬과 관련한 부분만 발췌한 것이다....[편집자 주]

▲ 유영익 위원(연세대 석좌교수)
유영익: 회의자료를 보면 올해 국편의 주요사업으로 '한일관계연구지원'이라는 이름으로 민족문제연구소에 <친일인명사전> 편찬 경비를 지원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국가기관이 민간단체에 국고를 지원한다는 것이 문제가 없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설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성무: 예, 그렇지 않아도 이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실 분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분명히 설명이 필요합니다. 민간단체에 국고를 보조하는 이 예산은, 우리가 제안한 것도 아니고 달라고 요구한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반대했습니다. 왜 이러한 용도로 국고를 민간에 주느냐 하고 말이죠.

그런데 이 단체 사람들이 국회의원들에게 로비를 했는지 예산심의 과정에서 일부 국회교육위원들이 그렇게 주장을 했습니다. 답변할 때 장관이 이 문제를 나한테 묻길래 내가 "이건 안 됩니다. 이게 잘못되면 살생부가 되는데, 이걸 교육부나 국편이 지원한다고 하면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하고 조언을 했고 당시 장관도 긍정적인 답변은 유보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넘어가나 했더니 나중에 다시 국회에서 교육위원도 아닌 예결위원들이 그 자리에서 직권으로 예산을 만들어서 내려보내고 말았습니다. 받고 보니까 교육부로서도 그 단체에 직접 주기가 곤란하니까 다시 우리를 통해서 주도록 한 것이지, 절대 우리가 달라고 생긴 예산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 예산은 상당히 정치적인 것이어서 나중에 큰 문제가 될 것으로 저는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기동: 원래 국회의원들이 권한 밖의 일들을 많이 해왔는데, 이번 국회가 그게 가장 심합니다. 이건 완전히 월권입니다. 예산이 국편으로 오게 된 실제 사실관계는 그렇더라도 이것이 국편의 금년도 예산으로 편성되어 있는 이상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국편이 큰 문제에 말리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신형식: 좀더 확실하게 안 된다는 의사표시를 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성무: 여러 차례 안 된다고 했습니다만, 여기는 국가기관이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예산을 지정해서 내려보내면 다른 도리가 없거든요. 우리 편사부장이 문제점을 들어 이의를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이기동: 국회 월권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민족문제연구소라고 하는 단체의 사람들이 능력이나 여러 면에서 검증이 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성무: 그런데 그곳 편찬위원장이 우리 국편위원인 이만열 교수로 되어 있습니다. 최근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병휴: 저는 국회의원들이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능동적으로 지원했다는 자체가 믿어지질 않습니다. 그쪽에서는 이 일을 막을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 같은데, 막지 않고 오히려 지원했다는 사실이 참 놀랍습니다. 사실 <친일인명사전> 나오면 그것으로 인해서 당할 사람들이 많을 터인데 말이죠.

이성무: 그런데 국회의원들이라고 해서 다 그런 입장인 것은 아니예요. 사실 이 문제를 주창하는 사람들은 친일 문제에 해당이 안 되는 젊은 국회의원들이지 국회의원들 모두가 아니거든요.

이성미: <친일인명사전>이 과연 실제로 나올 수 있을까요?

이성무: 예산을 들이면 나오겠지요. 그렇지만 저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서 이만열 교수한테도 "이것이 잘못되면 살생부가 될텐데 나중에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느냐?" 하고 물었더니, 이 분 말씀이 "아주 객관적으로 자료에 의해서 하면 된다"고 합니다.

▲ 이존희 위원(서울역사박물관 관장)
이존희: 문제는 객관성을 유지한다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데 있지 않겠습니까?

민현구: 상황이 그렇다면, 전에 우리가 국사교육 강화 건의서를 냈듯이 이번에도 결의를 해서 그 예산을 도로 가져가라고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이성무: 그건 어려운 말씀입니다. 경우가 다르거든요.

이기동: 결국 이 예산은 이중의 문제가 있는 겁니다. 첫째는 경위야 어찌되었건 국편이 민간단체에 국고를 지원한다는 것이 상리에 맞지 않다는 것이고, 둘째는 기왕 지원할 바에야 좀더 의의가 있는 사업이어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내용이 아주 민감한 사안이거든요. 이건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많습니다.

유영익: 저는 이 문제를 다른 사안과 관련해서 생각해 볼 수도 있다고 봅니다. 아까 통치자료 논의를 했지만, 어찌되었건 이번 일이 선례가 되는 것이고, 따라서 앞으로 통치자료를 정리하겠다는 연구단체가 있으면 그곳에 국고를 지원하는 근거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구태여 자료들을 여기로 다 끌고 올 필요 없이 민간단체가 그 사업을 할 수 있도록 경비를 지원하는 선례로 삼으면 좋지 않겠습니까?

이성무: 그 문제에 대해서는 당장 구체적인 생각이 없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이 예산은 형식적으로는 우리 국편을 거쳐가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추후 큰 문제가 될 수 있는 사안입니다. 그래서 제가 장관께도 여러 차례 이런 사업에 국고를 지원하려면 정부에서 무엇인가 확고한 방침을 가지고 해야지, 국회에서 요구한다고 밀려서 일을 하면 안 된다고 말했지만, 국회에서 그냥 밀어붙이는 바람에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병휴: 사실 이 문제는 언젠가 한번쯤은 짚고 넘어가야 하는 사안이 아니겠습니까? 다만 객관성과 공정성이 문제지요. 각종 사전들이 나와 있으니까 <친일인명사전>도 나오지 말란 법은 없지요. 그래도 공정성과 객관성이 문제입니다.

박성래: 순수 민간으로 하면 사실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이것을 국고로 한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지요.

이성무: 우리 국편은 독립기관이 아니고 교육부 직속기관입니다. 교육부에서 결정하면 국편은 따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거부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또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회가 결정한 것을 거부할 수도 없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 박성래 위원(한국외국어대 교수)
박성래: 상황이 그렇다면 적어도 우리 회의록에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국고를 지원하는 것을 국편위원들이 모두 반대했다는 기록은 분명히 남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성무: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우려를 하시니까 그 부분을 명백하게 기록에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원망을 들을 수 있거든요. 서기는 이 부분을 잘 기록해 주시기 바랍니다.

민현구: 기록에도 남길 뿐만 아니라 새로운 장관에게도 이 문제를 다시 한번 제기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성무: 예, 새 장관께 이 문제가 대단히 민감한 사안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지원하는 것은 전임 장관의 소신이기도 했습니다. 새 장관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기회를 만들어서 다시 한번 의논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성미: 제 경험을 하나 말씀 드리겠습니다. 제가 '이상범'에 관한 글을 하나 쓴 적이 있습니다. 이상범의 생애를 도면 이런저런 일들이 많이 있었는데, 젊은 사람들은 그 사람이 친일파였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여러 가지 사정이 있어서 피치 못해서 친일을 한 부분도 있고, 그래도 상당히 민족적인 화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취지로 발표를 했더니 젊은 사람들이 막 비판을 합니다.

젊은 교수 중에 한 사람은 심지어 "이상범의 그림에는 나무가 많이 나오는데, 그 중에서 미루나무가 주로 일본에서 자라는 미루나무 아니냐?" 이런 소리까지 합니다. 참 어이가 없어서 제가 밖에 나가 실제로 우리나라 미루나무를 봤습니다. 그랬더니 그 그림 속의 나무가 우리나라 나무더라는 얘기지요. 그런 식으로 억지를 쓰는 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친일 문제는 절대로 객관적으로 볼 수가 없는 사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영익: 일이 이미 이렇게 된 것을 되돌릴 수는 없을 것 같고, 위원장께서 장관님을 만나시면 이 문제를 다시 한번 강력하게 제기해서 국편위원들의 의사를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성무: 여기 모이신 위원님들의 뜻이 모두 같으니까 장관님을 만나면 제가 이 문제를 다시 한번 의논하도록 하겠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명단(가나다순)]

직 위 / 성 명 / 현 직 / 전 공

위원장 이성무(李成茂)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중세사
위원 김정배(金貞培) 고려대학교 한국고대사
위원 민현구(閔賢九) 고려대학교 한국중세사
위원 박성래(朴星來) 한국외국어대학교 한국과학사
위원 신용철(申龍澈) 경희대학교 동양근대사
위원 신용하(愼鏞廈) 서울대학교 한국근현대사
위원 신형식(申瀅植) 이화여자대학교 한국고대사
위원 유영익(柳永益) 연세대학교 한국근현대사
위원 이기동(李基東) 동국대학교 한국고중세사
위원 이만열(李萬烈) 숙명여자대학교 한국근현대사
위원 이병휴(李秉烋) 경북대학교 한국중세사
위원 이성미(李成美)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미술사
위원 이존희(李存熙) 서울역사박물관 한국중세사
위원 이현희(李炫熙) 성신여자대학교 한국근현대사
위원 한영우(韓永愚) 서울대학교 한국중세사
위원 강영철(姜英哲)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중세사
(*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


(* 참고로 전체 편찬위원 17명 가운데 이날 회의 참석자는 이성무 위원장, 강영철 편사부장, 이존희, 유영익, 신용철, 신용하, 신형식, 이병휴, 이성미, 박성래, 민현구, 이기동 위원 등 12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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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환 기자는 월간 말 취재차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언론, 지역, 에너지, 식량 문제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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