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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은 김구가 아닌 링컨을 존경하는 이유를 '승리'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책 속에 나타난 그의 감동은 '현실의 승리'보다는 패배자를 위한 '수사학적 연설문'으로부터 나오는 듯하다.
노무현은 김구가 아닌 링컨을 존경하는 이유를 '승리'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책 속에 나타난 그의 감동은 '현실의 승리'보다는 패배자를 위한 '수사학적 연설문'으로부터 나오는 듯하다.
<노무현이 만난 링컨>(학고재, 2001)에 그 이유가 한 권의 책으로 기록되어 있다. 특별히 노무현은 고통스런 낙선의 순간이었던 2000년 4월 13일의 총선개표날 저녁에 "링컨과의 충격적 만남"이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 감동의 직접적인 계기는 '전후상처를 봉합하기 위한 화해와 사랑의 정신'을 담은 링컨의 두 번째 취임 '연설문(!)'이다. 노무현은 그 감동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링컨은 남북전쟁의 승리를 목전에 둔 시점의 한 취임사에서 승리니 패배니 하는 말을 쓰지 않으려 했습니다. 남부를 적으로 몰아 세우지도 않았고, 정의니 불의니 하는 말이나, 선이니 악이니 하는 말로 남과 북을 갈라 치지도 않았습니다. 화해와 사랑을 이야기했습니다. '같은 성경으로 같은 하느님을 섬기면서 제각기 상대방을 응징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어느 쪽의 기도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라는 구절에서는 참으로 미국의 역사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자는 그 감동이 좀 낯설다는 느낌이 든다. 오직 승리만을 위해, 동족상잔의 적으로 몰아세웠으며, 연방탈퇴와 노예제를 불의로 간주한 그 동안의 언설에도 불구하고 승리자의 연설문에 적대적인 표현이 담겨있지 않다는 사실 때문에 '충격적인 감동'을 받았다는 것은 아무래도 공감이 가지 않는다. 패배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 연설문은 승리자의 위선으로 가득 차 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은가? 실제의 역사가 '말'을 뒷받침하지 못한다면.

최근에 출간된 링컨에 대한 또 다른 책 <링컨의 진실> (사회평론, 2003)에서는 링컨의 이러한 '화해와 사랑'의 정신이 문자 그대로 위선이었음을 주장하고 있다. 저자 토마스 J. 딜로렌조는 남북전쟁에서 북군에 의해 저질러진 민간인을 상대로 하는 보복 정책에 대하여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링컨이 군사령관들과 전신을 통해 항상 접촉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링컨 역시 미시시피 일대에서 벌어진 것과 같이 비무장한 여자와 아이들을 상대로 한 '전쟁 방식'을 승인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것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링컨은 셔먼과 그랜트의 업적을 치하하고 푸짐한 상을 내렸다."

전쟁 후에는 어땠을까? 1865년, 대통령의 재선취임 직후에 암살당한 링컨은 '재건기'를 직접 지휘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딜로렌조는 링컨이 전쟁 중에 헌법적 자유를 무시한 결과 당원들은 그의 이름을 들먹이며 전후에도 똑같은 방식의 조치들을 취하고자 했다고 주장한다. 그가 인용하고 있는 로버트 E. 리 장군이 텍사스 전 주지사인 플레처 스톡데일에게 한 말은 참고할 만하다.

"주지사 양반, 만약 북부 사람들이 승리를 그런 방법으로 활용할 줄 내가 미리 예견했더라면, 애퍼매턱스 코트하우스에서 그렇게 항복하지 않았을 거야. 그럼, 아니고말고. 항복의 대가가 그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애퍼매틱스에서 내 용감한 병사들과 함께 오른손에 칼을 쥐고 싸우다 죽었을 걸세."

링컨의 진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노무현이 만난 링컨>을 포함해 가장 일반화되어 있는 신화는 남북전쟁이 노예제라는 부정의를 두고 맞선 북부와 남부의 갈등이라는 명제다. 이에 대해서도 딜로렌조는 정면에서 반박한다. 전쟁은 노예제라는 부정의를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호관세를 통해 남부를 착취하는데 불만을 품은 남부연합의 연방탈퇴를 무력으로 진압한 침략이라는 것이다.

딜로렌조의 주장은 전쟁의 목적이 무엇이었든 연방을 탈퇴하고자 하는 주에 대한 이러한 무력진압은 연방탈퇴의 자유에 관한 연방헌법 정신을 위반한 것(따라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게티즈버그의 명제 역시 북부연방만을 위한 논리적 위선)이라는 주장에 근거하고 있다. 그리고 전쟁의 핵심이 노예제가 아니라 연방제였다는 그의 주장은 1862년 <뉴욕 트리뷴>의 편집장인 호리스 그릴리에게 보낸 유명한 공식서한에서 직접 확인된다.

"이 전쟁에서 나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연방을 구하는 것이지 노예제를 구하거나 파괴하는 게 아니오. 노예를 해방하지 않고도 연방을 구할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할 거요. 또 노예를 해방하고 연방을 구할 수 있다면 역시 나는 그렇게 할 거요. 노예제나 유색 인종을 처리하는 문제는 연방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에 따라서 결정되어야 하오."

전쟁의 결말은 북부의 승리였고 링컨은 자신의 뜻대로 이제 연방을 각 주들의 느슨하고 '자발적인(!)' 결사가 아니라 무력에 의해 지배되는 하나의 강력한 제국으로 만드는데 초석을 놓았다. 이를 위해 남부와는 전쟁도 불사했으며 북부에서는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특별히 반전운동가)에 대해 온갖 위헌적인 인권탄압 조치들이 취해졌다는 것이 딜로렌조의 결론이다.

그런데 <노무현이 만난 링컨>에서는 링컨이 이렇게 묘사되고 있다. 링컨은 "자신의 (백악관 입성) 환영단이 비당파적인 모습이기를 원했"고(노사모 해체 원함?), 매클렐런 장군의 막사를 방문하고도 만나지 못할 정도로 힘 없는 대통령이었지만 "결단과 포용"으로 극복했으며(한나라당 방문 제의?), "국무회의가 토론과 논쟁의 장이 되어도 불평하지 않았고 나아가 스스로 논쟁의 장을 만들었"으며(말, 말, 말?), "링컨은 선거를 목전에 두고도 관용을 통한 국민통합 방침을 철회하거나 약화시키지 않았다"고(개혁의 실종?) 평한다.

한 인간을 평가하고 역사를 보는 시각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그 개인적 시각이 한나라의 지도자의 시각임으로 인해 현실의 정책과 나라의 운명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것이라면 문제가 좀 다르다. 지금 기자가 <노무현이 만난 링컨>이라는 책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그의 링컨 독해가 그의 사고방식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딜로렌조의 링컨에 불편함을 느낀다 할지라도 역사 속의 정치를 신화가 아닌 과학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정직한 에이브' 식의 일차원적 관점을 탈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딜로렌조의 링컨에 불편함을 느낀다 할지라도 역사 속의 정치를 신화가 아닌 과학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정직한 에이브' 식의 일차원적 관점을 탈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링컨의 진실>이라는 책의 관점이 진실 같지 않아서 부담스럽다면 그 관점을 떠나 우선 역사적 사실 관계만을 판단의 대상으로 삼아보자. 링컨의 취임 연설문에 나타난 '화해와 사랑'의 정신은 현실의 세계에서 벌어진 '전쟁과 살육'에서 승리가 확인되는 시점에 나온 문자 그대로 '연설'이다. 어떻게 평가하든 한 사람의 정치인이었던 링컨을 '정직한 에이브'와 '겸손한 권력'의 관점에서만 평가하는 것은 역사의 비정한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물론 링컨이 고심했듯이 분열된 나라를 하나의 공동체로 존속시키기 위한 통합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 통합이 '화해와 사랑'만으로 점철된 가치맹목적인 통합일 수는 없다. '지역 대통령' 링컨의 전쟁 목적이 노예제 폐지가 주된 것이었든 아니든 (결과적으로) 노예제 폐지라는 당위를 업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위헌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전쟁이 지금까지도 합리화되고 있는 것이다.

기자의 현 노무현 정권에 대한 불만은 바로 다음과 같은 사태다. 현 우리의 정치상황은 링컨 당시의 정치상황이나 별반 다르지도 않다. 그런데 싸우기도 전에 화합을 부르짖고, 국민통합만 할 수 있다면 가치판단은 뒷전으로 돌려버리는 노무현 정권의 작금의 모습이 링컨에 대한 독해로부터 영향받은 것이라면 링컨을 심각하게 오독한 것이라는 말이다.

기자의 결론은 이것이다. 링컨은 지역문제든 가치판단이든 지지자들을 실망시키고 반대자들에게 잘 보이는 방식으로 '국민통합'을 행한 사실이 없다! 이점에 관한 한 <노무현이 만난 링컨>에서 <링컨의 진실>을 빼면 남는 것은 '연설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위헌적인 침략이나 인권탄압을 배워서는 안되겠지만) 노 대통령의 뜻대로 굳이 링컨을 배우겠다면 스스로가 말했듯 "이상을 추구하되 현실에 두발을 굳건히 딛고 서 있"는 링컨의 교훈을 제대로 배우라는 것이다.

그런데 혹, 노 대통령은 자신의 대통령 당선으로 전쟁은 이미 승리했으므로 이제는 싸움을 끝내고 상처를 치유해야할 시간이라고 믿고 있는 것일까? 정말 그렇게 믿고 있다면 허망한 일이다. 지지자들은 노무현의 당선을 '가문의 영광'이 아니라 개혁을 향한 수구세력과의 진짜 전쟁의 시작으로 알고 있었는데 들리는 건 대선 승리자들의 분열과 패배자들을 위한 '원칙과 상식 없는 화해와 사랑'의 연설문뿐이니 …

노무현이 만난 링컨

노무현 지음, 학고재(2001)


링컨의 진실 - 패권주의 - 위대한 해방자의 정치적 초상

토머스 J. 딜로렌조 지음, 남경태 옮김, 사회평론(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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