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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부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회원들과 일제강제노역피해자 할머니들과의 만남에서 한 할머니가 '그동안 노력해 주신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하나후사 사무국장에게 말하고 있다.(할머니의 요청으로 얼굴을 가림)
'관·부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회원들과 일제강제노역피해자 할머니들과의 만남에서 한 할머니가 '그동안 노력해 주신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하나후사 사무국장에게 말하고 있다.(할머니의 요청으로 얼굴을 가림) ⓒ 장재완
지난 14일 오후 4시 충남 아산시 온양프라자 호텔에서는 특별한 만남이 있었다. 15인의 일본인과 7명의 한국 할머니들의 만남. 이 일본인들은 전쟁 가해자의 나라인 자신들의 조국을 상대로 전쟁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지난 10년간 싸워 온 사람들이다. 이들의 만남의 순간에는 눈물이 앞섰다.

지난 10년 간 이들은 기나긴 싸움을 해 왔다. 10대 소녀의 몸으로 전쟁에 끌려가 종군위안부로 또는 군수물자를 만드는 공장에서 노예나 동물취급을 받으며 견뎌 온 지난 세월, 그 억울함을 풀기 위해 기나긴 법정싸움에 나섰으나 일본 재판부는 끝내 그 억울함을 들어 주지 않았다.

일제의 강제동원에 의한 피해자인 할머니들을 만나러 현해탄을 건너온 이들은 '관·부재판을 지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시모노세키의 ‘관’자와 부산의 ‘부’자를 따서 만든 이름)' 회원들이다. 이들은 지난 10년 동안 일본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일제시대 강제로 끌려와 노역을 하고도 임금을 받지 못한 할머니들의 피해보상을 위한 재판을 지원하는 일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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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금을 통하여 변호사를 선임하고, 할머니들을 초빙하여 법정에서 증언토록 도왔으며, 할머니들과 함께 일본의 잘못을 홍보하는 일을 해왔다. 그렇게 긴 시간이 흘러 2003년 3월25일 일본대법원은 최종적으로 기각판결을 내렸다. 그 뒤 이와 유사한 재판이었던 6개의 재판도 모두 기각되었다.

이렇게 재판이 끝나자 낙담했을 할머니들을 위로하고자 ‘관부재판모임’ 회원들이 한국으로 날아온 것이다. 이들은 서로를 확인하면서 눈물을 쏟아냈다.

3월 25일에 있었던 대법원의 '기각'판결에 대해 설명하고 앞으로의 활동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3월 25일에 있었던 대법원의 '기각'판결에 대해 설명하고 앞으로의 활동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장재완
마스오카 스미코(관부재판 모임 회장)씨는 “우리의 힘이 모자라서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아 대단히 죄송하다”며 “여러분들을 통해 그동안 많은 것을 배웠다.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름을 밝히기 꺼리신 한 할머니는 “우리들보다 더 많은 고생을 했고, 정말 열심히 뛰어다녔는데 결과가 좋게 나오지 않아서 우리가 더 미안하다”며 “가진 것도 없어서 어떻게 그 은혜에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고 15명의 회원들을 일일이 안아줘서 지켜보는 모든 이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하나후사 도시오 사무국장의 재판 경과보고와 앞으로의 활동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일행들은 저녁식사를 함께 하고, 노래를 부르며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특히 이 자리에서는 3~40대의 회원들이 할머니들을 기쁘게 해 드리고자 우스꽝스러운 춤과 함께 재롱을 피우기도 하고, ‘아침이슬’ 등 한국 노래를 불러서 상심해 있는 할머니들의 마음을 기쁘게 했다.

온천욕을 즐기며 하룻밤을 지낸 이들은 15일 경기도 광주의 나눔의 집(일제에 의해 성적 희생을 강요당했던 생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을 방문하여 할머니들을 만나고 이 날 비행기로 출국한다.

다음은 마스오카 스미코 회장과의 인터뷰내용이다.

-오늘 모임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을 해달라.
"이 모임은 지난 3월 25일 일본 대법원에서 나온 판결결과를 전달하는 자리이다. 할머니들을 일본으로 모셔와 더 많은 회원들과 만나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할머니들이 형편이 안되셔서 우리가 오게 되었다."

관부재판 모임의 회장인 마스오카 스미코 씨.
관부재판 모임의 회장인 마스오카 스미코 씨. ⓒ 장재완
-재판결과는 어떻게 나왔는가?
"기각되었다. 다시 말해 심리를 할 필요도 없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법정 안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문 앞에서 쫓겨난 셈이다."

-시모노세키 지방법원에서는 승소하지 않았는가?
"1심은 98년 4월에 있었는데 그때도 완전승소는 아니었고,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은 제외하고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에게만 손해배상금을 각자에게 30만엔(약 우리 돈 300백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었다."

-이번에 판결결과를 일본정부에는 책임이 없다는 뜻으로 볼 수 있는가?
"그렇다. 재판부는 그렇게 판단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재판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보는가?
"재판이 거듭될수록 더 나쁜 결과가 나왔다. 1심에서는 일부승소라도 했는데, 히로시마 2심에서는 역전이 되었고, 최고 재판소에서는 심의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1심에서는 원고의 주장을 들어주기는 했는데 3심에서는 심의조차 하지 않았다.

이는 피해자가 분명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법논리만을 내세우는 비인도적인 처사이다. 또 명목적으로는 3권 분립이라고 하고 있지만 사법부도 정권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정치적 논리에 따라간 결과라고 본다."

-이 판결결과가 앞으로 남아있는 다른 유사한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가?
"이미 판결이 거의 다 내려졌다. 수년을 끌어오던 재판들이 이 재판결과가 나오자 똑같이 기각결정을 했다. 이 재판 이후로 5~6개의 재판이 같은 결과가 나왔다."

-재판이 끝났는데 앞으로는 어떤 활동을 할 계획인가?
"이번 재판은 정부를 상대로 한 재판이었다. 앞으로는 기업을 대상으로 피해보상소송을 할 것이다. 현재 나고야의 미쓰비시 비행기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에 있고, 또 중국인 피해자들이 원고가 된 재판도 여러 개 진행중이다. 이러한 소송을 계속해서 도울 것이고 또 ‘전쟁피해자 보상을 위한 법률’제정을 위한 활동도 펼칠 계획이다.

그리고 홍보활동도 계속할 것이다. 특히 우리는 이번 재판을 진행하면서 우리 스스로 많은 것을 배웠다. 할머니 한분 한분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역사를 다시 썼고, 사회를 다시 보게 되었다. 우리가 하는 일은 할머니들을 위한 일만이 아니다. 바로 우리 일본인들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한 일본회원이 할머니들을 위로하기 위해 춤을 추고 있다.
한 일본회원이 할머니들을 위로하기 위해 춤을 추고 있다. ⓒ 장재완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한국사람들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오늘 보았는가? 몇몇 할머니들은 이름을 내는 것도, 사진을 찍히는 것도 싫어하신다. 정신대 하면 한국인들은 모두다 군 위안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종군위안부와 근로정신대가 다르다는 것을 한국인들이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군 위안부도 전쟁의 희생자이며 이들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특히 한국의 젊은 세대들도 역사에 대해 바로 알려는 의식을 가져야 하며, 일본의 잘못된 행태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적해 주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방일외교를 두고 말이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노 대통령이 과거를 언급하지 않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만들어야 된다’고 말했다고 들었다. 과거 없이 현재 없고 또 미래도 없다. 과거청산없이 어찌 현재와 미래가 바로 서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나는 두 나라 정상끼리 과거문제에 대해서 이마를 맞대고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이 한국과 일본 두 나라와 두 나라 국민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일본은 현재 세계적인 흐름에 역행을 하고 있다.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역사를 바로잡지 않으면 미래지향적인 관계도 있을 수 없다."

-일본 국회가 유사법제관련 법안을 통과시켰는데 이는 어떻게 보는가?
"전쟁으로 달려가는 짓이다. 또 다시 할머니들과 같은 희생자를 만드는 일이며 평생을 두고 속죄하며 죄인으로 살아도 용서받지 못하는 국민을 또 다시 전쟁가해자로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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