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나. 40, 50년대 미국의 안마당이자, 휴양지였던 곳. 어떤 미국인의 기억에는 아바나 시내 전체가 매음굴이요, 아바나의 여인 전체가 돈만 주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매춘부로 여겨지던 바로 그곳.
몇 년 전 사망 30주기를 맞아 우리나라에서도 독서계를 떠들썩하게 하며, 오래 동안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던 체 게바라와 카스트로의 불굴의 노력과 쿠바인의 쌓일 대로 쌓인 울분이 함께해 기적같이 이루어진 비띠스따 독재정권의 축출.
그리고 그 후. 냉전의 그늘 속에서 우리와는 너무나 먼 곳으로 멀어져버렸던 그곳이 다시 우리에게 찾아왔다. 이성형이 쓴 쿠바와 멕시코, 칠레 등을 여행하며 느낀 것을 기행문 형식으로 쓴 책, <배를 타고 아바나를 떠날 때>를 통해서이다.
저자는 말한다. 쿠바혁명은 우리가 알아 왔던 것과는 달리 ‘사회주의혁명’이 아니라 ‘호세 마르띠의 혁명’이라고. 호세 마르띠는 쿠바의 유명한 문인이자 독립운동을 이끈 쿠바의 국부와도 같은 인물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중남미 국가들이 스페인과 포르투칼로부터 독립을 성취한 1920년대에 이루지 못한 독립을 쿠바혁명을 통해 실질적으로 이룬 것일 뿐이라고.
그러나, 쿠바혁명을 되돌리기 위해 미국의 CIA는 무려 150회에 달하는 반혁명 기도를 계속해왔다고 한다. 중남미에 대한 CIA의 보이지 않는 손의 명성은 이미 알고 있지만 가히 150번이라니! 가히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저자는 말한다. 쿠바가 사회주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미국이 쿠바를 사회주의로 밀어 붙였다고.
내용인 즉슨, 당시의 심각한 냉전구도에서 미국의 경제조치를 견뎌내기 위해 구소련의 경제 원조를 받을 수밖에 없었고, 구소련에 대한 보답의 차원에서 ‘사회주의 국가’의 외양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북한이나 소련과는 달리 쿠바에는 마르크스나 레닌, 혹은 카스트로 자신의 기념조형물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곳곳에 늘어선 동상들은 모두가 호세 마르띠를 비롯한 쿠바 독립운동기 민족지도자의 모습들 뿐이라고.
구소련이 붕괴한 뒤, 미국은 쿠바가 금세 붕괴할 것이라 여겼으며 마이에미에 있는 반정부적 쿠바인 단체 장은 자신이 곧 쿠바의 새 대통령으로 취임할 것으로 굳게 믿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날을 앞당기기 위해 쿠바에 대한 경제봉쇄를 한층 더 강화했다고 밝히고 있다. 미국기업이 쿠바와 경제교류를 할 수 없게 했을 뿐 아니라, 쿠바와 경제교류를 하는 모든 나라에게 미국 내의 경제활동을 제한하는 강경한 법률을 제정한 것이 모두 이를 반증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이 당시 쿠바는 엄청난 식량난을 겪었는데 그 정도가 한창때 북한의 기근과 비교해도 결코 덜하지 않을 정도였다고 저자는 지적했다. 카스트로는 공산당 내에 젊은 개혁세력을 대거 영입하고, 부분적인 시장경제를 도입해 이 위기를 돌파했다.
교황청과의 화해를 위해 종교의 자유를 보다 더 확대하는 등의 노력 끝에 교황이 쿠바를 방문하도록 해 미국의 쿠바봉쇄가 비인도적이란 발언을 하도록 만들었다. 유엔총회는 9년 연속 쿠바에 대한 미국의 경제봉쇄를 비난하는 성명을 채택했다고 한다.
미국의 이라크에 대한 제재가 이라크 국민들로 하여금 후세인의 독재보다 미국을 더 증오하게 만들었듯이, 미국의 쿠바에 대한 끊임없는 정치적, 경제적 압박은 쿠바국민을 단합하게 만들었고, 그 힘든 경제봉쇄의 터널을 벗어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오늘날 쿠바는 수년연속 상당한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다. 물론 소련이 붕괴하기 전보다는 못하지만.
그러나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주는 감동은 이러한 쿠바에 대한 정치경제적 모습 때문은 아니다. 쿠바의 전통악기와 기타를 가지고 연주하는 쿠바음악 볼레로의 낭만을 소개하기도 하고, 전통문화와 서구문화의 접목으로 만들어진 혼합문화인 쿠바문화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와 저력에 대해 이야기 한다.
고통 속에서도 삶과 꿈과 희망을 노래하고, 낭만을 잃지 않고 세상을 긍정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혼합문화인 쿠바가 고통 속에서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만들어왔다. 이제 전 세계가 그들 쿠바인의 음악에 젖어있듯이, 우리도 쿠바라는 프리즘을 통해 한번쯤 우리들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쿠바인들이 수세기에 걸쳐 오랜 세월동안 고통을 겪어오면서, 그들은 고통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을 가지게 되었다. 그들은 고통 속에서 꿈을 꾸고, 마침내 마술처럼 꿈이 현실 속에서 이뤄지는 것. 그것이 바로 쿠바혁명이다. 그들의 오랜 염원이 마침내 마술같이 그들에게 독립이란 형태로 찾아왔듯이. 그들이 경제봉쇄의 고통 속에서 오랫동안 꿈꾸어오던 평화도 언젠가 현실이란 모습으로 그들에게 나타날 것이다.
그렇다. 다소 진부한 표현이지만. 꿈은 이루어진다. 마치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오랜 고통의 시간이 마침내 끝나고 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