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앙코르를 외치는 관객에게 두 곡의 노래를 더 선물한 인디 밴드 '스웨터'의 공연이 끝나자 박수와 함께 관객도 조명도 사라진다. 그제야 공연의 또 다른 주인공들이 뒤늦게 무대로 올라온다. 오늘만 리허설을 포함해 벌써 세 번째 공연이다. 마지막을 심야 공연으로 장식한 탓에 시간은 이미 자정을 훌쩍 넘긴 뒤다. 객석을 가득 매운 관객의 환호도 오색찬란한 빛깔의 화려한 조명도 없지만 그들의 무대는 그 어떤 무대보다 눈부시다.
이정욱(33)씨는 정동 극장에서 일하는 여덟 명의 스태프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제 경력 일년 반의 음향 엔지니어인 그는 음향 시스템 업체에서 일하다 정동극장과 인연을 맺었다. 그간 수많은 공연과 함께 했지만 객석에서 본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오늘도 가장 멋진 소리를 위해 전구 하나에 의지한 채 무대 뒤쪽에 자리했다.
‘스웨터’의 드럼연주자가 두 번째 노래를 마치고 무대 뒤쪽을 바라본다. 자신의 이어폰에서 들려야 할 다른 연주자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가 황급히 무대로 달려간다. 다행히 알고 보니 연주 소리에 묻혀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으로 착각한 것이었다.
지난 일년 반 동안 그는 실수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가장 커다란 실수는 자신이 처음으로 음향을 담당했던 첫 공연이었다.
"제가 정동극장에서 일하고 이틀 만이었어요. 정신없이 준비하고 공연에 들어갔는데 여섯 가지 악기의 소리를 다 꺼놓고 있다가 순서대로 켜야 하거든요. 그런데 제가 동시에 소리를 다 켜 버린 거예요. 정말 큰 실수였지요. 감독님한테도 혼나고 다른 분들한테도 혼다고. 당연히 혼났어야 할 일이죠. 제가 자만해서 일으킨 실수였으니까요. 시스템 쪽에서 오래 일을 해서 자신이 있었거든요.”
그는 국악과 재즈에 관한 음향 엔지니어를 꿈꾼다. 사실 그가 처음부터 국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니었다. 그간 수많은 공연을 보며 국악의 매력을 알게 된 것이다. 그는 국악의 매력을 ‘이어지는 맛’이란다. 국악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이어짐이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전통예술공연’은 국내보다 국외에 더 많이 알려져 있으며 외국인이 전체 객석의 절반을 넘게 차지할 정도로 외국인에게 많은 인기를 모으고 있다. 특히 그들은 국악의 짜임새에 놀라움을 표현한다고 한다.
정동극장에서는 월요일을 제외한 모든 날에 공연하는 ‘전통예술무대’를 비롯해 일년에 7800회 가량의 공연이 있다. 리허설까지 다 한다면 횟수는 더욱 늘어난다. 이 모든 공연을 8명의 스태프가 도맡는다는 게 그는 아쉽다.
“공연이 한두 개가 아니다 보니 한정된 인원으로 하는 것이 조금 힘들어요. 시간에 쫓겨서 일하게 되고, 하루에 많으면 4개의 공연이 있을 때도 있어요. 그럼 뒤로 갈수록 힘이 드니까 뒤에 하는 공연은 소리가 맘에 안 들어요.
준비기간도 상당히 짧을 수밖에 없죠. 길면 일주일, 보통은 3~4일이에요. 제가 생각하기엔 한 달이나 적어도 보름 정도의 시간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아동극 같은 경우에 엄마가 아주 작은 아이들을 데리고 오면 그 아이들은 입장료를 끊지 않고 들어와요. 버스 타는 것하고 똑같이 생각하시는 거죠. 하지만 좌석을 하나 차지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한 사람이 공연을 보고 즐긴다는 것. 그것이 문화산업의 가격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인식이 많이 부족하죠. 아직도 음식 같은 것도 먹고 마구 버리세요.
즐길 줄 모르는 거죠. 공연에 많이 가보질 않았으니까요. 극장에서 팝콘 먹으면서 영화 보는 경험밖에 없잖아요. 지금처럼 콘서트에 왔으면 뛰어야 하죠. 그걸 즐기는 거죠. 판소리를 하면 ‘얼쑤’ 하고 추임새도 넣어주고 . 같이 즐기면서 가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는 게 많이 아쉬워요.”
그는 자신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은 "한 공간에서 어우러짐'이라고 말한다.
“여러 가지 악기 중에서 특별히 튀어야 것도 그렇지 않은 것도 있지만 모든 악기의 조화, 그게 가장 중요해요. 그런데 가끔씩 그런 생각을 해요. 정말 바보 같은 생각인데요.
악기의 소리가 원래 어떤 것은 크고 어떤 것은 작잖아요. 그럼 그걸 그대로 내버려 둬야 하는 게 아닌가. 큰소리는 크게 작은 소리는 정말 안 들릴 정도로 작게. 그게 정말 자연스러운 소리인데 제가 인위적으로 소리를 만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스태프는 공연을 조화롭게 조율하는 사람이에요. 첫 번째로 관객을 만족시키고, 두 번째로 출연자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만족해야 하죠. 그런데 결국은 제가 만족해야 관객도 만족하는 것 같아요. 관객에게 보여주는 마지막 선상에 스태프가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