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클랜드의 주택가에서 아파트를 찾기는 힘들다
오클랜드의 주택가에서 아파트를 찾기는 힘들다 ⓒ 정철용
그래서 우리도 다른 이민자들처럼 아파트는 생각지도 않고, 오클랜드 동쪽지역 주택가에서 단독주택들을 보러 다니다 마침내 집을 구입하였다. 앞뒤로 조그만 정원이 딸린 그리 넓지 않은 방 4개 짜리 집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살 때도 생애의 절반 이상을 단독주택에서 살아왔건만, 이곳에서 다시 살게 된 단독주택이라는 공간이 나는 한동안 낯설었다.

한국에서 살았던 지난 세월동안 아파트라는 공간에 내가 너무나 익숙해져 있어서인가? 아니면 뉴질랜드 공간의 구성이 한국의 집들과는 다르기 때문인가? 아니면 다른 나라에서 살아가는 이민자들이 초기에 공통적으로 겪는 낯설음인가? 아마도 그 모두에 다 해당될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공간을 구분 짓고 활용하는 방식의 다름에서 오는 문화적 차이가 이러한 낯설음을 만든 주요 원인이라는 것을 나는 곧 깨달았다.

서른을 넘긴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하고 있듯이 불과 한 세대 전 만해도 한국의 주거문화에 있어서 중심이 되는 공간은 안방이었다. 오랜 세월동안 안방이 누려 오던 독점적 지위는 1970년대 이후 공동주택단지인 아파트가 단독주택을 빠른 속도로 대체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지만, 초기 아파트에서는 여전히 안방이 중심 공간이었다.

그렇지만 1980년대 후반 이후 아파트가 점차 고급화, 대형화되면서 안방은 거실에게 밀리기 시작하였고, 이제는 거실이 중심 공간이 되어버렸다.

전통적으로 한국의 안방은 다목적공간이다. 안방은 부부의 침실인 동시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식당이고, 가족들이 대화를 나누고 TV를 보고 때론 손님을 맞이하는 거실이며, 또한 가끔씩은 음식을 마련하고 익히는(메주와 식혜를 생각해 보라!) 주방이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 시대의 뛰어난 문장가 중의 한 사람인 김훈은 “안방은 물, 불, 밥, 생명 같은 원형질의 공간이다”라고 말한다.

안방에서 가족들은 쌀밥처럼 뭉쳐있어서 가족 구성원 개개인의 개성은 잘 드러나지 않으며, 그렇게 드러내지 않는 것이 또한 미덕이다. 안방을 장식하는 중요한 가구는 장롱과 화장대이며, 여기에 침대가 추가된 것은 아파트 문화가 보급된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문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는 안방은 닫힌 공간이며, 사적 공간이다. 또한 안방은 ‘안주인의 방’, 즉 여성의 공간으로‘부부유별’이라는 전통적인 유교의 가치관이 스며있다. 그래서 안방에서는 여성적인 따스함과 정갈함이 느껴진다.

반면에 거실은 기능적으로 완전히 분화되고 특화 된 공간이며, 안방보다 훨씬 더 사회화된 공간이다. 그래서 거실에서 이제 가족들은 더 이상 뭉쳐있지 않고 씨리얼처럼 각자의 개성이 낱낱이 구별된다.

거실을 지배하는 이념은 개방과 소통이며, 대화와 토론은 그 구체적인 방법론이다. 그래서 거실에는 소파와 다탁(커피 테이블)이 가장 중요한 가구이며, TV와 오디오 세트 같은 미디어 관련 전자제품들이 자리를 잡는다.

거실을 지배하는 이념은 개방과 소통이다
거실을 지배하는 이념은 개방과 소통이다 ⓒ 정철용
거실은 문이 없는 개방형의 공간이며, 손님을 맞는 공적인 공간이다. 한국의 전통적인 주거 공간으로 보자면, 바깥주인의 서재 겸 응접실인 사랑방과, 안방과 마당을 이어주는 마루가 거실에 해당할 것이다. 그래서 거실에서는 남성적인 논리정연함과 서늘함이 먼저 느껴진다. 거실은 서양의 합리주의에 입각한 공간이다.

따라서 한국의 주거문화가 안방에서 거실로 중심 공간을 이동시켰다는 것은 통합에서 분화로, 사적 담화에서 공적 토론으로, 몰개성(沒個性)에서 개성으로, 인정(人情)에서 합리(合理)로, 폐쇄에서 개방으로 우리의 가치관이 이동해 왔음을 보여준다.

지난 해 광화문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벌어진 길거리 월드컵 응원과 여중생 추모 촛불 모임은 거실을 넘어서 광장으로까지 이어지는 이러한 변화의 추세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그러나 오랫동안 삶이 몸담아 온 공간은 그 삶을 지배하는 법이어서 공간이 변한다고 그 삶이 한순간에 쉽게 변하지는 못한다. 거실이 중심인 아파트에서보다 안방이 중심인 단독주택에서 살았던 햇수가 훨씬 더 길었던 나도 마찬가지여서, 내 머리는 거실을 지향하지만 몸은 아직도 안방에 있음이 틀림없다.

내가 아파트에 사는 동안에 소파를 사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으며, 한국의 아파트처럼 거실이 중심 공간인 이곳 뉴질랜드의 집이 내게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을 터이다.

더 나아가, 혈연과 지연만으로는 모자라서 학연까지도 따지고, 공과 사의 구분이 명확하지 못하며, 앞에서 당당하게 얘기하기보다는 뒤에서 딴소리하기 좋아하는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도 어쩌면 이러한 안방문화의 소산인지 모르겠다.

물론 안방은 우리의 소중한 공간이지만 지금은 거실이 점점 넓어지고 주목받고 있는 시대다. 그러니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거실에서 자라난 세대는 이미 광장으로 달려가고 있는데, 우리만 몸을 안방에 두고 있을 수는 없지 않는가! 뉴질랜드가 되었든, 한국이 되었든 간에 안방이 거실을 만났으니, 이제 안방에서 거실로 몸을 움직일 때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