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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 북구청 통신실에서 전화교환원으로 일하고 있는 도미선씨
광주시 북구청 통신실에서 전화교환원으로 일하고 있는 도미선씨 ⓒ 오마이뉴스 이국언
지난 89년 11월 22일. 중학교 3학년이었던 그녀가 평소처럼 등교 길에 나서던 참이었다. 그 날도 광주시 북구 중흥동 구 민정당 전남지부(현 한나라당 전남지부) 사무실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그녀의 머리위로 뜨거운 것이 쏟아져 내리며 그녀는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이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그 날은 백담사에 가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서울로 돌아온다는 소식에 반발한 대학생들이 항의의 뜻으로 기습시위가 있던 날이었다. 전투경찰과 대학생들이 대치한 가운데 우연히 잘못 날아 든 화염병이 그녀가 서있던 뒤편 담을 때리면서 그녀를 덮친 것이다. 15살 꿈 많던 소녀시절이었다.

전신중화상을 입은 그녀의 상태는 3일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심각했다. 특히 얼굴과 양손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심하게 원형을 잃었다.

그렇게 가쁜 숨을 몰아쉬던 그녀는 기적처럼 고통을 이겨내고 있었다. 3년 남짓 병원 생활. 그녀는 온통 고통스러운 기억밖에는 없다고 한다. 전신마취만 19번. 수술이 몇 차례 더 이어진지 모른다.

당시 학생들과 주위의 성금이 일부 있었지만 병원비를 감당하기에는 턱없는 것이었다. 국가를 상대로 보상을 요구해 보려고도 했다. 그러나 어려울 것이라며 어느 변호사 하나 맡으려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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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시련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지난 92년 수술을 앞두고 있던 딸을 보기 위해 병원에 오는 도중 아버지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지고 만 것이다.

"그 사람들이 잘못한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찾으면 보상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 사람 인생도 망가지는 것 아니냐. 네가 용서해라."

그녀의 아버지는 오히려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사고로 집안은 풍비박산이 됐다. 아버지의 사업체에 이어 하나뿐인 집마저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갔기 때문이다. 이 사고 후 그녀는 다시 병원에 가보지 못했다.

"지난 세월 원망한들 무엇하겠습니까. 눈을 뜨나 눈을 감으나 가슴에 바위가 얹힌 듯 답답한 세월이었습니다"

어머니 진복순(52)씨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친구들보다 3년여 늦게 다시 시작한 학업. 목포대 재학중 광주에서 통학하면서도 한차례 폭설로 차가 막혀 도중에 돌아온 것을 제외하고는 결석 한번 몰랐고, 장학금으로 매번 어머님의 어깨를 덜어드렸던 그녀였다.

하지만 졸업 후에도 일자리는 늘 그녀에게 비켜서 있었다. 선생님이 되려된 꿈도 접어야 했던 그녀는, 자신의 상처가 얼마나 크다는 것을 다시 새삼스럽게 느끼게 됐다고 한다.

그녀는 지난해 1월 북구청(김재균 청장)의 배려로 일용직 전화교환원으로 첫 출근을 시작해 지금까지 일해오고 있다. 또 욕심이 남다른 그녀는 워드자격증에서 운전면허까지 자격증이란 자격증은 다 갖추고, 올해는 동강대학 사회복지행정과에 입학에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기도 하다.

"미선이의 삶, 불우한 이 사회가 만든 것"

세월도 그만큼 지났을까. 인연이란 게 참 묘했다. 그녀는 당시 대학 학생회 간부로 있었던 사람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또 몇 언니와는 속내를 털어놓을 만큼 친하게 오가고 있었다.

"어쩌면 상심해 좌절할 수도 있었을텐데 끊임없이 도전하는 모습이 더 아름답습니다."

어려웠던 자신의 삶에서도 도미선씨는 항상 밝은 표정을 잃지 않고 있다.
어려웠던 자신의 삶에서도 도미선씨는 항상 밝은 표정을 잃지 않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국언
북구청 동료들은 홀로서기를 멈추지 않는 그녀에게 아낌없는 격려를 보낸다. 도씨를 지켜봐온 신은정씨는 "당시 민주화를 위해 싸운 사람들은 뒤늦게 민주화보상법으로 명예회복이라도 하고 있지 않느냐"며 "미선이의 삶은 엄연히 이 불우한 사회가 만든 것이니 만큼 사회를 위해 일할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주변에서 무슨 보상이라도 받고 사는 것처럼 말할 때 가장 가슴아팠다"면서도 "그 사람들이 그러고 싶어서 그랬겠느냐"며 말도 꺼내지 말도록 했던 가족들. 한없이 용서하며 끊임없이 세상과 화해해 온 그녀에게 정작 우리는 무엇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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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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