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잔치집 줄에서 떨어진 광대가 울고 넘어 갔던 고개라 광대울이라 한다.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지둔리 삼각골에서 운수리로 넘어가는 서낭고개를 넘어서면 광대울이 나온다. 한때는 10호에 이르렀던 집들은 비어 있고, 고개로 앞뒤가 막힌 이곳은 비포장이라 그 흔한 차들도 드물고, 인적도 뜸하다. 이런 탓에 반디불이며, 고라니, 멧돼지, 너구리, 족제비들이 흔하고, 숨겨진 산 위의 작은 못에는 수달도 있다는 말이 전한다.
지난 해, 환경부로부터 생태우수마을로 지정된 걸 계기로 이곳의 논들이 유기농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지난 6월중에는 남양주 YMCA가 주선하여, 의정부 생협회원들이 찾아와 오리 입식 행사를 하였다.
대체로 아파트 주민들로 이루어진 회원들은 자녀들의 손을 잡고 반디불이 구경도 하고, 마을 주민들과 모닥불을 피우고 느타리버섯을 안주 삼아 막걸리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튿날에는 마을 유래와 숲 해설을 들으며 광대울을 넘어, 논에 오리들을 넣고 주민들과 함께 했다. 아이들은 오리들을 한 마리씩 전해 받고, 품에 안은 채 선뜻 논에 넣질 못했다. 집에 가져가서 기르자며 떼를 쓰는 아이도 있었다.
논에 들어간 어린 오리들은 갓 자란 벼들 사이를 헤치고 다니며 이제 막 돋기 시작한 잡초들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고개마루에 천마산, 철마산으로 둘러싸인 광대울은 인근에 다른 농지가 없어서, 무농약 유기농을 하기에 적지이다. 이 궁리, 저 궁리해 보아도 도무지 타산이 안 맞는 농삿일에 남양주 YMCA가 제안한 유기농을 처음으로 시작해 보는 행사였다.
이어서 텃논에 손모를 함께 심어 보았다. 서투른 도시 사람들의 솜씨에 마을 사람들은 웃음을 지었지만, 그래도 이앙기 끌며 혼자서 썰렁하니 심던 모내기 풍경에 비하면 우선 사람들로 가득찬 논의 왁자지껄한 풍경이 풍성해서 좋았다.
농사의 즐거움은 아무래도 새참에 있지 않을까. 소쿠리 가득 찐감자를 내오자 평소에 편식으로 부모 걱정을 시키던 도시 아이들도 달려들어 맛있게 먹었다.
지난 해, 한 농가가 오리쌀을 해 보았지만, 거기서 산출된 쌀의 판로가 문제였다. 예전처럼 가마니째로 들여놓고 먹는 집은 드물면서, 20kg짜리 쌀들의 주문은 택배비를 빼면 정작 남는 게 없어 별 재미를 못 본 터라 마을의 농부들은 선뜻 유기농 작목에 나서질 않았다.
대체로 정부가 주선한 일들이 용두사미가 되는 걸 많이 겪어본 농삿꾼들은 좀체 새로운 시도를 탐탁치않게 여기게 되었다. 정부가 하라는 것과 반대로 하면 돈 번다는 자조적인 농담까지 나돈다.
환경부로부터 광대울이 생태우수마을로 지정 받은 일도 탐탁치않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로 인해 그곳이 어떤 규제나 받지 않을까 걱정하여 장관이 준 생태우수마을 표지판도 받지 않으려 했었다.
더욱이 2007년에 진접에서 대성리간 자동차 전용도로가 이곳을 거치게 된다는 사실에 마을 사람들은 생각이 여럿이다. 도로만 뚫리면 공장을 지어 임대를 주겠다는 이도 적지 않고, 유기농을 기반으로 하여 도시사람들과 직거래망을 트고, 이곳에서 생산되는 산나물이나 부추, 취, 고로쇠 수액들을 상품화하여 환경친화적인 그린투어를 하자는 생각들이 서로 뒤섞여 있다. 날품값도 나오지 않는 농사만을 강요할 수 없는 처지이지만 가능하면 이곳의 생태환경이 잘 지켜지며, 주민들도 소득을 내는 방안이 마련되기만을 빌 뿐이다.
전용도로가 뚫리면 서울에서 25분이면 닿게 되는 거리에 모내기하는 논에 원앙이 헤엄치고, 산길로 멧돼지가 어슬렁거리며 내려오는 곳이 남아 있다는 것은 차라리 기적에 가깝다. 수동의 다른 마을들이 요즈음 몰려드는 공장들로 산을 깎고, 나무를 베는 상황에서 지둔리가 그나마 얌전히 남아 있는 것은 도로가 좁고, 교통이 불편한 외진 곳이라는 점 때문이다.
오남리에서 터널을 뚫고 넘어 오는 도로가 수백 년 원씨 집성촌을 이루며 대를 이어 지켜온 이 마을에는 수백년래의 획기적인 변화의 분기점에 서게 되었다. 언제까지나 환경을 내세워 마을 사람들에게 낙후된 그대로 살라 할 수는 없지만, 환경을 지키며 마을 사람들의 소득을 돕는 방안이 아쉽기만 하다.
공장이 세워져 몫돈을 받을지는 몰라도, 오래지 않아 마을 사람들은 그 돈을 들고 어디론가 하나둘, 떠나게 될 것이다. 지금처럼 아름다운 환경을 지키면서 그들의 자녀들까지 이곳에 머물며 온전히 살아가는 지속가능한 방안은 없을까.
마을 사람들은 그런 방안에 대하여 낯설다. 그저 건너 마을에 누군가 공장에 땅을 팔아 큰돈을 쥐었다느니, 산을 깎고 흙을 받아 논을 메꾸고 조립식으로 대강 지은 공장을 세를 주니 매달 꼬박꼬박 백만원씩 들어온다는 소리가 현실적이다.
그런 마을 사람들에게 환경이니, 생태니 하는 말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만 들린다. 환경 하면 우선 고개부터 젓는 사람들이 많다. 그린벨트며, 상수원보호구역이며, 이런 규제로 일관된 정부의 환경 정책에 상대적인 손실감을 느끼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반디불이가 돈이 될 줄은 꿈에도 못 꾸었으며, 그런 것은 배부른 도시 사람들이나 찾아다니는 걸로 알고 있다. 반디불이가 돈이 되는 게 아니고, 그게 살만큼 청정한 지역이라는 점을 이용해, 이곳에서 생산되는 유기농산물 판매에 도움이 된다는 말에도 별로 내켜 하지 않는다. 말로는 무농약 농산물을 좋아한다면서도, 막상 벌레 먹은 채소를 보면 질겁을 해서 내려 놓는 도시민들을 그들은 별로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침 수동면의 유기농 작목반에서 활동하는 농가 몇이 오리쌀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일부는 왕겨농법도 쓰고, 이어서 느타리나 취도 유기농으로 전환될 것이다. 나머지 마을 사람들은 이 새로운 농삿일을 미심쩍은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저게 과연 돈이 될까.
도시 사람들이 허벅지까지 온통 흙을 묻히고, 논에 들어가 손모를 심는 걸 보며, 참 별나게 고생을 사서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여기리라.
몇 해 전부터 농사만으로는 생업이 되지 않아 인근 공장에 다니는 처지에 이제 이 새로운 농법이 그들을 다시 논밭으로 불러들일지 자못 의미심장한 일이다. 이제 이 작은 마을이 공장으로 가득차게 될지, 아니면 버려둔 논밭에서 땀을 흘리는 농부들의 풍경으로 바뀔지 그것은 우리네 농촌의 앞날을 가늠해 보는 일이기도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