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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1
길1 ⓒ 박영호
얼마 전 내게도 처가가 생겼다. 서른 다섯 해를 보내고 나서야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생겼다. 게다가 할아버님과 5명의 처남과 1명의 처형까지 한꺼번에 많은 식구를 얻었다. 지난 주엔 처가에 다녀왔다. 세번째 처가 방문이다. 첫번째는 결혼 전에 인사드리려고, 두번째는 신혼여행 다녀와서 들렀다.

강원도 홍천군 서면 두미리. 주소만 가지고 어딘지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팔봉산 부근이라고 하거나 홍천 대명스키장에서 고개 하나 너머에 있는 마을이라고 하면 좀더 많은 사람이 알 수 있으려나? 아무튼 자그마한 강원도 시골 마을이다.

처남이나 처형들은 모두 도시로 나가고 시골집은 처의 할아버님과 부모님 세분이 지키고 계신다. 처가에서 보내는 시간은 약간 무료하다. 붙임성이 그리 좋지 않은 나로선 처가뿐만 아니라 다른 친척집에서도 꿔다놓은 보릿자루 마냥 우두커니 앉아 있기 일쑤다.

설상가상으로 할아버님이나 장인어른 또한 과묵하셔서 몇 마디 이야기가 오고 가다가 이내 어색한 침묵이 흐르곤 했다. 식사를 마치신 어르신들은 들에 나가시고 아내는 장모님과 부엌일 하는 사이 마당에 나서 외양간으로 향했다. 아! 이제껏 보지 못하고 지나쳤는데 처가는 작은 박물관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초가 대신 슬레이트를 이었다고 하나 아주 어릴 적 보았던 흙벽을 발라서 세운 외양간에 여물통은 십여 년은 되어 보였다. 예나 지금이나 기름진 흙빛을 닮은 누렁소는 덩치에 걸맞은 커다란 눈을 굴리며 여물을 씹고 있다. 건너편에는 여물을 끓이는 무쇠솥이 걸린 아궁이가 있고 외양간 벽에는 부지런한 장인어른이 패어놓은 장작이 가지런히 쌓여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누렁소
누렁소 ⓒ 박영호
잉걸이 되기를 기다리는 장작더미
잉걸이 되기를 기다리는 장작더미 ⓒ 박영호
나무로 만들어진 쟁기
나무로 만들어진 쟁기 ⓒ 박영호
지난 가을 베어온 짚단을 누르고 있는 것은 나무로 만든 쟁기였다. 지금도 가끔은 누렁소가 쟁기를 끌기도 하는지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경운기가 끌고 가는 쟁기도 옛스러워 보이는 내게 한동안 잊었던 지게는 이제 완전히 골동품처럼 보였다.

지게
지게 ⓒ 박영호
물길어 올리던 펌프
물길어 올리던 펌프
마당에 선 펌프는 이제 더는 물을 끌어올리지 못하고 녹슨 채로 서 있었다. 어릴 적, 어머니가 빨래하실 때 어린 형제들이 번갈아 가며 펌프질을 하던 기억이 났다. 어릴 적 우리 집 펌프도 등목을 하면 닭살이 돋을 정도로 시원한 물을 길어올렸다. 마지막으로 펌프질을 하던 아이들은 이제 몇 살이 되어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오후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창으로 스쳐지나는 농가들이 모두다 서서히 박물관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 흔히 말하는 고향다운 고향이 없었던 나는 좋은 느낌을 가지고 돌아가지만, 정작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점점 우리와는 다른 시간 속으로 밀려나고 있는 듯하여 안타까웠다.

경쟁력이란 단어가 힘을 쓰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농촌은 시간이 멈추어버린 박물관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길2
길2 ⓒ 박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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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사람에겐 편안함을, 친구에게는 믿음을, 젊은이에겐 그리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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