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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헷세는 "진정한 여행자의 마음이란 저 위험한 욕망, 두려움 없이 사물을 생각하고, 세계를 자기의 머리맡에 놓고, 모든 사물, 인간, 사상에 대하여 해답을 얻으려고 하는 저 욕망과 같은 것이며 결코 그보다 용이한 것은 아니다"라고 썼다. 여행이라는 게 그저 관광이나 즐기고 사진이나 찍고 돌아오는 차원과 얼마나 격이 다를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명언이 아닌가 싶다.

수필가로 많이 알려진 임의진(강진 남녘교회) 목사는 한 해에 거의 두 달 가까이는 훌쩍 여행 떠나곤 한다. 그 스스로 인정하듯 방랑벽이 다분한 목사다. 어디를 그리 쏟아 다니지는 알기 힘들다. 아직 남들처럼 여행기를 쓰지도 않았고 어딜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썩 잘 하는 편도 아니니까. 다만, 이번에 모아서 선보인 <여행자의 노래>라는 음반이 그간의 그의 여행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미루어 짐작케 하고 있다.

그는 주로 혼자서 고독한 여행을 떠난다. 천성적으로 타고난 보헤미안 기질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멀쩡한 아내도 아들도 두고 혼자서. 한 사람의 수행자처럼, 그런 외로운 여행을 즐긴다. 하지만, 음유시인 같은 그러한 고독한 방랑에도 '노래'만큼은 그의 결코 빠뜨릴 수 없는 동반자다. 주로 혼자 지내는 강진의 골방에 가보아도 음반만큼은 사치 아닌 사치를 하고 있다.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가득한 음반들이 그의 작은 방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내게 그 까닭을 이렇게 말했다. 이런 노래들이 아니었으면 적막강산 시골에서 자신처럼 젊은 사람이 십 수년을 견디지 못했을 거라고. 핑계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만큼 노래에 대한 그의 애정은 각별하다. 목사인 그는 "모름지기 종교의 가슴은 넓고 커서 지상의 모든 노래는 찬송가 아닌 것이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할머니들 서른 몇 분 다니시는 교회에서, 할머니들을 모시고 차량운행을 할 때도 거룩한 찬송가 대신 '송대관의 네 박자'를 스스럼없이 트는 그다.

이번에 선보인 그의 음반은 남다른 점이 많다. 국내에 아직 소개가 안된 희귀한 음악들이 다수 수록되었다는 점 외에도, 열 아홉곡의 노래 가사 대신 그 노래들에 잘 어울리는 열 아홉 편의 짧은 수필이 들어 있다. 그리고 사진 작가 김홍희의 분위기 있는 흑백사진들, 대관령 자락에서 살고 있는 언더그라운드 포크 가수 김두수의 노래, 제일 마지막 곡으로는 임의진이 직접 부른 '여행자의 노래'도 한 곡 들어 있다.

비록 노래를 여느 가수들처럼 썩 잘 부르지는 못하지만, 그 대신 진정으로 음악을 알고 사랑하는 사람, 그래서 음악을 음악답게 최고로 대접해 주는 사람. 그가 고단한 인생 길을 걸어가는 뭇 여행자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는 노래들만 고르고 또 골랐다니, 이 여름에 여행을 떠나려는 사람이라면 하나쯤 직접 사서 들어봐도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 <여행자의 노래>에 수록 곡들

01 . Ohio | Damien Jurado
02 . Lovesong | Donovan
03 . Waiting | Hungry Mind Review
04 . La Luna | Bert Jansch
05 . Das Lied vom Heuschreck | Bulat Okudshawa
06 . Birth! School! Dole! Angst! | Edson
07 . Caruso | Antonio Forcione & Sabina Sciubba
08 . Den Signede Dag | Sigvart Dagsland
09 . My Funny Valentine | Chapter 2
10 . Y Una Madre(And A Mother) | Savina Yannatou
11 . Night | Alexander Ivanov
12 . Anytime - Anywhere(원곡:알비노니의 아다지오) | Notis Mavroutis & Panagiotis Margaris(Noa Dori 노래)
13 . Morning Cigarrette | Notis Mavroutis & Panagiotis Margaris
14 . Danny Boy | 김두수
15 . Dumani Partiro | Benito Merlino
16 . Annie's Song | Sunshine Club
17 . Around and Around | Mark Kozelek & Rachel Goswell
18 . The Beginning of the End | The Softies
19 . Wayfaring Stranger | 임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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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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