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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흰 그늘의 길> 표지
김지하 회고록 <흰 그늘의 길> 표지 ⓒ 학고재
"내가 그리 오래 살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사는 동안 무엇을 어찌할 것인가에 대해 지난 연말과 올 연초만큼 선명하고 깊이 있게 생각해본 적은 따로 없었다. 사회적으로는 홀로 내 나름대로 이미 밝힌 바 있는 문화운동의 세 가지 과제에 천착할 것이고, 개인적으로는 매화 그림과 함께 매화음(梅花吟) 같은 창연(蒼然)하고 고독한 시를 쓰고 싶다. 우주 너머 흰 그늘의 길 말이다."

쓸쓸하다. 문득, 저만치 내가 걸어온 길이 희부연 안개 속에 지워지고 있다. 그리고 내 앞에 놓여진 길조차도 이내 희부연 안개 속으로 가라앉고 있다. "내가 그리 오래 살 것 같지는 않다"란 말을 들으면 생의 쓸쓸함 너머, 흔적도 없이 나뭇가지 사이를 빠져 나가는 바람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그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치열하게 살아낸 시인.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솟아날 것 같지 않은 군사독재정권이란 터널 속에서 몇 번이나 발을 헛디디면서도 허우적 허우적 빠져나온 시인. 그리하여 동학이란 냇가에서 증산도란 돌다리를 건너, 마침내 율려의 세계에 닿아 '우주 너머 흰 그늘의 길'을 바라보는 시인.

시인 서정주가 "애비는 종이었다"고 말했을 때, "아버지는 공산주의자였다"라는 말조차 꺼낼 수가 없었던 시인. 그러나 이제 회갑의 강 저 편에 닿아 "아버지는 공산주의자였다"라고 자신 있게 밝히는 시인. "나의 생애가 '모로 누운 돌부처'임은 틀림이 없다"라며 스스로에게 화두를 던지는 시인.

"그러나 실패한 부처, 벌판에 버려져 잊힌 돌부처라고 해서 그 조성할 때의 깊고 큰 원(願)이 '모심(侍, 모실 시)'이어서는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는가? 성공이냐 실패냐는 이제 거의 내 심중에도 안중에도 없다. 오직 내가 '모시느냐, 안 모시느냐'만 있을 뿐이다. '흰 그늘’이다. 이것이 나의 '실패학'이다."

스스로를 '실패한 부처', 즉 "모로 누운 돌부처"라고 말하는 시인 김지하. 시인 김지하의 그 말 속에는 어떠한 깊은 뜻이 숨겨져 있을까. 성공과 실패? 시인 김지하가 말하는 '실패한 부처'라는 그 말은 결국 밝음과 어둠, 한지와 먹의 관계, 즉 '흰 그늘'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모로 누운 돌부처는 '실패한 부처'도 '성공한 부처'도 아닌, 그냥 부처일 뿐이 아니겠는가.

'오적' '타는 목마름으로'의 시인 김지하(62)가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생애를 차분히 되돌아보는 회고록 <흰 그늘의 길>(학고재)을 3권으로 묶어냈다. 이번에 펴낸 <흰 그늘의 길>은 1991년 <동아일보>에 '모로 누운 돌부처' 라는 제목으로 일부 발표되었다가, 꼭 10년이 지난 뒤인 2001년 9월부터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란 제목으로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에 연재했던 글이다.

"형님 죽고 나면 형님 살았던 때 그 많은 일을 누가 다 기억할 수 있겠냐고, (김)민기가 '재수없는' 소리를 합디다. 요즘 젊은이들이 그때 사건들은 안다고 해도 내면의 생각은 모르지 않겠느냐고. 그래서 회고록이란 걸 쓰기로 작정했소.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지."

<흰 그늘의 길>에서 시인 김지하는 "그동안 감옥과 병원을 드나드느라 많은 얘기를 나누지 못했던 두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격동의 시절을 살아낸 사람들의 불안과 공포, 그 내면세계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또한 못내 아쉬운 듯 끄나풀을 길게 늘어뜨린다. "두 아들도 나중에 읽어보았으면 한다"고.

그리고 시인 김지하는 말한다. '오적'은 사흘만에 쓴 것이라고. "그 사흘 동안 어떤 영적 흥분이 나를 내내 사로잡고 있었으며, 사실 내가 잘 모르거나 확인해보지도 않은 부패 사인들, 도둑질 방법, 호화판 저택의 시설이 단박에 그대로 떠올라 펜을 통해 곧바로 옮겨지면서 조금도 의심하거나 걱정함이 없었다"라고. 그리고 그것이 바로 '신명'이라고.

시인 김지하는 "아버지 김맹모(金孟模)씨는 공산주의자였다"고 고백한 글에 대해서도 "나는 이 한마디를 끝끝내 함구하려고 했지만, 내 의식과 삶 속에서 또 하나의 연좌제처럼 살아있었다."며 "그동안 마르크스주의에 친연성을 가졌음에도 내내 비판적 거리를 두고자 했던 것도 아버지와 우리 가족의 그 그늘진 생애" 때문이었다고 잘라 말한다. 말 그대로 자신의 아버지는 실패한 공산주의자였다는 것이다.

그중 특히 눈에 띄는 것은 1972년 중앙정보부에 근무하던 이종찬씨와 수유리에 있는 육당 최남선의 별장 앞 잔디밭에서 쿠데타를 모의했다는 사실이다. 그 쿠데타는 "당시 학생운동이나 민중운동의 이념 그 자체를 그대로 관철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하나의 구상, 새로운 군부의 효과적인 쿠데타에 의해 관철되어야 한다는 것에 합의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쿠데타 준비는 장일순과 이종찬 두 사람에 의해 지도되고, 대통령은 김대중(金大中)씨를 세우되 책임을 지는 각료와 집권세력의 3분의 2는 반드시 우리 세력이 점거해야 한다는 계획"까지 세세하게 세웠다는 것이다.

이처럼 <흰 그늘의 길>에는 육십 평생을 살얼음판을 걷듯이 고단하게 살아온 한 시인의 모든 생애가 송두리째 담겨져 있다. 아니, 이제는 그 살얼음판을 뚫고 파란 싹을 뾰쪽이 내미는 미나리처럼, 시인 김지하의 '흰 그늘'이 이 세상에 또 하나의 길을 서서히 내려놓고 있는 것만 같다.

흰 그늘의 길 1

김지하 지음, 학고재(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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