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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천마을
가천마을 ⓒ 이종원

아! 다랭이논.

'남해섬'하면 금산보리암이나 상주해수욕장이 떠오르겠지만 내게 가장 큰 감동을 선사한 곳이 바로 가천마을이다.

100층이 넘는 다랭이논을 보고 눈이 휘둥그래지더니 벼랑 위에 아스라이 걸쳐 있는 마을이 참 정겨웠기 때문이다. 앞은 바다요, 뒤는 경사가 높은 설흘산이다. 이런 환경에 인간이 터를 잡고 살아갈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바로 다랭이논인 것이다.

현대인들은 탐욕 때문에 바벨탑을 쌓았지만 이곳은 생존의 몸부림을 위해 다랭이논을 깍았다. 세운 것과 깍은 것은 이렇게 차이가 난다. 아름다움을 논하기보다는 그저 그들의 살아가는 방식에 감사를 드릴 뿐이다.

가천마을 앞에는 소치섬이 외롭게 서 있어 등대역할을 한다. 그걸 지나서는 땅덩어리 한 점 만날 수 없고 바로 바로 태평양에 맞닿는다. 쉴래야 쉴 수 없는 망망대해를 100층의 다랭이 논이 마지막 이별의 손수건을 흔들어준다.
가천마을 앞에는 소치섬이 외롭게 서 있어 등대역할을 한다. 그걸 지나서는 땅덩어리 한 점 만날 수 없고 바로 바로 태평양에 맞닿는다. 쉴래야 쉴 수 없는 망망대해를 100층의 다랭이 논이 마지막 이별의 손수건을 흔들어준다. ⓒ 이종원

다랭이논-한 평이라도 땅을 넓히려는 집념이 보인다.
다랭이논-한 평이라도 땅을 넓히려는 집념이 보인다. ⓒ 이종원

누가 농사를 지어야 하나

가천마을 청년회장은 50대 아저씨다. 힘들고 돈벌이가 되지 않아 젊은이들이 마을을 떠나기 때문이다. 봄이 되면 마늘을 팔고, 가을에는 쌀을 팔아서 어떻게 해서든지 자식들을 공부시켰다. 등골이 빠져도 자식들을 도회지로 유학을 보내야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다. 남해가 경남에서도 손가락에 드는 대학진학률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그걸 증명해준다.

도회지로 나간 자식들이 고향으로 돌아오지는 않았다. 아니 왔어도 벌어 먹을 것이 없다. 그렇다면 이 험한 논을 누가 일구었을까? 바로 백발의 노인들이다.

새우처럼 등 굽은 할머니가 100층이나 되는 계단논을 오르락거리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마을의 노인들과 눈을 맞추기 미안할 정도다. 내게 있어 이 땅은 고난의 땅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런 불평을 토로하지 않는다. 그들을 먹을 수 있게 해주고 자식들을 공부시킨 소중한 땅이기 때문이다.

촘촘히 쌓아 올린 석축 안에 파란 벼가 무르 익고 있다. 한 뼘이라도 더 땅을 넓히려는 집념이 엿보이지 않는가? 남해사람들의 근면성은 이 다랭이 논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고된 삶과 숙연한 아름다움이 곡식 알갱이에 머물러 있다.


삿갓배미

어느 날 농부가 논에 풀메러 갔다. 쓰고 있던 삿갓을 벗어 놓고 열심히 일을 하였는데 농사일을 마치고 보니 논 한 배미가 없어진 것이다. 여기저기 찾아봐도 찾을 수 없어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삿갓을 들었더니 그 아래 안 보이던 논을 발견한 것이다. 농부는 나머지 논마저 갈고 마을로 내려 갔다고 한다. 그래서 이 다랭이 논을 '삿갓배미'라 부르고 있다.

4계절 녹색이 물결이 하늘거리는 곳이 남해다. 겨울에도 마늘밭이 푸르름 자랑하고 있어 늘 생동감이 넘친다. 한 치의 땅도 놀리지 않는 그 억척스러움에 머리를 숙일 뿐이다.


집집마다 마늘을 매달고 있다.
집집마다 마늘을 매달고 있다. ⓒ 이종원

마을길

전형적인 시골마을이다. 돌담에 소담스럽게 피어오른 꽃들이 바다를 향하고 있다. 바람 때문인지 창문이 작고 돌담이 많다. 원색의 슬레트 지붕이 강렬하게 그 빛을 발하고 있다. 집집마다 창고에는 이렇게 주렁주렁 마늘이 매달려 있다. 미신 때문일까? 페트병에다 물을 담아 내걸고 있다.


해풍을 먹고 자란 남해산 마늘
해풍을 먹고 자란 남해산 마늘 ⓒ 이종원

남해산 마늘

해풍을 먹고 자란 남해산 마늘은 보약이다. 그 약효가 뛰어날 정도로 질이 좋다.

"아침마다 육종마늘을 쪼개 먹으면 보약이 필요없십니다."
"어찌나 효능이 좋은지 요 밑의 숫바위를 보면 아실깁니더."

넌스레 미소를 머금고 말씀하시는 촌로의 얼굴에는 정겨움이 묻어난다. 마늘풍년임에도 고민은 있다. 대량으로 밀려오는 저가 중국산 마늘 때문에 주름살이 더욱 깊게 패어만 가기 때문이다.


가천 암수바위
가천 암수바위 ⓒ 이종원

가천암수바위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생긴 암수바위다. 높이가 무려 5.8미터, 둘레가 1.5미터의 거대한 숫바위가 하늘을 치솟고 있다. 그 옆엔 아기를 밴 배부른 여인의 형상을 가진 암바위가 다소곳이 앉아 있다.

일명 미륵바위라고 불리는데 아기를 낳지 못하는 부부가 이곳에 치성을 드리면 즉각 효험이 나타난다고 한다. 이러한 남성상징물은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바뀌는 상황에서 나타난다. 농경사회에서 노동력이 곧 재산인 것이다. 자식이 없으면 굶어야 하는 절박함에서 남성상이 나온 것이다.

수바위의 끝은 하늘을 항하고 있다. 종족보존의 염원이 하늘에 빨리 닿기를 바라는 마음이겠지. 그 옆엔 터질 듯한 암바위가 서 있다. 음양의 조화를 통해 다산을 기원했을 것이다.

암수바위는 다산뿐 아니라 어선들이 고기잡이 나갈 때 예를 올리는 용왕신이기도 하다. 1920년 욕지도 어선이 가천 앞바다에 표류했을 때 미륵노인이 구름에 나타나 어부를 구해주었다고 한다. 그후 음력 10월 23일이면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리며 동제를 지내고 있다.


예쁜 꽃이 바다를 향해 손짓하고 있다.
예쁜 꽃이 바다를 향해 손짓하고 있다. ⓒ 이종원

마을을 관통한  작은 개울은  바다로 떨어진다.
마을을 관통한 작은 개울은 바다로 떨어진다. ⓒ 이종원

가천마을

마을 가운데로 이런 개울이 흘러 바다로 빠진다. 그러고 보니 이 마을의 이름이 '加川(가천)'이다. 남해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남해는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형상을 하고 있다. 가천마을은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회음부에 정확하게 위치하고 있다. 새 생명을 탄생시킬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애를 낳기 위해 필요한 양수가 터질 만한 곳이 아니다. 그저 이렇게 작은 개울만 흐를 뿐이다. 회음부가 말라서는 안 되기에 '川'을 보태겠다는 열망으로 더할 '加'를 붙여 마을이름이 '可川'이 된 것이다. 즉 풍수에서 말하는 '언어비보책'인 것이다.


암수바위에서 바다로 내려오면  갯바위가 보인다.
암수바위에서 바다로 내려오면 갯바위가 보인다. ⓒ 이종원

천혜의 낚시터

마을에서 바닷가로 내려오면 시원스런 갯바위가 나온다. 바위를 덥치는 파도가 만만치 않다. 사진작가들이 그 장면을 잡기 위해 바위에 몸을 맡기고 있다.

실은 이곳이 숨겨진 낚시포인트 장소이기도 하다. 40센티의 감성돔이 당기는 손맛을 못 잊어, 새벽부터 자리를 차지하려고 진을 치고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남해똥배 정신을 이어가는  다랭이논
남해똥배 정신을 이어가는 다랭이논 ⓒ 이종원

가천마을을 떠나며

다음 일정 때문에 다랭이 마을을 떠나야 한다. 다시 가천마을을 마음 속에 간직해야 한다. 외형적인 아름다움만 담을 것이 아니라 굳굳하게 살아왔던 그들의 정신까지 담아야 할 것이다.

남해사람은 여수까지 거룻배를 타고 가 똥장군을 걸머지고 여수의 뒷간을 치웠다. 여수 똥을 나르는 거룻배를 '남해똥배'라고 부른다. 그 똥배는 사라졌어도 '똥배기질'은 아직까지 남해사람들의 가슴 속에 자라고 있다. 겨울엔 마늘과 보리농사로, 여름엔 벼가 자라고, 겨울엔 바다로 나간다. 사시사철 허리 한번 펴는 일이 없다.

이런 민초들의 힘이 남해를 더욱 아름답게 만든 것이 아닐까?

가천 다랭이 마을 가는 법

* 가는 법

진교 하동IC-남해스포츠파크-양지삼거리-평산-사촌해수욕장-향촌-가천

사천IC- 창선삼천포간 연륙교-지족해협-이동면-앵강고개-용문사-평산-사촌해수욕장-가천

* 주변관광지

숙호해변, 임진성, 선구몽돌해안,설흘산 봉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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