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조금 있자니, 진지한 효선이가 나뭇잎에 물을 받아 어린 도룡뇽을 데려온다. 어리광쟁이 지혜도 물 속에서 이리저리 오가는 버들치를 찾아냈다. 상품을 받겠다고 그걸 움키려는 지혜에게 그것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물으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가 찾은 보물을 바라보기만 한다.
살아 있는 것. 가져가지 않고, 소유하지 않으면서 함께 살아가는 것. 자연은 그렇게 아이들을 가르치나 보다. 우리말고도 이 골짜기에 많은 게 살고 있다는 어느 아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들은 이차방정식보다 더 중요한 지혜를 스스로 터득했다.
나무 그늘에 앉아 가시내들은 간식을 나눠 먹는다. 친구 입에 과자를 넣어 주고, 반토막은 자기 입으로 가져간다. 그리고 맑은 물에 발을 담근 아이들의 입에서 동요가 나온다. 내가 어린 시절 듣던 '나뭇잎 배'라는 동요를 아느냐고 묻자, 안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들과 나는 나지막히 그 슬프고도 아름답던 동요를 부르기 시작했다.
오래된 동요를 아는 아이들이 신기하여, '섬그늘'이라는 동요를 아느냐고 묻자, 아이들은 대번에 노래를 흥얼거린다. 그런데, 가사가 좀 이상하다.
엄마가 캬바레에 춤 추러 가면
아기는 혼자 남아 담배 피다가…
머리가 아찔해진다. 허위적거리며 부르지 말라고 했더니 아이들은 그런 내가 더 재밌는지 소리 높여 부른다. 그냥 재미로 부른다고 하지만, 고쳐 부르는 노랫말이 너무 현실적이고, 풍자적이다. 아이들은 우리 동요는 슬프다고 하면서도 이내 나무 그늘에 옹기종기 모여 '나뭇잎 배'를 부른다.
푸르른 나무 그늘 아래, 맑은 물에 발을 담그고 나지막히 동요를 부르는 아이들의 모습에 나는 홀려 버렸다. 효선이는 벌써 나뭇잎을 주워, 배를 만들고 있다. 아이가 띄워 보내는 저 배는 어디로 갈까.
냇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
희미해지는 노랫말 가운데서 홀연히 그 가락이 되살아난다.
동요를 부르는 가시내들 곁에서 머슴아들은 벌써 물놀이에 한창이다. 누군가 한 명이 뛰어들자, 꼬리를 잇는다. 그만 두라고 하려다 온종일 교실과 학원을 오가면 딱딱한 의자에 붙들려 있던 아이들을 떠올리곤 놓아 둔다. 물놀이도 그못지 않은 공부이다.
그렇게 물과 친해질 수 있다면, 그래서 먼훗날 자기의 아이들과 제자들에게 그가 보낸 이 골짜기의 여름과 놀이를 전해줄 수 있다면 그것도 훌륭한 공부이다.
초여름의 볕은 물장구를 치느라 흠뻑 젖은 아이들의 옷을 단숨에 말려 놓았다. 아파트에서 태어나 옷은 세탁소에서만 말리는 거라 알던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경험이 되었으리라. 자기들이 남긴 쓰레기를 말없이 주워 담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잔소리없이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연이라는 스승에 머리를 숙인다.
수업 시간에도 제멋대로 돌아다니느라 꾸중을 자주 듣던 지혜가 소매를 잡아 끈다. 은박지를 비비는 듯한 소리가 들려 온다. 메뚜기도 우나요. 아이의 손가락을 따라 가보니, 메뚜기 한 마리가 잎사귀에 매달려 열심히 뒷다리로 날개를 비벼 아름다운 노래를 만들고 있다.
그 작은 생명이 울려내는 소리치고는 참으로 청아하고 당당하다. 어리광쟁이로만 아는 지혜도 저렇게 열심히 자기 삶을 아름답고 당당한 노래로 만들어내리라 믿는다.
저마다 주워 든 보물을 디밀며, 상품이 뭐냐고 묻는 아이들에게 말없이 웃어 보인다. 너희들은 이미 무엇보다 소중한 상품들을 받았단다. 나는 마음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아이들은 자신들이 받은 상품을 알게 될 것이다.
푸른 나무 그늘이 흐르는 맑은 물에 발을 담그고 동요를 부르던 아이들을 보며, 내가 오래도록 잊고 지내던 지난 날의 기억과 그때 부르던 '나뭇잎 배'의 아름다움을 되살린 것처럼, 아이들은 언젠가 그들이 이 골짜기에서 받은 아름다운 상품을 되살려 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