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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는 나에게 음악을 가르쳐주곤 하던 친구와 바닷가에 앉았다. 어둠이 내린 바다에서 파도가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는 것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유난히 감성이 풍부하던 그 친구가 나에게 질문을 했다.

“너는 세상에서 사람이 살면서 하는 일 중에서 뭐가 젤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니?”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질문이었다. 나는 늘 ‘세상의 모든 의문들에 대해 생각하고, 모든 질문들을 마음에 담아두고 살아간다’고 말하곤 했었다. 그러나 삶의 곳곳에서 이렇게 한번도 예상해 본적이 없는 질문들에 부딪히게 되는 일이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때로는 그렇게 느닷없이 내 앞에 나타나는 질문들에 대해, 얼떨결에 순간적으로 하는 대답이 삶에서의 하나의 선택이 되곤 했다. 때로는 그런 것이 불만이기도 했지만, 차츰 나는 받아들이게 되었다. 삶이란 그런 것이었고, 그것이 삶이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나는 늘 깨어있고 준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곤 했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나는 그런 ‘준비된 삶’에 싫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제는 ‘즉자적인 삶’을 살자. 관념에서 벗어나 삶을 회복하자. 그날 친구가 질문을 할 무렵, 나는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나는 소중한 친구가 의미심장하게 묻는 질문에 진지하게 그러나 많이 생각하지 않고, 그저 내 마음이 응답하는 그대로 대답하고 싶었다. 나는 바다를 응시하며 그 질문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다소 신중하게, 그리고 힘찬 어조로 대답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사람이 살면서 하는 것들 중에서 밥 먹고 똥 싸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

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주어 또박또박 이야기를 했다. 친구가 그 말의 의미를 생각하는 동안 나는 친구가 내 말뜻을 오해하지 않도록 부연설명을 했다.

“잘 먹고 잘 사는 게 중요하다는 게 아니야. 내 말은 관념의 노예가 되지 말고, 진정 건강하게 살아보자는 뜻이야. 잠에서 깨어나서 맛있게 밥 먹고 하루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것, 그리고 그 산물인 똥을 건강하게 내보내는 것이 건강한 삶의 단적인 표현이 아닐까?”

형이상학적인 대답을 기대한 것 같았던 친구는 내 대답을 듣고 다소 의외인 듯 했다. 그러나 그건 당시 내가 생각하던 ‘즉자적인 삶’을 형식만 달리 표현한 것이었다. 친구는 밤하늘과 밤바다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우리는 그렇게 말없이 마음속으로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조금 후 친구는 말했다.

“그래. 네 말이 맞는 것 같다. 우리가 생각하는 지식과 지혜도 결국은 사람의 삶과 떨어져서는 빛을 발할 수 없는 법이지. 오늘 네 말을 듣고 그걸 더 확실히 느끼게 되었다.”

친구는 그 깡마른 얼굴, 빛나는 눈동자에 초롱초롱한 별빛을 담고서 꿈꾸는 듯한 허스키한 목소리로 그렇게 대답했다. 늘 명랑하기만 하던 친구는 그날 그렇게 조용히 않아서 많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그래! 정말 중요한 것은 사람이 건강한 삶을 살아간다는 거겠지?”
“그래! 하지만 그 건강이란 게 과연 무엇인가가 중요하겠지.”
“네가 말한 밥 잘 먹고 똥 잘 싼다는 게, 단순한 신체적인 건강을 말하는 건 아니지?”
“그럼!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건강한 몸이 아니라, 삶의 건강성을 말하는 거지. 신체적으로 표현했지만, 그렇게 힘차게 활기차게 건강한 삶을 살아가자는 뜻이야.”

그날 나는 그렇게 말을 했지만 사실 나 역시도 당시는 그 말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했었다. 나 역시 아직은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랬기에 그런 말을 했는지도 모른다. ‘밥 먹고 똥 누는 즉자적인 삶이 관념적인 삶보다 더 중요한 거라고.’

그러나 그 말에는 또 한 층의 의미가 더 담겨 있었다. 나는 단순히 창백한 지식의 노예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삶을 헤엄치고 살아가는 진정한 자유인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두 발로 굳게 땅을 디디고 선 진정한 자유인이 되기 위해, 하루하루의 삶에 더 충실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 그를 만나면 또 한마디를 더 해주고 싶다. 별빛은 저렇게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지만, 별빛을 아름답게 보는 것은 우리들 자신 인간들이라고. 그래서 아름다움과 그리움을 찾아 하늘을 쳐다보지만 말고, 바로 이 세상에서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그리고 아름다움은 결코 머물러 있지 않고, 삶을 따라 흘러가는 과정 속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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