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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으로부터 도착한 구호물품
ⓒ JTS
카불시 외곽에 위치한 세관에 '한국 JTS'에서 보내온 컨테이너 3개가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컨테이너들은 한국에서 출발한 후 파키스탄의 카라치항을 거쳐 육로로 아프가니스탄 국경을 넘어 카불까지 온 것이다.

40피트 컨테이너 1개에는 보통 5만벌의 옷이 포장되어 들어갈 수 있다. 한국의 후원자들이 모아준 중고의류 15만여벌과 생필품, 문구류 등이 이번에 들어온 것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바미얀 유적지를 답사하기로 한 하루 전에 급작스럽게 이런 연락이 들어오는 바람에 대책회의가 열렸다. 세관에 묶인 컨테이너를 꺼내오기 위해서는 이리저리 일이 많아서 모두 함께 바미얀에 갈 수는 없는 법. 대책회의의 결과는 바미얀 답사는 하루 미루기로 하고 그 하루동안의 시간 안에 컨테이너를 찾아 가져오는 것이다.

▲ 도착한 구호물품을 분류하는 자원봉사자들
ⓒ JTS
더불어 휴가를 받아서 아프간까지 온 '인도 JTS'의 자원봉사자들 18명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구호품 정리의 과제가 떨어졌다. 인도에서 5만벌의 구호의류를 일일이 손으로 하나하나 정리해본 경험이 있는 자원봉사자들에게 이건 악몽의 재현이다. 갈수록 커지는 구호물품의 규모에 자원봉사자들은 힘들어진다.

우선 남자 자원봉사자들은 40피트의 길다란 컨테이너를 사무실로 쓰는 집 앞에 놔두기 위해 필요한 공간확보를 위한 평탄작업에 들어갔다. 휴가를 나와서 다시 삽을 들어야 하는 남자 자원봉사자들. 뭐 이 정도야 기꺼이 할 수 있는 수행들이 되어 있다. 이론적으로는….

그 사이 JTS 실무자들은 세관에 들어온 컨테이너를 찾아오기 위해 시내 이 곳 저 곳을 뛰어다녀야 했다. 이것이 세간에는 잘 알려지지 않는 구호사업 활동 중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한국에서 후원자를 개발하고 기부품을 받아 모아 선적하는 것과, 현지에서 도착한 기부금품들을 현지인들에게 직접 나눠주는 것은 긴급구호사업의 ABC이자 기본적인 활동이겠는데, 실상 가장 사람 피를 말리는 부분은 현지에 도착한 물건을 원주인인 우리가 인수받는 과정으로 부패한 관료들과 비효율적인 체계와 씨름해야 하는 고단한 과정이 있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여서, 아프간 JTS의 선주법사님, 법운법사님, 박지나 이사님이 해결사로 나서 실무팀이 되었고, 이들이 맨 처음에 시작하는 일은 컨테이너 차량이 도착했을 때 트럭에서 컨테이너만 분리해 내려놓을 수 있는 '기중기'를 빌리는 것이었다.

시내 곳곳에 이미 몇몇 거래처를 터 둔 법운법사님이 안내하고 JTS의 해결사 노릇을 해오는 박지나 해외사업본부장님이 직접 협상에 나선다. 통역은 아프가니스탄 JTS의 현지인 스태프인 하심 아저씨가 맡는다.

NGO들의 난립으로 건물임대료, 차량대여료 등등 구호사업과 관련된 물가들이 전반적으로 뛰는 상황에서 외국인이면 역시나 등을 쳐 먹을려는 일부 아프간 사람들의 심보까지 합세하여 이런 곳에서 적정한 가격을 맞추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딱 어떤 수준의 가격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부르는게 값인 이런 상황에서는 편하게 빨리 하고 대충하려고 하면 사업비를 낭비하기 일쑤이다.

'짠돌이' JTS야 사업비를 한푼이라도 아낄려고 다른 단체들처럼 '적당한 가격'을 찾는게 아니고 어떻게든 '싼 가격'을 만들어 낼려다보니 다른 단체보다 발품을 더 많이 팔아야 한다.

기중기 빌려주는 곳 세 군데를 돌고 다른 한국 NGO에서 크레인 가격에 대한 정보를 얻고나서야 겨우 결정할 수 있었다. 이 결정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는 필자로써는 어머니들이 시장에서 껌값도 안될 몇 백원 깎으려고 노력하는 그런 부지런함을 실무자들에게서 볼 수 있었다. 깎아야 하는 돈의 단위가 클 뿐 시장바닥의 그 혼잡함 속에서 벌어지는 고도의 심리전을 맛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장면들을 직접 볼 수 있다면 사무실 업무에 익숙한 오피스 워커(Office Worker)들도 이런 현장활동가(Field Worker)들의 협상력에 혀를 내두룰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구호사업이라고 하면 멋드러진 일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농사도 짓다 공사도 하다 비즈니스도 해야하는 등 만능 멀티플레이어가 되야하는게 현실이다.

그래서 제대로 된 구호사업을 하기 위해서 현장활동가들에게 가장 권장되는 덕목은 활동가들에게 시장상인들의 억척스러움이 배어 있어야 한다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이것은 상대방의 심리를 파악할 줄 알아 상대편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도 알 수 있어야 하는 통찰력을 기반으로 해야하고 또한 여기에다 한 가지를 더 추가한다면 극빈자들에서부터 상류층까지 수시로 부딪히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로부터 우호적인 분위기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다양한 코드를 적시에 구사할 줄 안다면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복장이나 행동, 언어 등에서 상대하는 사람들의 수준에 맞게 세련됨에서부터 소박함까지 상대방을 붙들어 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관공서에 들려 NGO담당관을 데려오고 세관에 가서 관련 공무원에게 서류를 내민다. 필자가 기억하기로 컨테이너를 찾기 위해 이렇게 우리가 들려야 했던 사무실은 총 11개, 그러나 11개의 사무실을 한번씩만 들려서 되는 것이 아니고 여러 번 왔다갔다 하는 경우가 많아 우리가 팔아야 하는 발품은 짜증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아프간 공무원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되묻는다. 그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그러면 너희 나라에서는 어떻게 하는데?" 답이야 '원 스톱 서비스'라고 말했지만 실제 우리나라 세관이 그렇게 움직이는지는 필자도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어쨋든 원스톱 서비스는 너희 나라가 잘 살아서 그렇다는 반응이고 아프간은 아프간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들 세관공무원들의 당연한 생각.

그렇다. 그러한 게 당연한데 우리는 편리함과 한국적인 시간관념에 익숙해져 차분하게 일을 진행하기 이전에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짜증스러움이 올라온다.

이러한 마음 속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극복하고 일에 매진할 수 있는게 활동가들에게 필요한 덕목이기도 하며 그런 능력들은 불교에서 말하는 '수행'을 통해서 쉽게(?) 성취될 수 있는 것이기에 JTS 같은 불교계 활동가들은 국제구호사업을 위한 훌륭한 자산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격이다.

4시가 되니 세관직원들이 칼퇴근한다. 아직도 우리는 컨테이너를 빼내기 위한 절차를 다 마치지 않았음에도 공무원들은 그냥 돌아 간다. 이 날 컨테이너를 못빼면 다음날도 이 곳에 와야 하므로 일정에 차질이 생긴다. 이런 문제에 봉착했을 때 해결해야하는 것도 현장활동가들의 몫.

▲ 현지주민에게 전달되는 구호물품
ⓒ JTS
JTS의 해결사인 박지나 이사님이 유려한 영어솜씨로 관원들을 꼬드겨 컨테이너를 우선 우리가 가져가고 못갖춘 절차는 나중에 다시 처리하기로 한다. 물건을 빼내는 절차가 무지하게 번거로운 것도 아프간 같은 나라이기에 가능하지만, 이처럼 절차를 다 밟지도 않고 물건을 빼낼 수 있는 것 또한 아프간 같은 나라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해가 어둑어둑해질 무렵에야 겨우 컨테이너를 실은 트럭이 아프가니스탄 JTS 사무실 앞에 도착했다. 미리 협상해두었던 크레인 2대도 도착하여 작업을 시작한다. 이로써 한국에서 구호품을 모아서 보내고 현지에서 그 구호품을 나눠주는 사이에 가장 피곤하면서도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구호사업의 중요작업을 하나 마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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