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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하루걸러 비가 오기를 보름이 지났습니다. 날씨가 괜찮을 듯싶다가도 손바닥만한 구름이 몰려오면 영락없이 소나기 퍼붓고 지나가고, 비가 많이 오려는지 잔뜩 흐리면 오후에 비가 질금질금 오다말고, 방안은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찌르고 옷이고 이불이고 축축한 게 기분까지도 가라앉은 채로 나는 아침부터 하릴없이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여름장마철이라 기온이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지만 습도가 높아 후텁지근한 게 장마와 더위를 피해 달아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여름장마와 더위에 꼼짝없이 갇혀 지낼 수밖에요. 집에서 움직이는 거라곤 선풍기 밖에 없었습니다. 아내가 시집올 때 갖고 온 선풍기가 좌우로 돌아갈 적마다 ‘꺼덕꺼덕’ 소리를 내는데 저러다 아주 서버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선풍기만 혹사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안에 누구 계신교? 안계신교?”
하면서 일어날 시간도 안주고 낯선 사람이 등에 무엇인가 잔뜩 지고 집안으로 들어서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화들짝 놀라 반사적으로 일어났는데 옷은 거의 벗은 상태였습니다. 안방에서도 역시 아내가 비슷한 상태로 당황하며 엉거주춤 낯선 손님을 맞았습니다. 낯선 손님의 정체는 물어보나마나 뻔했습니다. 등짝에 지고 있는 물건이 대나무자리였습니다. 무더운 여름날 장마까지 겹쳐 푹푹 찌는 날씨에 먹고살겠다고 무거운 걸 등에 지고 집집마다 대나무자리를 팔러 다니는 사람도 참 안됐다 싶어 집안으로 들여 시원한 냉수를 권했습니다. 낯선 사람이 심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길래
“아저씨, 고향이 안동 쪽 아닙니까?”
했더니 이 사람은 무슨 고향사람이라도 만난 것처럼 너스레를 떨며 아는 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더운데 고생이 많네요? 그래 물건 많이 파셨어요?”
아내가 같은 고향이라고 한마디 거들었더니 이 사람은 완전히 눌러앉을 기세였습니다. 아무래도 시간을 끌면 안되겠다 싶어
“아저씨 무거운 것을 지고 예까지 오셨는데 우리가 돈도 없고 살 형편이 못되어서… 정말 하나 팔아드렸으면 좋겠는데 미안해요.”
내가 물건을 살 돈이 없다고 선수를 치자 이 사람은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는 듯이 전혀 꿈쩍도 안하고 동문서답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저씨요! 내가 보이 농사짓는 분 같지는 않는데 귀하신 분 같은데, 학교 선생님 아니십니꺼?”
“아, 아닙니다.”
내가 난처한 표정을 짓자 옆에 있던 아내가
“이 양반 목사예요!”
“이런 우예노 목사님 있겨! 어쩐지 얼굴이 목사님 같더만…. 아이구 목사님, 사모님. 내가 오늘 이렇게 와서 시원한 냉수도 대접받고 좋은 일 하나 해 안되겠습니껴! 내가 이 대나무 자리 싸게 팍 주겠니더!”
“필요 없어요. 그리고 사고 싶어도 돈이 없다니까요.”
“돈이 없으믄 쌀로 주셔도 되고, 지금 당장 돈이 없으면 농사짓고 그때 가서 줘도 되고…. 내가 딱 반값으로 잘라서 9만원 받을 게요. 증말 싼 거시더!”
“아저씨 정말 끈질기시네, 정말 돈이 없다니깐요?”
“그럼 퍼뜩 가서 돈 빌려오소. 증말 좋은 물건 이니께!”
이렇게 해서 대나무자리 장사꾼하고 실갱이가 벌어졌는데 산다 못 산다 조금도 양보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조금 시간이 지나자 그 아저씨도 지쳤는지 풀어놓았던 대나무자리를 다시 멜빵으로 묶으면서 한다는 말이
“그럼 목사님 사모님요, 내가 딱 6만원만 받을 게요. 완전 밑지고 파는 긴데. 좋은 일 좀 해보시더!”
“그럼 아저씨, 이건 국산 물건입니까? 요즘 하도 중국산이 국산으로 둔갑해서 팔린다고 그러던데!”
“목사님! 사람 뭘로 보고 그래니껴! 어제 우리 집에서 짠 거시더. 완전 메딘 코리아 백프로 국산이니더!”
실은 나도 대나무 자리가 있으면 싶었습니다. 그 위에서 잠자면 끈적거리지도 않고 좋겠다 생각하고 있었던 참인데 언감생심 돈이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만한 가격이면 괜찮겠다 싶어 아내에게 눈짓을 하고 빨리 돈을 찾아보라고 시켰습니다. 여기저기 돈을 찾느라고 시간이 한참 지났습니다. 지갑이고 옷이고 서랍이고 다 뒤져 6만원을 기어코 만들어 대나무 자리를 사고 말았습니다.
“목사님 사모님요! 증말 싸게 잘 산니더!”
나는 대나무 자리를 사고 나서 며칠동안 대나무 자리에서 잠도 자고 꿈도 꾸고 밥도 먹고 책도 보고 신문도 보고 대나무 자리에서 떠날 줄을 몰랐습니다. 거기 앉아서 잠을 자면 잠도 잘 오고 책을 보면 양반이라도 된 것처럼 기분도 적당했습니다. 며칠 지난 뒤였습니다.
금요일 내가 인도하는 속회에 속회예배가 있어서 박아무개 집사님 집엘 갔습니다. 그런데 그 집 거실에 내가 산거와 똑같은 대나무 자리가 있고 위에 예배 상을 펴놓고 있었습니다. ‘이 집도 저걸 샀구나!’ 속으로 생각하고 앉아서 잠시 기도를 드린 다음에
“박 집사님, 대나무 자리 사셨어요? 나도 샀는데 얼마 주고 사셨어요?”
나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십 만원이 넘는 걸 내가 목사라고 제일 싸게 6만원에 밑지고 준다고 했으므로 분명 박○○집사님은 나보다 비싸게 샀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목사님도 사셨어요? 저는 그 사람이 얼마나 떼를 쓰던지 3만 5천원 주고 샀어요!”
“으악…!”
알고 보았더니 박○○집사님만 산 게 아니라 집집마다 하나씩 샀는데, 거의 다 3만5천원주고 샀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대나무 자리는 국산이 아니라, ‘메이드인 차이나’-오리지널 중국산이었습니다. 목사 된 게 무슨 동네북은 아닐 테지만 세상에 목사를 속여먹는 사람도 있으니! 목사가 제일 똑똑한 것 같지만, 세상에 목사만큼 멍청한 사람이 있을까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도리어 내가 그 사람 눈에 그 정도로 멍청하게 보였다는 것이 그렇게 기분 나쁘지 않았습니다. 대나무자리를 6만원주고 샀지만, 여름만 되면 나는 여전히 그 위에서 잠을 자고 책을 봅니다. ‘메이드인 코리아’면 어떻고 '메이드인 차이나'면 어떻습니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걸 사용하는 사람이 중요한 거 아닙니까?
대나무자리에 얽힌 추억때문에 ‘모자란 듯 멍청하게 조금 손해를 보고 살자’가 내 생활철학쯤 되고 말았습니다. 자기 잇속만 챙기는 세상에서 그런 멍청이도 있어야 이쪽저쪽 죽이 맞는 거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