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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금액 35불 - 아이디: 배고픈 학생"

익숙한 장면 아닌가? "노무현, 나 백수다…"하며 시작되는 지난 해 대선의 유명했던 후원금 사연 말이다.

하워드 딘의 인터넷 모금 사이트에서 매일 벌어지는 모습이다.

닮은꼴은 이것만이 아니다.

민주당의 뉴햄프셔와 아이오와주 코커스를 앞두고 수백여명의 '딘사모' 회원들이 모여 민주당원들에게 친필서신을 써 보냈다. 무명의 딘이 왜 민주당의 대선 후보가 되어야 하는지 절절히 호소하는 친필 서신을 받아 본 많은 당원들이 감복하여 그의 지지자로 돌아섰다고 한다.

▲ 하워드 딘의 유세에 몰려든 지지자들
ⓒ 하워드 딘 공식 홈
뉴욕의 한 카페에 모여 왜 딘을 지지하게 됐는지 서로 경험을 나눈 15명의 하워드 딘 팬들은 다음 번 번개모임을 같은 장소에서 가질 것을 약속하고 돌아가 각자 인터넷 홍보활동에 나섰다.

그들은 그 카페에서 두 번째 번개모임을 가질 수 없었다. 하워드 딘의 방문을 앞두고 무려 5백여명이 넘는 네티즌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다른 장소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 뒤로도 계속해서 불어나는 사람들 탓에 한 번도 같은 장소에서 모일 수가 없었다고 한다.

하워드 딘은 한국에는 '미국판 노무현'으로 소개됐지만 기껏해야 인터넷을 이용해 급부상한 무명후보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와 노무현의 닮은꼴은 단순히 인터넷을 활용하고 있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지금 민주당 지지자들은 거듭 되는 선거 패배에다 부시정권의 파쇼적이고 억압된 분위기 속에서 가슴에 응어리가 맺혀 왔지만 그간 아무런 승리의 대안도 없이 숨 죽이며 좌절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좌절의 깊이가 깊은 만큼 그 폭발의 강도가 컸던 것일까? 부시정권의 이라크 전쟁에 굴하지 않고 할 말 다하며 민주당다운 민주당의 회복을 외치는 하워드 딘에게 민주당원들은 마치 힘주어 눌린 용수철이 격발하는 것처럼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ADTOP@
언론의 까다로운 질문에 맞서 소소하게 변명하거나 언쟁하지 않고 대담하게 핵심으로 돌진하는 그의 화법 또한 기자들 사이에 화제다. 장인의 좌익전력 시비에 "아내를 버려야 대통령 될 수 있다면 저 그런 대통령 하지 않겠다"고 일갈해 조중동을 머쓱하게 했던 노무현의 어법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다.

이런 저런 지적을 하면 딘의 대답은 이런 식이다. "저 원래 그런 사람이에요." 이러니 그간 의혹이 일 때마다 진땀을 흘리며 변명에 급급한 정치인들을 '조지며' 재미를 봤던 언론들이 어이가 없을 수밖에.

주류 언론과 워싱턴 정가의 분석가들은 하워드 딘이 민주당 후보로 선출되더라도 반전 입장에다 급진적인 성향으로 본선에서 부시를 이길 수는 없을 것이라는 분석을 한결같이 내놓고 있다. 하지만 그건 과거의 정치 패러다임에 좌우되는 기성 정치인들에게나 적용될 논법 아닐까?

하워드 딘처럼 당의 공식 선거운동 조직이 아니라 풀뿌리 네티즌들의 열성적인 성원에 힘입어 주요 후보로 부상하고 직설적인 어법으로 언론의 추궁을 황당하게 만드는 그의 모습은 기존의 익숙했던 분석의 틀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공화당 지지자들은 제발 그가 후보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한다. 부시가 제일 상대하기 쉬운 후보가 될 것 이라나? 글쎄 그들의 기대처럼 그가 손 쉬운 상대일는지는 두고 보면 알게 될 것이다.

그는 20~30대 유권자의 투표율이 10%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바로 정치인들 탓이라고 주장한다. 그간 정치권이 그들만의 리그를 벌이느라 왜 젊은이들이 시간을 내어 투표를 해야만 하는지 충분한 동기 부여를 해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민주당이 젊은이의 코드에 맞을 정치인과 정치적 이슈를 내세우지 못해 정치를 재미 없게 만들어 버렸다는 지적이다.

그간 잃어버린 민주당의 모습을 되찾고 부시가 빼앗아간 미국을 되찾아 미국민의 손에 돌려주겠다는 것이 연설마다 반복되는 그의 후렴구다. 왜 해외여행을 하는 미국인이 혹시 누가 등에 총을 겨누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꼴이 벌어지게 됐는가? 부시의 호전적인 외교정책으로 등을 돌린 미국의 친구나라를 되찾아 오겠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다른 후보들이 민주당 표밭이 아니라며 아예 외면해 버리는 남부의 극우 인종주의자들에게도 기꺼이 가서 표를 호소하겠다고 말한다. 엉망이 된 의료보험을 회복하고 표류하는 복지정책을 바로잡고 싶다면 딘에게 표를 던지라고 호소하겠단다.

유권자의 출신지를 살피며 영·호남 표 계산에 익숙한 기성 정치인들의 행태와는 확연하게 구별되는 참신한 모습이다. 적진이라도 기꺼이 뛰어들어 진심으로 호소하겠다는 모습이다.

이런 딘의 진실된 호소에 지지자들은 열광적인 성원으로 화답하고 있다.

딘의 선거운동이 지난 해 노무현의 그것과 너무나 흡사해 필자는 혹시 그의 선거운동본부에서 노사모의 사례를 참고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 왔는데 최근 단서를 발견했다.

하워드 딘의 핵심 선거 참모인 조 트리피가, 필자가 지난 해 대선의 사례를 꾸준히 기고하고 있는 하워드 라인골드의 블로그 사이트를 주기적으로 방문하며 참고하고 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한국 네티즌들의 인터넷 정치 경험이 간접적이지만 미국 대선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하워드 딘은 인터넷을 활용해 떴다는 언론의 평가에 이렇게 답한다.

"제가 인터넷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인터넷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어쩌면 그는 인터넷에 걸 맞는 진솔함과 화통함을 이미 지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준비된 후보에 인터넷이란 뉴미디어가 만나면서 벌어진 화학 반응. 하워드 딘 현상은 말하자면 세렌디피티(Serendipity)였던 셈이다.

뒤늦게 인터넷 정치를 하겠다고 뛰어든 기성 정치인들이 새겨 들을 말이다. 껍데기만 인터넷이어서는 열광적인 자발적 참여는 기대하기 어려운 법이다.

하워드 딘과 노무현의 닮은꼴 행진이 내년 미국 대선의 승리로까지 이어질지 눈 여겨 지켜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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