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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내가 <오마이 뉴스>에 올릴 글을 읽다가 그럽니다.
“이제 적게 벌어 행복해 지는 방법이라는 제목을 바꿔야 하는 거 아냐?”
“제목을 왜?”
“당신 요즘 돈 많이 벌잖아. 매달 꼬박꼬박 백만 원 넘게 벌고 있는데 이거 잘못된 제목 아냐? 벌써 3개월 짼데.”
“그러고 보니까 그런 거 같네? 그럼 어떻게 하지?”
“에이그, 그냥 해본 소리인데 심각해 하기는….”
“그래도 이거 사람덜 한티 거짓말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좀 묘하긴 하네….”

그 날 오후 내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내가 내린 대부분 결론이 다 그렇듯이 내 편리에 따라 그냥 은근슬쩍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어차피 6개월이나 1년도 못 가서 지금 하고 있는 밥벌이가 끊길 지도 모를 일이고 또 그때부터는 저금통장에 남아 있게 될 자금을 생활비로 써야 하니 평균으로 따진다면 적게 벌어먹고 산다는 것에 큰 무리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동안 나는 별로 가진 것이 없는 놈처럼 주절거려 왔지만 생각해 보면 가진 것이 참 많습니다. 땅은 단 한 평도 없지만 집 있지, 자동차 있지, 냉장고, 밥그릇, 국그릇, 수저, 가스레인지, 텔레비전, 비록 중고이긴 하지만 전축에 피아노, 옷장, 옷, 이불 등등 사랑방에 있는 것만 해도 참으로 많습니다.

지금 자판을 두들기고 있는 컴퓨터에, CD에 캠코더, 책장과 책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치 아주 많습니다. 하나 하나 나열하다보면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로 엄청나게 많습니다.

이런 소유물들 중에서 가장 값나가는 것은 역시 자동차입니다. 제가 끌고 다니는 자가용은 6년 전에 구입한 ‘프라이드 영’입니다. 매달 9만 몇 천 원씩 60개월 할부로 새 차를 구입해서 작년에 다 갚았으니 이제 온전한 제 것입니다.

물론 아내의 것이기도 하고 두 아들 녀석 것이기도 합니다. 또 어머니를 비롯해 형, 동생, 친구, 후배, 선배, 이웃집 노인들이건 누군가가 합승하게 되면 최소한 그 순간부터 공동의 것이 되기도 합니다.

사실 저는 운전하는 것 자체를 아주 싫어했습니다. 어지간한 거리는 미련스럽다고 할 정도로 걸어 다녔습니다. 하루에 버스가 서너 대씩 다니는 산골에서도 버스 기다리는 시간만큼 터벅터벅 걷는 게 더 좋았습니다.

길 가다가 고만고만한 아이들을 만나 장난도 치고 또 맘씨 좋은 노인들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도 듣고 들꽃도 만나고, 그런 낯선 만남들이 마냥 좋았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버스가 오면 그때서야 손을 들고 잡아타곤 했습니다.

헌데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아무런 대책 없이 시골로 가자고 했을 때 아내의 첫 번째 조건은 내가 운전면허증을 따는 것이었습니다. 자동차를 사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이 갑자기 아플 때를 대비해서 자동차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내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뒷걸음치다가 고삐 잡혀 억지로 끌려가는 황소처럼 운전을 배웠고 땡전 한푼이라도 빚지고 사는 것을 죽어라 싫어하는 성깔을 꾹꾹 눌러가며 60개월 할부로 자동차를 구입했던 것입니다.

우리에겐 지금도 카드라고 하는 것은 공중전화 카드와 현금카드가 전부입니다. 자동차 기름 넣을 때 리터 당 몇 십 원 씩 깍아 준다는 무슨무슨 기업 카드도 사절입니다. 한 달에 한번씩 갚아야 하니 빚진 느낌이 들어 싫습니다.

이런 남편 때문에 아내 속이 오죽했겠냐고요? 아닙니다. 저희 집 사람도 전혀 신경 안 씁니다. 카드에 대해서는 저보다도 더 모릅니다. 저는 기름값 할인해 주는 카드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만 아내는 그것조차도 모릅니다. 사는 데 전혀 지장 없습니다. 오히려 뱃속 편합니다. 아내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런 할인 카드는 물론이고 자동차 운전하는 것조차 싫어했던 인간이 그것도 5년 동안 빚진 느낌으로 꼬박꼬박 갚아 나갔으니 참말로 힘들었습니다. 자동납부로 돌려 놔서 신경이 덜 쓰이긴 했지만 말입니다. 다 갚고 나니까 갑자기 부자가 된 느낌이 들더군요.

사실 어렸을 때는 자동차 타는 것을 무슨 벼슬처럼 여기기도 했습니다. 초등학교 서너 학년 때쯤에는 버스를 한번 타려면 징검다리를 건너야 하는 시골에서 살았는데 그 때는 정말 버스 타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말이 끄는 것도 아니고 썰매처럼 뒤에서 밀어주는 것도 아닌데 앉아만 있으면 저절로 가는 버스가 정말로 신기했습니다. 차창 밖으로 휙휙 지나가고 다가오는 풍경들이 신기했습니다.

버스 삯이 5원이던 그 시절, 꼬깃꼬깃 용돈을 아껴 무작정 버스를 잡아타고 종점까지 갔다가 기사 아저씨 눈치보며 다시 버스 삯을 지불하고 되돌아오기도 했습니다. 그것도 몇 차례씩 말입니다. 그럴 때마다 큰 모험 길을 떠났다가 돌아온 놈처럼 친구들에게 우쭐거리며 자랑까지 했습니다.

“니들 버스 타고 종점까지 갔다 와 봤냐 자식들아!”

운전도 그렇습니다. 지금은 싫어한다고 엄살을 부리고 있긴 하지만 가끔씩 운전을 하면서 저절로 기분 좋은 미소가 흘러나올 때가 있습니다. 5원짜리 버스 타기, 그리고 ‘맹꽁이 차’ 타던 기억을 떠올리고는 말입니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줄곧 같은 반이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와는 늘 등하교를 함께 했습니다. 아마 1 년에 특별한 날을 몇 번 제외하고는 거의 붙어 다녔을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어린 시절을 부모형제보다 더 많이 보냈던 단짝 친구였습니다.

유복자인 그 친구에게는 형이 있었습니다. 그 촌구석에서 일찍이 엠프 기타를 들쳐 메고 이웃집 누이들 가슴께나 설레게 했던 그 형은 그 친구에게 있어서는 아버지나 다름 없었습니다. 열 살쯤 차이가 났으니까요.

아마 우리가 초등학교 5학년쯤이었을 것입니다. 그 친구형이 땅을 팔아 바퀴가 세 개 달린 ‘맹꽁이 차’를 샀던 것입니다. 당시 우리 동네 사람들이 소유했던 유일한 교통수단은 마차였으니까 엄청난 사건이었지요.

헌데 제가 친구들 중에서 유일하게 그 맹꽁이 차를 타 보았다는 것 아닙니까. 버스야 다들 타 보았지만 그런 ‘자가용’을 타 본 놈들은 드물었습니다. 아마 우리 친구들 중에는 그때 그 맹꽁이 차 뒤꽁무니만 좇아 다녔지 타 본 놈은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친구형은 시꺼먼 ‘라이방’까지 턱하니 걸치고 애인이 살고 있는 낯선 동네로 보란듯이 차를 몰았습니다. 맹꽁이 차는 먼지 풀풀 날리는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를 달리며 통통 튀었지만 그렇게 멋질 수가 없었습니다.

‘빨간 마후라의 사나이’(당시 공군 비행조종사들을 그렇게 불렀습니다)들은 저리 가라 였습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운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나중에 커서 운전기사가 되겠다는 야무진 꿈까지 꾸었습니다.

지금도 운전 중에 그 생각을 하다보면 저절로 미소가 흘러나옵니다. 그때의 그 밤톨만한 녀석이 이렇게 다 커서 운전을 하고 있구나 싶어서입니다. 그 어린 놈이 운전을 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지 않습니까? 낯반대기가 꼬질꼬질한 초등학교 5학년 짜리 촌놈이 턱하니 운전석에 앉아서 짠 하니 운전을 하고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게 바로 ‘나’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시동을 걸고 페달을 밟으면 앞으로 나가고 또한 밟을수록 더 빨리 앞으로 앞으로 내달릴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합니다.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게 말입니다. 그것도 내가 소유한 자동차로 말입니다.

헌데 문제는 늘상 그런 즐거운 상상 속에서 운전을 하는 것이 아니라 데 있습니다. 오히려 즐거움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고통이 더 많이 따릅니다. 어지간한 거리도 이제는 걷기보다는 자동차를 이용합니다.

걷지 않다 보니 다리가 후들거립니다. 허리도 아픕니다. 목도 뻐근합니다. 여기저기 끼웃거리고 실실 세상 구경하며 걸어가는 것이 좋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자동차에 의지하다보니 세상 구경도 제대로 못합니다. 소유의 대가치고는 너무나 큰 희생입니다.

그래서 뭘 어쩔 거냐구요? 어쩌긴 뭘 어쩌겠습니까? 그냥 운전하고 다닐 수 밖에요. 다만 전보다 자동차 신세를 적게 지는 수밖에 없겠죠. 적게 먹을수록 몸과 마음 건강에 좋듯이 적게 타고 다니는 것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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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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