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밤에도 불었네 휘파람 휘파람
벌써 몇달째 불었네 휘파람 휘파람
복순이네 집 앞을 지날 땐 이 가슴 설레어
나도 모르게 안타까이 휘파람 불었네
휘- -호- - 휘-호-호
휘- -호-- 휘-호-호
아마도 위 노래를 모르는 사람은 이제 없을 터이다. 북한의 유명한 대중가요 '휘파람'으로 조기전이 노랫말을 짓고 리종오가 곡을 붙였으며, 전혜영이 노래를 불렀다. 북한이 강한 투쟁가요만 부르는 줄 알았던 우리에게 이 휘파람은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그만큼 북한의 가요는 변하고 있었다는 반증이 아니었을까?
이제 그 생각은 한 석사논문에 의해 구체적으로 밝혀졌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장용석(33·총괄협력팀, 위 사진)씨는 최근 중앙대 예술대학원에 제출하여 통과한 '90년대 이후 북한 문예정책의 변화 양상 연구' 제목의 석사학위 논문에서 90년대 말부터 북한 대중가요는 김일성 일가에 대한 찬양 일변도와 투쟁위주에서 다소 벗어나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는 분석을 했다.
그는 지난 90년 이후 13년 간 북한 문예잡지 '조선예술'에 발표된 680여 편의 북한 대중가요를 분석한 결과를 가지고 석사논문을 통과한 것이다.
이 논문의 결론은 5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현실에 솔직해진 작품이 늘어났다는 분석. 90년대 후반 들어서는 현실을 '시련'으로 규정하고, 이를 극복해나가자는 노래들이 등장하고 있다. <가는 길 멀고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조선예술』, 1999. 2)가 예이다.
둘째,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군대가 동원되고 있다. <병사들 풍년가을 불러온다오>(『조선예술』, 1997. 9) 등의 노래에서 군인들이 농사, 발전소 건설 등 경제건설을 돕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셋째, 김일성 가계 우상화 정책의 약화 경향.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김 주석과 김 위원장 찬양가요가 60%에 이르렀으나 2000년대 들어서는 33.3%로 떨어졌으며, 그 기법도 노골적이고 직설적인 화법에서 '달' 등 자연물에 기대어 에둘러 말하는 형식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내 조국의 밝은 달아>(『조선예술』, 2000. 1) 등이 그런 노래이다.
넷째, 노랫말들이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점점 부드러워지고 있다. 90년대 중반까지 자주 보였던 '침략자, 원쑤(원수), 증오' 등의 표현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나는야 선군시대 총대처녀>(『조선예술』, 2003. 3)의 가사를 보면 "준마타고 달리는 처녀도 좋지만 총을 잡은 처녀병사 나는 되었네" 등의 표현으로 군대라는 딱딱한 소재도 부드럽게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1990년 이후 13년 동안 북한 노래가사 분석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추적하고 있는 이 논문은 북한이 현재 어디쯤 위치해 있고,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실증적인 연구논문으로 최근 북핵문제와 관련해서도 문제해결을 위한 시사점을 제공한다고 하겠다.
그를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서 만나 인터뷰를 했다.
- 북한가요를 논문 주제로 선택한 동기는?
"북한 대해 논문을 쓰는 것이 의미 있는 일로 생각했다. 주제를 고민하고 있던 차에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오양열 경영지원부장이 북한가요를 선택할 것을 권장했다. 그리고 계속 지도를 해주신 것이 큰 도움이 됐다."
- 평소의 북한, 통일에 대한 생각은?
"한국 사회의 문제에 대한 원인은 분단에 있다고 생각했다. 분단에 따라 이념대립이 있었고, 이 때문에 많은 왜곡도 생겼다고 본다. 따라서 우리가 통일에 대해 연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한다."
- 가요 외에 계속 북한의 문화에 대한 연구를 할 생각은?
"계속해서 북한의 문화, 예술에 관심을 갖고 연구할 것이다. 특히 다음 주제로는 영화를 해보고 싶다."
- 통일에 문화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일반적으로 남북문화교류가 통일에 많은 도움을 준다고들 생각한다. 물론 도움이 되는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문화, 예술이 사회주의 혁명, 체제유지, 주민동원 등에 사용되는 면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쉽지 많은 않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이념이 수반되지 않아도 되는 문화, 예술의 교류를 먼저 선행하면 좋을 것이다. 지금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민족서예교류전> 등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그는 참으로 순수한 학자의 모습을 지녔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한 장 찍는 것도 쑥스러워할 정도로 오직 논문에 대한 얘기에만 몰두했다. 남북의 통일은 정치, 군사, 경제적인 결합뿐 아니라 문화적인 공감대가 중요한 것이 아닐까? 그런데도 북한 연구에서 문화는 소외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따라서 장용석씨 같은 노력이야말로 소중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는 많은 북한문화 연구자들이 나오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