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가난>은 이런 사회일수록 오히려 가난을 좀더 적극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물론 가난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점점 늘고,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서민들에게 이 책은 지극히 낭만적인 구호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낭만적인 시선으로 가난을 예찬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자발적 가난'을 통해 사회를 간접적으로 비판하기도 하고, '가난'으로 바라 본 삶의 의미와 본질을 차분히 정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난하지 않다. 다만 돈이 없을 뿐이다."- 브르스 바튼
"거창한 부는 사치품만을 살 수 있을 뿐이다. 영혼의 필수품을 사는데는 돈이 필요 없다."- 소로
인도의 타고르나 간디, 파스칼 등 치열한 삶을 통해 '자발적 가난'을 실천한 현인들의 주옥같은 글귀도 눈에 들어온다.
"필요하지도 않으면서 어떤 것을 계속 가지고 있다는 것은 훔친 물건이 아니더라도 훔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다면 내버려두자. 하지만 나는 필요하지 않은 것은 감히 소유하려 들지 않겠다."- 간디
이미 알고 있겠지만, 이 책은 총 14장으로 나뉘어 있으며, 순서를 뒤집어 읽어도 무방하다. 또 처음부터 끝까지 단번에 읽으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는 책이다. 화장실이나 침실 근처에 두고 며칠에 걸쳐 차분히 읽으면 그 느낌이 한결 더 살아난다.
특히 2장의 '가난은 얼마나 좋은가'와 6장의 '덜 풍요로운 삶이 주는 더 큰 행복', 12장의 '창조적 가난'은 가난을 일관되게 관통하며 여운을 남긴다. 물론 다른 장들도 의미가 깊은 주옥같은 문장이 많다.
13장 '가난을 배우자'에서는 자식을 둔 부모들에게도 '충고'를 잊지 않는다. 이 장은 자식들에게 어린 시절부터 가난을 부정적으로만 가르쳐서는 안된다고 지적한다.
"부모들이 우리에게 금과 은에 대한 숭배를 주입했다. 어릴 때부터 탐욕은 우리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우리가 성장함과 동시에 결국 대중들이 가난을 야유하고 꾸짖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 세네카
그러나 마침내 14장까지 다 읽더라도 '자발적 가난'을 머릿속에 깊이 각인시키는 것은 쉽지가 않다. 감히 추측컨대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자발적 가난보다는 '비자발적 가난'에 너무나도 익숙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일까. 책의 마지막 장은 '자발적 가난'에 대한 정의를 막연하나마 풀어 놓는다.
"자발적 가난은 욕구의 결핍에서 나온다. 자발적 가난은 이런 결핍에 만족한다. 자발적 가난은 꼭 필요한 최소의 것으로, 존재의 단순한 골격만으로 부유함의 모든 욕구를 대체한다."- 안드레 밴던 브뤼크
"부자 나라의 사람들은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이 자신들처럼 살기를 바란다. 그들은 유목민들을 '가난에 찌든 자'들로 생각해서 동정하곤 한다. 그들은 유목민들의 삶이 그들의 삶보다 더 만족스러울 수 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 로버트 테오발드
"가난은 '죄'가 아니다"
현대인들은 미처 예기치 못한 실직과 사업의 부도 등 가난이 갑작스럽게 엄습할 수 있는 환경에 거의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다. 그만큼 뜻하지 않은 '비자발적 가난'에 처할 확률이 높다는 얘기다. 이는 <자발적 가난>에 쉽사리 동의할 수 없는 독자라 하더라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이 책은 부에 대해 일방적으로 비난하지 않는다. 다만 '자발적 가난'이 더 행복할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이는 '부'가 막연한 비난의 대상일 수 없듯이 가난 또한 '죄'가 아니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우쳐 주기 위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