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년 동안 경찰의 수배를 받아왔던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장기 수배자들이 20일 검찰에 자진 출두했다.
이는 지난 18일 한총련 정치수배해제를 위한 모임(이하 수배해제 모임)이 밝힌 계획에 따른 것으로 20일부터 9월 초까지 학생들의 자진출두가 이어질 전망이다.
수배해제 모임이 공개 출두 방침을 밝힌 이후 20일 첫 출두에 나선 이들은 그간 수배해제 모임의 대표를 맡았던 유영업(28·제5기 한총련 의장 권한대행, 97년 목포대 총학생회장)씨를 비롯해 송승훈(31·제5기 한총련 간부, 목포과학대)·이현주(32·제5기 한총련 간부,부산여대)·손필용(27·한국해양대 02년 국제대학생회장)·김길용(27·제10기 한총련 대의원, 한국해양대)·양호민(26·제10기 한총련 대의원,한국해양대)씨등 6명이다.
이중 유영업, 이현주, 송승훈씨는 7년째 수배생활을 해온 이들로 한총련 관련 최장기 수배자다. 그밖에 손필용, 김길용, 양호민씨는 2년째 수배생활을 해왔다.
유영업씨와 송승훈씨는 이날 오전 11시께 목포대 학생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후 오후 12시50분께 광주지검 목포지청으로 출두했고, 손필용·양호민·김길용·이현주씨도 같은 시각 기자회견을 마친 후 일단 부산지검에 출두했다가 수사를 받기 위해 낮 12시께 부산지방경찰청으로 자리를 옮겼다.
출두 전 기자와 나눈 전화통화에서 이들은 "검찰의 선별 수배해제에 대해 유감인 것은 사실이지만 향후 수배해제 문제와 한총련 합법화 문제는 단계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문제라는 생각에서 출두를 결심했다"며 "향후 국가보안법 철폐 운동을 통해 한총련을 비롯한 학생운동 활동이 부당하게 탄압받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출두 전 유영업씨는 그간의 수배생활이 떠오르는 듯 "한숨도 자지 못했다"면서도 "의외로 담담하고 차분하다"고 현재 심정을 밝혔다.
유씨는 또한 "현재 수배해제와 관련해 한총련 대내외적으로 많은 얘기가 오고 가는 상황에서 나가는 것이니 학생들의 진심을 모두가 알아줬으면 좋겠다"며 "한 대학의 총학생회장을 지내고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갖고 운동했던 학생들이 7년 동안 박해를 받는 불행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역시 이날 부산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직후 부산지방경찰청에 출두한 손필용씨는 첫 출두에 대한 부담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손씨는 출두에 앞서 "마음이 불안하진 않으나 150여명의 수배 학생들 중 처음으로 출두하는 것이어서 우리의 수사 결과가 향후 다른 학생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을 생각하니 부담감도 든다"며 "이번 공개 출두가 향후 한총련이 합법적 활동을 보장 받아 더욱 떳떳하게 활동할 수 있는 교두보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들은 향후 수사 과정에서 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을 통해 선임한 변호인단을 통해 법적 도움을 받을 예정이다.
이날 자진 출두한 6명의 수배학생 중 손필용씨와 양호민씨를 제외한 수배자들은 지난 달 검찰에서 밝힌 '수배해제 조치' 중 불구속 수사대상에 속하지 않아 향후 검찰의 수사 결과에 귀추가 주목된다.
20일 이후에도 한총련 수배자들의 공개 출두는 계속된다. 오는 22일에는 연세대·동국대·단국대 소속 수배 학생 20여명이 검·경에 자진 출두할 계획이다.
한편 수배해제 모임이 공개 출두 방침을 밝히기 전인 지난 12일 진주 경상대 소속 수배학생 이아무개(28)씨와 정아무개(27)씨가 검찰에 처음 자진 출두해 조사를 받은 뒤 12일과 13일 각각 석방된 바 있다.
다음은 검찰 출두를 앞두고 있는 유영업·손필용씨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유씨는 19일 밤에, 손씨는 20일 오전 각각 전화를 통해 인터뷰했다.
[인터뷰 1] 유영업(28·제5기 한총련 의장 권한대행, 97년 목포대 총학생회장)
- 지금 심경은 어떠한가?
"힘겨운 길을 걸어오지 않았나. 이(수배해제) 문제 해결하는데 굉장히 어려움을 많이 느꼈던 게 사실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희귀한 상황 아닌가. 7년째 수배를 받았던 수배자가 자진 출두를 하다니….
그간 수배해제 문제와 관련해서 (한총련 대내외적으로) 여러 가지 얘기가 오고 갔었는데 우리가 출두하는 마음의 진정성을 알아 주길 바란다.
또한 정부에 하고 싶은 말도 있다. 한총련은 이적단체가 아니다. 한총련의 고민은 그간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많이 줬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의 활동과 양심을 법적 잣대로 재단하는 것은 오히려 더 큰 사회적 손실을 낳게 된다고 생각한다.
보수 언론이나 보수 단체도 일방적으로 한총련을 매도하는데 한총련을 실제 많이 변화하고 있고 발전의 과정에 서 있다.
이번 수배해제 조치가 어떻게 완결될 진 모르지만 한총련 합법화의 단계이고 과정이 됐으면 좋겠다."
- 현재 목포 고향 집에 머물고 있나?
"아니다. 출두 전에는 마음을 놓지 못한다. 어제까지도 한총련 대의원이나 수배학생들이 강제 연행됐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에 집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 만약 풀려나게 되면 집에 가서 부모님 먼저 뵐 것이다. 출두를 앞두고 잠을 거의 못 잘 것 같다."
- 수사 결과를 어떻게 예상하고 있나.
"그간 수배해제를 바랬던 수배자들과 가족들, 그리고 진보단체 진영은 대검의 이번 조치를 하나의 개혁 조치로 봤다. 그만큼 전향적인 판단을 하기를 바란다. 현재 검찰 일각에서 탈퇴서 얘기가 나오는데 이는 부당한 일이다.
불안하거나 떨리지는 않다. 수배자 한 사람의 문제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끝내는 게 아니라 전체 수배자 문제로 연결된다. 또 한총련 문제와도 관련돼 있다.
내 문제가 곧 전체 수배자와 한총련 합법화 문제라는 생각으로 신중하게 판단하고 있다."
- 어떤 마음으로 출두하나?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한 대학의 총학생회장을 지냈고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으로 학생운동을 한 학생이 나라와 국민에게 위해를 끼친 게 아닌데 7년 동안 박해를 받았다. 불행한 일이다. 그런 불행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
"일단 학교에 복학해서 밝은 마음으로 열심히 학업에 열중하고 싶다. 이후에는 지역에서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수배자 문제와 한총련 합법화를 위해 후배들을 돕겠다.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활동도 할 생각이다."
[인터뷰 2] 손필용(27· 한국해양대 02년 국제대 학생회장)
- 지금 심경이 어떠한가?
"똑같다. 불안하진 않다. 하지만 우리가 전체 수배자들 중 처음 출두하는 것이어서 부담감이 들기도 한다. 우리의 수사 결과가 잘 나와야 뒤이은 학생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지 않을까 해서다.
또 오늘 출두하는 사람 중 나와 양호민씨는 불구속 수사 대상자이지만 나머지는 그렇지 않다. 그들의 결과도 걱정된다."
- 오늘 출두는 누구와 하나?
"가족들과 같이 갈 예정이다."
- 기자회견에서는 어떤 입장을 밝히나?
"선별 수배 해제는 부당하며 전원 수배해제 돼야 한다는 내용을 밝힐 것이다. 또 이제는 국가보안법 철폐 운동으로 완전한 한총련 합법화를 이뤄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최근 들어 공안당국에서 수배해제 지침을 발표하고서도 학생들을 강제 연행하는 처사에 대한 비판도 있다."
- 민변에서는 어떤 도움을 줄 예정인가.
"일단 오늘 출두해서 수사 결과를 보고 돕기로 했다. 향후 불구속 수사 과정에서 재판을 받게되거나 구속이 될 경우에 법적 도움을 주게 될 것이다."
-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향후 수배가 해제돼서도 해결되지 않은 수배자 문제와 한총련의 합법화를 위해 후배들을 도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