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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 연인산 아래 민박집에서
가평 연인산 아래 민박집에서 ⓒ 박태신
먼저, 제가 다니는 성당의 청년들과 엠티를 갔을 때의 사진입니다. 전부 성가대원들이고 발표회를 준비하는 합숙 훈련 엠티였습니다. 창 안쪽으로 밤늦게 연습하는 장면이 보입니다. 가평 군청 뒤로 가면 연인산이라는 산이 있는데 그 밑에 있는, 별장 같은 민박집이었습니다.

마음껏 소리를 질러도 괜찮을 정도로 한적한 곳이었습니다. 밤새 성가 연습하고, 즐거운 나눔 갖고 하면서 우애를 돈독히 하는 아주 신선한 기회였습니다. 발표회요? 작년 가을에 무사히 마쳤습니다.

이 민박집의 커다란 유리창을 보면 배가 연상됩니다. 저희 성가대 이름이 '글로리아'인데, 그래서 이 집 이름을 '글로리아호'로 명명해 보았습니다. 창 앞의 복도는 갑판이라고 할 수 있고요. 아침에 이곳에 쪼르르 서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복도 난간을 배 난간 마냥 잡고 서 있는 15명의 선원들이지요.

창은 둥그렇게 휘어져 있습니다. 창을 닫으면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지만 커다란 투명 유리를 통해 안의 부산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땀이 더해지고 열정이 더해지고 사랑과 배려가 더해지는 모습이었지요.

그런 모습을 투명 유리창을 통해 보는 일은 행복한 일이었습니다. 사진을 찍으러 잠시 나왔지만 바로 다시 들어가고 싶을 정도였지요. 열심하고 성실한 모습은 사람을 힘나게 하는 빛이 되기도 합니다. 창 주위의 세 개의 외등은 우리의 노랫소리로 행복했을 겁니다. 밤이 되어도 등은 계속 켜집니다. 다른 배가 혹시 지나가도 우리의 존재를 알고 안심하게요.

참! 이곳에서는 창과 관계된 다른 추억이 있습니다. 아직 집이 완공된 것이 아니라 툭 하면 수도가 끊겼습니다. 그때마다 뒤란에 있는 펌프 모터를 손보기 위해 나가야 했습니다. 그때마다 현관으로 나와 빙 돌아서 가기가 귀찮아 몇 친구들이 밤손님 마냥 뒤쪽 창을 넘나들었지요. 또 화장실 문이 안에서 잠겨, 밖에서 좁은 화장실 창을 한 친구가 겨우 들어가서 열기도 했지요. 창을 넘나드는 경험을 한 친구들은 금기시하는 행동을 해보았다는 데서 순간적으로 뭔가 짜릿함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공중에 떠 있는' 사무실
'공중에 떠 있는' 사무실 ⓒ 박태신
두 번째 사진은 서울 변두리의, 제가 근무하는 사무실이 있는 건물 모습입니다. 뭔가 톡특한 면이 있는 건물입니다. 한 쪽을 기둥에 의지하며 버티고 있는 맨 꼭대기 층이 보이시지요. 지금은 저의 사무실이 이 건물 3층에 있지만 재작년 이맘때만 해도 저 맨 꼭대기 8층에 사무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요. 꼭대기 층 아래는 평지까지 빈 공간입니다. 새가 자유로이 밑으로 지나 다니는 그런 사무실, 한마디로 '하늘에 떠 있는 사무실'입니다.

원래 이 꼭대기 층은 예전에는 레스토랑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스카이라운지 같은 곳이었지요. 이 꼭대기 층 사무실이 저는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전경이 참 좋았고 기묘한 구조도 신기했기 때문입니다. 창 밖으로 구름이 노니는 모습, 산이 보이고 올망졸망 집들이 모여 있는 동네를 볼 수 있었지요. 그래서 행복한 2년을 이곳에서 보냈습니다.

밑에서 보기에도 삼각형 모양의 바닥이 보입니다. 8층에서 현관문을 들어서도 역삼각형의 구조가 훤히 보입니다. 사진에는 반원의 창만 보이지만 맞은편 벽은 전면이 유리창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무실 구조가 이렇고 또 창이 한 벽면을 다 차지하니, 누구는 시선이 분산되어 일하기에 좋은 사무실이 아니라고 했지요. 어쨌든 눈보라가 몰아쳐도 비바람이 몰아쳐도 관망할 수 있는 이만한 사무실을 찾기는 힘들 것입니다.

그런데요. 이 8층에서 일할 때 몇몇 제 동료분들은 사무실 바닥 밑이 평지까지 빈 공간이라는 사실을 모르더군요, 자세하게 설명을 하니 그때야 깜짝 놀라지요.


아파트 방 창문을 통해 본 동네 모습
아파트 방 창문을 통해 본 동네 모습 ⓒ 박태신
세 번째 사진은 제 방의 창에서 바라본 전경입니다. 대부분의 아파트처럼 일률적인 공산품의 창입니다. 아무 장식도 없는 멋없는 창이지만 넓은 하늘을 볼 수 있어 좋습니다.

한적한 오전, 바로 창 맞은 편이 산자락이라 메아리쳐져서 그런지, 평지에서 일하는 자잘한 소리가 9층까지 들리기도 합니다. 평지로 내려온 듯한 착각을 줍니다. 가만 가만 낮잠을 자면서, 뒤척이다 베란다 너머로 떨어지는 아찔한 상상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집에 아무도 없는 날 창 밖으로 바람결에 벌새처럼 부산떠는 나뭇잎을 보는 일, 창 유리를 다독거리다 이내 긁어대는 빗줄기를 보는 일은 작은 행복입니다.

겨울의 제 방 창은 비닐과 문풍지로 뒤덮이는 수난을 당합니다. 창 밖의 한기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이따금 비닐 한쪽을 열고 환기를 시키지만 이내 방안은 신선함이 요원해집니다.

봄이 창을 통해 노크하면 그때부터 기적은 시작됩니다. 제 방도 하얀 햇살을 그대로 들이마시게 됩니다. 산야에 진달래와 개나리가 사이좋게 피어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개구리가 어지러이 현기증 겪으며 나오는 소리, 녹색 잎들이 솟는 소리가 들립니다. 창을 열면 받게 되는 선물입니다.

창은 이렇게 안에 '갇힌' 이들에게 계절의 순환을 알려 주는 계기판입니다. 창은 그래서 세상의 변화를 수용하는 적극적인 존재입니다. 오늘 아침 자신이 있는 곳의 창 앞에서 잠시 변화의 조짐을 찾아보십시오. 창이 소곤소곤 알려 주는 소식들을 가만가만 들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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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번역가이자, 산문 쓰기를 즐기는 자칭 낭만주의자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여행, 책 소개, 전시 평 등의 글을 썼습니다. 『보따니스트』 등 다섯 권의 번역서가 있고, 다음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https://brunch.co.kr/@bruno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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