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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을지로에 자리잡고 있는 국가인권위원회
서울 을지로에 자리잡고 있는 국가인권위원회 ⓒ 박신용철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공약사항인 '사회적차별금지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이 시민사회계의 핫이슈로 급부상하면서 국가인권위원회의 한계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 30일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이하 장추련)'가 장애인차별금지법(이하 장차법) 제정을 위해 진행하고 있는 연속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장차법 제정과 장애차별금지위원회 위상과 역할을 논하는 자리에서 국가인권위원회의 개혁이 필요함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모든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 그 수준을 향상시킴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하고 민주적 기본질서의 확립에 이바지'하기 위해 설립된 국가인권위원회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과 함께 개혁의 필요성이 누누이 강조되어 왔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대선기간 학벌·성·장애인·비정규직 노동자·외국인 이주노동자를 대표적인 5대 차별로 규정하고 이를 시정하기 위해 '사회적 차별금지법 제정 및 국가차별시정위원회 설치'를 공약사항으로 내걸었고 참여정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도 사회적차별금지법(이하 차별금지법) 제정을 10대 국정과제의 하나로 설정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새 정부 출범 당시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국가인권위 주도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추진하고 국가차별시정위원회(이하 차별시정위원회)도 국가인권위 산하에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고했다.

현재 국가인권위원회는 차별금지법제정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본격적인 작업을 벌이고 있는데 국가인권위 개혁논의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차별시정위원회도 국가인권위 산하에 설치하기로 보고한때부터 이미 시작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듯 하다.

"국가인권위, 실질적 구제수단 미비로 유명무실"

'전문성 부재', '실질적 구제조치 부재', '또하나의 공무원조직' 등의 비판을 받아온 국가인권위 개혁의 필요성은 장애인관련 진정사건을 처리한 것을 통해서도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

현재 국가인권위원회는 진정사건 처리, 연구용역사업 발주 등의 일을 처리하고 있으며 그나마 인권을 침해당했다는 결정을 내려도 '시정권고 조치'이외의 별다른 법적 구속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1호 사건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제천시 보건소장 승진임용탈락 사건'에 대해 국가인권위는 4개월이 넘는 조사기간을 거쳐 장애인차별이라 인정하고 시정권고 조치를 취했지만 개선조치가 취해지지 않아 결국 진정인은 자신의 권리확보를 위해 별도의 소송을 제기 중에 있다.

이에 대해 안선영(장추련 법제위 부위원장) 변호사는 "국가인권위원회 제1호로 진정이 접수되어 장애인차별임이 인정되었던 제천시 보건소장 승진임용탈락 사건에서는 신속하고 '융통성 있는 구제절차'를 제공한다는 취지가 무색한 결정을 내렸다"며 "국가인권위원회의 어설픈 결정으로 인해 제천시가 차별 자체를 부인하고 있을 뿐 아니라 감독기관인 충청북도마저도 '장애차별이지만 적법한 행위'라는 얼토당토 안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과연 이것이 국가인권위원회가 말하고 있는 '융통성 있는 구제절차'인가?'"라며 반문했다.

또한 2001년 지하철 5호선 발산역에서 발생한 1급 중증장애인 윤재봉(남. 63)씨 추락참사에 대해 장애인이동권연대가 편의증진법상 편의시설과 안전대책 수립 의무를 소홀히 한 서울시·서울시도시철도공사·서울시지하철공사(이하 피고)를 상대로 제기한 진정사건에서도 피고의 책임을 인정하며 공개사과·유족에 대한 보상·안전대책 마련 등의 권고조치를 내렸지만 '국가인권위의 권고는 단지 권고일 뿐'이라며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급기야 송내역에서 시각장애인이 지하철에 치여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현재는 국가인권위가 진정사건에 대해 시정권고조치를 내려도 법적 강제력을 띄지 않기 때문에 국가기관에서 따르지 않더라도 별다른 법적 제재를 가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국가인권위 조사대상, 자유권 침해, 평등권 침해 제한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 법제위 안선영 변호사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 법제위 안선영 변호사 ⓒ 박신용철
국가인권위의 '실질적 구제조치 부재'라는 문제 이외에도 국가인권위법에 의한 조사대상도 헌법10조∼헌법22조까지의 자유권 침해 및 헌법 11조의 평등권 침해로 한정되어 있는 문제도 갖고 있다.

최근 사법부는 장애인이동권연대가 '지하철을 이용할 때 필요한 휠체어 리프트, 엘리베이터 등 장애인 편의시설을 설치할 의무가 있는데도 이를 게을리 해 자유로운 이동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이유로 서울시·서울시지하철공사·서울시도시철도공사(이하 피고들)를 상대로 제기했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해 패소판결을 내렸다.

아울러 재판부는 △장애인의 이동권리는 헌법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도출되지 않는 권리다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및 관리 요구 권리는 국가가 구현해주어야 할 사회적 기본권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장애인 이동권리는 국가의 현실적인 재정적, 경제적 능력의 범위 내에서 다른 국가과제와의 조화 및 우선 순위결정을 통해 정해질 수밖에 없다고 판결했다.

이에 대해 안선영 변호사는 "이번 손해배상소송에서 사법부가 장애인의 이동권리를 '사회권'의 일부로 보았던 것"이라며 "만일 국가인권위원회에 먼저 진정을 했을 경우, 국가인권위가 조사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각하하지 않을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 의심스러울 따름"이라고 했다.

국가인권위, 전문성 미흡하다

전문가들의 일관된 의견에 의하면 장애인차별은 매우 광범위한 영역에서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장애차별의 특성상 차별여부를 조사하고 판단하는 데에는 보다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감수성이 필요한데 국가기관에 의한 모든 인권침해와 사인에 의한 모든 차별행위를 전부 다루고 있는 현재의 국가인권위로서는 그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

2003년 3월 18일 국가인권위원회가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에게 공개한 '장애인관련 진정사건 처리현황'을 살펴보면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후 2003년 3월 31일까지 장애인관련 진정사건은 총 41건에 불과하며 이중에서 32건이 '조사대상 미해당'으로 각하되었으며 제천시 보건소장 임용사건에 대한 시정권고 1건, 지체1급 여성장애인 구속수사관련 긴급구제 권고조치 1건 등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안선영 변호사는 "국가인권위가 체제전환기에 만들어진 인권기구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장애차별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며 "국가인권위와 중첩적인 역할 때문에 문제가 되었던 남녀차별개선위원회도 그 전문성 때문에 독자적인 지위를 점하고 있으며 성차별과 관련하여 국가인권위에 진정하는 사건이 드물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더라도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장애차별금지위원회가 필요하다고 보여진다"고 했다.

특히 안 변호사는 "장애인차별임이 인정되고도 실질적인 구제조치가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는 한 보다 강력한 권한을 가진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를 요구하는 수밖에 없다"고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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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2002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위원 2002년 3월~12월 인터넷시민의신문 편집위원 겸 객원기자 2003년 1월~9월 장애인인터넷신문 위드뉴스 창립멤버 및 취재기자 2003년 9월~2006년 8월 시민의신문 취재기자 2005년초록정치연대 초대 운영위원회 (간사) 역임. 2004년~ 현재 문화유산연대 비상근 정책팀장 2006년 용산기지 생태공원화 시민연대 정책위원 2006년 반환 미군기지 환경정화 재협상 촉구를 위한 긴급행동 2004년~현재 열린우리당 정청래의원(문화관광위) 정책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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