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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15일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건국 55주년 반핵반김 8.15 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한미동맹 강화를 촉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 지난 4월 19일 서울 시청앞에서 열린 '반핵반김 반핵반김 자유통일 4.19청년대회'에서 집회 참가지들이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사진을 불태우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제 이땅의 보수세력은 침묵을 깨고 발언에 나서야 한다. 조갑제씨가 말한 '반역·독재 정권'에 대한 저항을 위해 일어서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반대이다.

인공기를 소각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모형을 불태우고, 마침내 현정권에 대한 '군인'들의 저항권 - 그러니까 군사쿠데타까지 선동하고 나선 한국의 '네오콘'(neocon, 신보수주의자)을 향해 입을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를 향한 무력사용 불사를 외치는 미국의 네오콘이 전통적 보수주의자들보다 더 보수적이듯이, 한국의 신흥 우익단체들은 기존 보수단체들의 행동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인공기 소각·경찰관 집단구타·가스총 발사 등 일련의 상황에서 나타나듯이, 이들의 행동은 매우 거칠고 북한뿐 아니라 우리 정부까지도 투쟁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결국 친북과 반북, 절대악과 절대선의 논리에 따른 이분법적 세계관이 이들이 보여주고 있는 주장의 전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이들을 가리켜 흔히 '보수단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막상 이들 단체와 인사들은 '대한민국 보수'의 이름을 내걸만한 별다른 내용을 갖고 있지못한 것으로 보인다. 일련의 집회를 이끌고 있는 인사들의 면면을 보아도 그러하고, 이들이 내놓고 있는 구호와 주장을 보면 한국의 보수세력을 대표하는 수준과 내용을 갖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김정일 욕하고 불태우는 것 이외에는 보수세력으로서의 아무런 프로그램도 내용도 발견하기 어렵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청년 보수'를 표방하고 있지만, 막상 이들 단체의 정신적·이념적 지주역할을 하고 있는 인사들 대부분은 과거의 '흘러간 사람'들이다. 시대의 변화에 걸맞는 보수이념의 새로운 가치라든가 사회적 프로그램이라든가 하는 문제들은 이들의 별 관심사가 아니다.

그런데 이같은 단체와 인사들이 마치 한국의 보수세력을 대표하는 신흥세력인 것처럼 메이저 신문들에는 보도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보수이념이 고작 그 정도의 것이라면, 인공기 불태우고 김정일 욕하는 것이 보수주의자들이 가진 전부라면, 한국 보수주의의 앞날은 정말 어두울 수밖에 없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보수적 가치의 의미를 설명해왔던 각계의 진짜 보수주의자들로서는 모멸감을 느낄 법도 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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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보수단체 일각에서도 설왕설래 말들이 많은 것 같다. 자유총연맹같은 전통적인 보수단체의 경우도 이들의 구호가 지나치게 과격하다며, 그같이 극우적인 집회에는 참석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일부 단체들은 집회나 기자회견에 참석하지 않는데도 자신들의 이름이 도용되고 있다는 항의를 하기도 한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않고, '극우'라는 규정에도 전혀 개의치않는 이들의 행동에 대해서는 보수층 내에서도 그리 공감하는 분위기가 아닌 듯하다.

보수에도 품격이 있어야 하고 이념이 있어야 한다. 그저 '무찌르자 공산당' 식의 구호만 가지고 보수세력임을 자처하고 국민의 동의를 구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시대가 변한만큼 보수의 가치와 이념, 그리고 정책도 그에 맞게 재설계되어야 하고, 당연히 그것을 위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보수의 이념이 사회를 유지하는 한쪽 날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국민의 절반가량이 보수층인 사회이다. 보수의 목소리는 존중되어야 하며, 진보의 목소리와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같이 극소수 단체와 인사들의 극단적인 행동이 보수 전체의 '물을 흐리는' 사태가 방치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한국 보수주의의 건전한 발전을 가로막아 그 앞길을 극히 어둡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념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정책적으로도 전혀 다듬어지지 않은 소수의 사람들이 흔들어대고 있는 한국의 보수세계. 그동안 보수주의를 표방하고 자임해왔던 수많은 언론인·교수·정치인들은 다 어디 갔는가. '건강한 보수'를 말해왔던 그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며 이 상황을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한총련 대학생들이 미군기지에 들어가 장갑차에 올라타는 행동을 했을 때, 5·18 묘역에서 대통령의 참석을 저지하고 나섰을 때, '진보'의 선배와 어른들은 일단 그들의 행동을 책망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지금 '보수'의 선배와 어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올림픽 헌장조차 무시하며 스포츠 축전 한복판에서 반북구호를 외쳐도, 광화문 한복판에서 인공기를 불태우고 경찰관을 집단구타해도, 보수의 세계 내부에서는 침묵만이 돌 뿐이다. 너무 무책임하다. 반북단체들의 극단적인 행동을 자제시키기 위해, 아니 '극우'로부터 '진정한 보수'를 지키기 위해 분명한 목소리를 내야할 때가 아닐까.

그동안 보수정당임을 자임하며 보수의 목소리를 대변해 온 한나라당이 눈치보기로 일관하며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도 무책임한 일이다. 자신이 추구하는 보수가 어떤 것인가를 행동으로 보여주지 못하면서 어떻게 책임있는 보수정당을 자처할 수 있겠는가.

반북단체들의 행동 앞에서 이제 우리 사회의 진짜 보수주의자들이 침묵을 깨고 할 말은 해야 할 때이다. 그래서 보수세력 내에서도 자정능력같은 것이 있음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 지난 8월 29일 '반핵반김 자유통일 국민대회 청년본부' 주최로 광화문 열린마당에서 열린 집회에서 인공기 훼손을 제지하려던 김모 순경이 시위대에 의해 집단구타당한 뒤 피를 흘리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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