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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의 지지층을 너무 냉정하게 대한 탓에…"

ⓒ 오마이뉴스 이종호
- 개인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노선과 국정책임자 앞에 가로놓인 현실 사이에 괴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라크전 파병을 결정했을 때 대통령이 일반정치인이라면 아마 거의 틀림없이 전쟁반대 평화주의 운동에 앞장섰을 것입니다. 그것은 불가피한 극단적인 한 예입니다만, 그런 것 말고도 현실 타협적인 정책이 많아져서 비판받는 것입니다. 초심을 지키고 있다고 봅니까?

"대통령의 기본입장과 국정철학은 변함없습니다. 약자에 대한 배려, 불의에 대한 저항 정신은 그대로 가고 있습니다. 변화나 후퇴는 없습니다. 다만, 정책이 현실로 들어갔을 때 부딪치는 어쩔 수 없는 모순, 미처 예상 못했던 변수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은 또 실용주의적 면이 있습니다. 너무 한쪽으로 가면 국정운영이 안된다고 보는 거죠. 예를 들어 '경제 살리기'를 강조하는 것은 누가 대통령 돼도 할 일입니다. 노동운동도 지나친 면이 있고, 외국투자를 생각할 때 우려되는 면이 있습니다.

노동 운동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우리편(참여정부)이 도와주지 않는다'는 섭섭함과 실망감이 있을 겁니다. 전반적으로 정책기조에 변화가 있을 수 있고, 한걸음 후퇴할 수도 있지만 후보시절의 기본정신은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장기적으로 5년을 두고 평가해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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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 "노 대통령 초심 변하지 않았다"


- 노동운동 진영과 만나서 대화하고 설득노력을 많이 했다고 보십니까?
"충분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대통령이 많은 사람을 만나고 회의하는데, 그 과정에서 재계쪽 사람들을 많이 만난 것은 사실입니다. 노동계 대표들과도 자주 만나 균형을 잡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이 정부가 노동계도 그렇지만 본래의 지지기반을 너무 냉정하게 대해서 서운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는 것 아닙니까.
"지지율이 많이 떨어진 이유가 거기에 있겠죠.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던 보수층은 여전히 불신을 걷어내지 않고 있는데, 지지했던 그룹들은 실망감을 표출하니까요. 하지만, 앞으로는 나아지지 않을까요?"

"양적 성장 못지않게 복지문제 아우를 것"

- 최근 '2만불 소득 시대'라는 구호가 정책의 우선 순위에 올라 있는 것 같은데요. 개발독재 시대 성장 지상주의를 연상케 한다는 비판도 나왔습니다만, 그것이 당초 전경련에서 제기된 정책안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경제계가 처음 제안한 정책안에 정부가 가감한 내용이 있으면 밝혀 주십시오.
"전경련에서 안을 내놓은 게 2월에 나왔는데, 내용이 간단하고 선언적 내용이었습니다. 기술혁신 등 몇 가지를 강조했는데, 여기서 특별히 더하고 뺄만한 내용도 아니었습니다. 구호 자체만 가지고 양적 성장을 추구한 과거로 돌아가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 2만불이라고 해서 선진국이라고 볼 수는 없죠. 성장위주의 정책으로 회귀하자는 것이 아니라 과거 50년 동안 쌓여온 폐단을 바로 잡아 나라의 품격을 높이자는 취지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한편으로는 동북아시대, 균형발전이라는 국정과제가 있습니다. 그런 목표들이 일반시민들이 보기에 피부에 와 닿지 않고 추상적이라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좀더 피부에 와 닿는 구호로서 '2만불 시대'가 나온 거죠. 2만불 시대로 가자는 게 국민들 보기에 중립적이고 싫어할 수 없는 구호라고 봅니다. 양적 성장 못지 않게 뒤떨어진 형평, 복지문제도 아우를 것입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 노 대통령이 7월 초 중국을 방문했을 때 후진타오 주석, 우방궈 총리와 회담하는 자리에서 한중일 경제협력체 공동선언에 대해 합의한 바 있습니다. 그 후속 진행사항을 설명해 주시고 장애가 있다면 밝혀 주십시오.
"한중일 3국이 동시에 경제협력체를 추구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우선 양자협력으로 국가별 관계를 강화하면서 가는 게 바람직합니다. 한중일 3국이 협력하면서 견제하는 측면이 있죠. 그래서 우선 한-중, 한-일, 중-일 간에 쌍무적 경제협력을 발전시켜 가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

- 그렇게 한중, 한일, 중일간에 경제협력이 잘 되는 것과 한중일 3국간 공동경제협력이 차이가 있습니까.
"그렇게 두 나라들간에 경제협력이 잘 되면 그것이 한중일 공동경제협력으로 전환할 수 있는 것이지요."

"첨단무기 사려는 국방예산 증액이면 곤란"

- 노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자주국방'을 강조해 왔습니다. 그런데 내년도 국방예산을 그렇게 갑자기 올리기는 무리일 것입니다. 노 대통령도 그런 현실에 대해 언급한 바 있습니다만, 그렇다면 당초 자주국방에 대한 의지가 좀 과장되게 알려진 것 아닙니까? 혹시 미국측의 국방예산 증액 요구 때문에 그렇게 된 것 아닌가 하는 분석도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산 첨단 무기를 대거 구입하기 위한 국방예산 증액이나 자주국방이라면 잘못 된 정책이라는 얘기인데요.
"국방에 대해서는 제가 문외한입니다. 그러나 제가 알기로는 국민의 정부 5년간 국방예산이 많이 감축됐고, 지금에 와서 회복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내용이 뭐냐 하면,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낮은 사병봉급을 조금이라도 올려 간식이라도 먹이고, 비좁은 침상에서 자는 것도 좀 넓혀보기 위해 예산을 늘리자는 것입니다. 우선 장병 복지를 개선하는 것이 시급할 것입니다."

- 지난 달 청와대와 내각의 장차관급 이상이 모인 국정토론회의에서 노 대통령은 언론의 전횡에 대해 강력히 비판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언론 정책이 매우 중요한 국정과제라고 보아야 하지 않습니까? 언론 개혁에 대해서는 정부가 개입할 수 없지만 언론 환경을 개선하고 창달하기 위한 정책은 마련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 전문분야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러나 가까이에서 지켜본 바로는 그동안 대통령의 언론관이 많은 논란을 일으켰지만, 문제의 핵심은 과거 언론과 정부 관계에서 비정상적인 관계를 바로잡자는 겁니다. 가판 보도를 막기 위해 로비를 하는 관행을 없앤 것에 대해 공무원들은 모두 후련해 하고 박수치고 있습니다. 가판 같은 것은 일반 국민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고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 대통령이 탈권위 행보를 보이는데, 민주적 권위를 지켜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습니다. 지난 두 달 사이에 두 번이나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가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거나 잘못 뽑았다고 하는 등 선거부정성 발언을 했습니다. 이어 최근에는 이범관 광주고검장이 대통령을 정면 비판했습니다. 고위직 공무원까지 대통령의 국정개혁 의지를 반박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웃으며) 갈수록 질문이 어려워지네요. 지금 대통령이 과거와 다른 게 많은데, 그중 하나가 권위주의를 포기한 것이죠. 청와대 문화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김대중정부 시절 청와대에 몇번 들어 간 기억이 있는데, 그때와도 정말 다릅니다. 청와대의 무겁고 권위적인 분위기 없어지고 국무회의와 수석회의에서 대화가 아주 활발해졌습니다.

시민단체, 재야, 학계에서도 무엇이든지 자유롭게 비판하고 있죠. 우리 사회가 한걸음씩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권위는 살려나가야 합니다. 그것을 어떻게 살릴지는... 사람들이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존중할 때 권위가 사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야당에서 나오는 발언들은 전적으로 잘못됐습니다. 우선 국민으로서 예의가 아닙니다."

"서울 강남 집값이 전국에 영향... 정부가 메스 들어야"

ⓒ 오마이뉴스 이종호
- 교육정책과 관련해서, 평준화와 대중교육을 강조하다 보면 국가영재 육성은 소홀히 되는 측면이 있지 않습니까? 특히 과학기술 입국을 위해서도 평준화와 함께 특수 영재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안 그래도 그 말을 조금 하고 싶었는데... 5월에 <조선일보>와 인터뷰했는데, 그 내용이 9월5일자에 나왔습니다. 인터뷰에서는 빈부격차 얘기를 많이 했는데, 지나가다 한 질문에 대해서 대답한 것이 제목으로 뽑혀 나왔습니다. 대학도 평준화 해야한다고 말했다 해서 많은 오해를 받고 있습니다.

해명을 겸해서 말하겠습니다. 당시 <조선일보>측의 질문은 고교수준에서도 경쟁을 도입하고 평준화를 해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는데, 저는 '그렇게 되면 입시지옥이 고등학교는 물론, 초중학교까지 내려가 득보다 실이 많아 반대한다. 오히려 대학을 평준화하는 게 옳다고 본다'고 답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대학은 하나의 일류대학 곧 '1극'을 정점으로 한줄로 서 있는 형상입니다. 일류대학에 못 들어갔다고 해서 만족하지 못하고 재수, 삼수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원래 특수목적을 위해 설립된 과학고, 외국어고도 결국 일류대학 가려는 것 아닙니까? 이런 나라가 거의 없을 겁니다. 대학도 '1극 체제'를 극복해야 좋은 대학들이 많이 나올 겁니다.

외국처럼 고등학생들의 입시에 대한 압박을 덜어주고, 대학교 들어가서는 더 열심히 공부하는 체제로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대학의 '평준화'라고 규정한다면 그 용어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관 때문에 오해를 삽니다. 대학의 특성화와 다양화라고 해야 맞겠지요."

- 집값 안정이 서민생활에 중요합니다만, 그러나 강남 지역의 아파트가격까지 정부가 책임져야 하느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박정희 정부 시절에 서울 곳곳에 부자들만 모여사는 '도둑촌'이 있어서 사회문제였지만, 그 때는 특혜 특권층만 돈을 벌 수 있는 환경이어서 지금과는 다릅니다. 이제는 돈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지역은 그대로 맡겨 두고 정부는 국민 일반의 집 걱정을 덜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주택가격 안정 정책을 펴면 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금은 강남이라는 곳에 부유층만이 아니라 중산층들도 많이 살고 있지요. 문제는 강남 집값이 서울의 다른 지역 집 값을 선도하고 전국의 집 값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정부도 강남 집값의 안정에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습니다.

재개발로 새 아파트를 건설하려면 일정 비율로 서민형 아파트를 짓도록 의무화한다든지, 또는 직접 살지 않는 주택을 다량 갖고 있을 경우 부동산보유세를 많이 부과하는 등 급한 불을 끄기 위한 정책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근본대책은 안된다고 봅니다. 그런 정책들은 필요하지만 주택가격 안정에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거죠."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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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정치학과 학사 석사 박사, 하버드대 니만펠로십 수료. 동아일보 논설위원, 오마이뉴스 논설주간,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 한국정치평론학회 회장,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 제17대 국회의원, 방송통신위 상임위원-방송평가위원장, 서울디지털대 총장 등 역임. 현재 서울미디어대학원대 석좌교수. 저서 : '한국정당과 정치지도자론' '군부와 권력' '우리시대의 정치와 언론' 외 1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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