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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총각 담임선생님에게 주는 생일 선물은 서른 두 송이 종이꽃이 활짝 핀 꽃밭이다. 그 꽃들보다 딸아이의 마음이 더 아름답다.
딸아이가 총각 담임선생님에게 주는 생일 선물은 서른 두 송이 종이꽃이 활짝 핀 꽃밭이다. 그 꽃들보다 딸아이의 마음이 더 아름답다. ⓒ 정철용
그런 딸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내가 중학교 1학년 때의 일이 생각났습니다. 딸아이와는 반대로 나의 경우에는, 국민학교(현재의 초등학교) 1, 2학년 때를 빼놓고는 모두 남자 선생님이 담임선생님이었고 중학교에 입학해서도 양호선생님을 빼놓고는 학생도 선생님도 모두 남자 일색이었지요. 당시에는 지금처럼 남녀 공학이 흔치 않았고 또 내가 다니던 학교는 사립학교여서 선생님들조차도 남자들 일색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조례 시간에 담임선생님과 함께 젊은 여자가 한 명 우리 반 교실로 들어오는 게 아니겠어요! 한창 여드름이 돋기 시작하는 학생들의 시선은 일제히 그 여자에게 가서 꽂혔습니다. 그녀는 바로 우리의 교생 선생님이었던 것입니다. 운 좋게도 몇 명 되지 않는 여자 교생 선생님이 우리 반에 배정된 것입니다. 그것도 제일 예쁘게 생긴 여자가.

아이들은 환성을 질렀습니다. 매일 종례 때면 유리창 너머로 우리 반의 교생 선생님을 훔쳐보려고 몰려든 다른 반 아이들로 복도가 시끌벅적했습니다. 남자들만의 세계에 갑자기 나타난 그녀는 곧 우리 반 모두의 애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녀를 만만히 보지는 못했는데, 예쁜 얼굴 못지않은 다부진 강단(剛斷)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종례를 마치고 교무실로 나를 부르더군요. 반장을 맡고 있었던 터라 무슨 심부름을 시키려는가 보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그녀는 내게 선물을 하나 건넸습니다. 그날은 제 생일이었거든요.

“어, 어떻게 아셨어요? 오늘이 제 생일인 줄.”

교생 선생님은 그저 웃으시면서, 힘들겠지만 잘 참아내고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뭐 그런 요지의 말씀을 하시더군요.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되었지만 그 웃음이 몹시 아름다웠다는 것은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내 가정환경조사서를 읽고서 위로의 말을 하신 게 아닌가 생각되는군요. 어릴 적에 부모님이 이혼하고 아버지와 함께 살다가 아버지마저 9살 때에 돌아가시고 나서는 숙부님 집에서 살고 있는 나의 환경을 불우하게 여기셨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저는 전혀 그렇게 느끼지 않고 있던 터라 그녀의 말이 조금 이해가 안 되었던 것이지요.

여하튼 집에 와서 선물을 뜯어보았습니다.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제목의 책이었습니다. 별 희한한 책 제목도 다 있네, 라고 생각하며 책장을 넘겼더니 책갈피에 끼어져 있던 생일 카드가 툭 떨어지더군요. 거기에는 생일 축하한다는 말 대신에 다음과 같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 그러나 몹시 내 마음을 흔드는 말이 씌어져 있었습니다.

“상처를 입고도 영혼이 깊이를 가지며 작은 체험으로 멸망할 수 있는 자를 나는 사랑한다. 그리하여 그는 기꺼이 그 다리를 건너가는 것이다. 또한 나는 자유로운 정신과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자를 사랑한다. 나는 모든 것을 자신의 내면에 가진 이를 사랑한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에는 나는 너무나 어렸습니다. 나는 다만 “나는 사랑한다”라는 문구에만 마음이 쏠렸고 그 문구는 내 가슴 속에서 메아리치면서 자꾸 자꾸 커져만 갔습니다. 그녀에게 분홍빛 연정을 품기 시작한 것은 아마 그때부터였을 겁니다.

그러나 그 연정이 채 제 빛깔을 띠기도 전에 교생 실습은 끝나버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름방학 때 그녀의 집을 찾아가기로 했지요. 미리 전화를 드리고 적어 준 주소를 가지고 그녀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혼자 가는 것이 어쩐지 쑥스러워 반 아이들 몇 명을 불러 함께 찾아갔지요.

시원스럽게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학교에서 보았던 모습과는 또 달라 보였습니다. 우리는 함께 점심을 먹고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러다가 책장 위에 놓여 있는 사진을 문득 보게 되었는데, 사진 속에는 그녀가 어떤 젊은 남자와 사이좋게 서서 웃고 있더군요.

“아, 이 남자는 내 약혼자야. 졸업하면 곧 결혼할거야.”

몹시 즐거운 듯이 우리에게 말하는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내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약혼자는 뭐고, 결혼은 또 뭔가. 그런 소리를 들으려고 여기 온 것이 아닌데……’

그 이후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분홍빛 부푼 마음으로 그녀를 만나러 갔다가 시퍼렇게 멍이 진 가슴으로 돌아온 나는 이후 연상의 여인은 두 번 다시 쳐다보지 않게 되었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사춘기에 막 접어든 여드름쟁이 중학생의 이 풋사랑에 웃음이 절로 나지만 당시에는 아마 제법 가슴앓이를 했을 터입니다. 나중에 고등학생이 되어 선물로 받은 그 책을 읽고 그녀가 써 준 글이 바로 그 책에서 인용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아마도 그녀는 내가 어려운 가정환경에도 굴하지 말고 오히려 그 상처를 내 영혼과 정신을 단련하는 수단으로 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 글을 쓴 것 같습니다.

화사한 연분홍빛 벚꽃 아래 딸아이는 봄으로 피어나고 있다.
화사한 연분홍빛 벚꽃 아래 딸아이는 봄으로 피어나고 있다. ⓒ 정철용
달콤한 오해에서 비롯된 나의 풋사랑은 이렇게 막을 내렸지만 딸아이의 사랑은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아마 언젠가는 딸아이도 지금의 담임선생님은 자신의 ‘님’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겠지요. 그렇더라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직접 선물을 만들어 주는 딸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큰 기쁨입니다.

다만 지금 바라는 것이 하나 있다면, 벌써 서른두 살이 되었으니 늦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딸아이의 담임선생님이 올해 결혼하시는 불상사(?)는 없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그렇게 될 경우 딸아이가 받을 상처가 조금 걱정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렇게 되더라도, 아빠가 이겨냈듯이 딸아이도 그 상처를 잘 이겨내리라 믿습니다. 딸 아이의 사랑이 그 상처를 이겨내고 더 크고 더 넓어지고 더 깊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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