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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아넷(왼쪽 두번째) 기자는 16일 열린 종군기자 조찬간담회에서 풍부한 취재경험을 바탕으로 미국 언론의 국수적인 이라크전 보도태도와 문제점 등에 대해 지적했다.
피터 아넷(왼쪽 두번째) 기자는 16일 열린 종군기자 조찬간담회에서 풍부한 취재경험을 바탕으로 미국 언론의 국수적인 이라크전 보도태도와 문제점 등에 대해 지적했다. ⓒ 한국언론재단 제공
40여년간 전쟁터를 누비며 생생한 현장보도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피터 아넷(66. 현 영국 <데일리미러> 소속) 전 CNN 기자가 한국언론재단의 초청으로 최근 방한, 16일 오전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피터 아넷은 지난 91년 걸프전 당시 불타는 바그다드에서 전쟁상황을 시시각각 보도해 일약 스타 기자로 부상했다. 올해 초 NBC방송 자원봉사자로 이라크전을 취재하던 그는 지난 4월 이라크TV와 인터뷰에서 "미국의 전쟁계획은 실패했다"고 비판한 직후 해고됐다.

60년대 베트남전을 비롯해 엘살바도로·앙골라·레바논·아프가니스탄 등 세계 주요 분쟁지역에 뛰어들어 종군기자로 활약한 그는 66년 라오스 쿠데타 발발 보도로 퓰리처상을 탔고, 97년에는 오사마 빈 라덴 인터뷰를 통해 미국 테러를 경고하기도 했다.

그는 간담회에서 세계언론계의 동향을 비롯해, 미국 언론의 보수화와 특히 지난 이라크전쟁 당시의 보도태도와 문제점 등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지적을 했다. 그는 "이라크사태가 전쟁까지 가게 된 것은 부시정권의 선택이었지만, 미국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던 데도 그 원인이 있다"고 지적하고 "전쟁에서 정부에 비판적인 보도를 하는 게 매우 힘든 일"이라고 털어놨다.

논란이 되고있는 한국군 이라크 추가파병 문제와 관련, 그는 "한국군 파병은 이라크 안정화를 위한 '단합'에 참여한다는 것과 미국에 신임표를 하나 더 준다는 의미가 있다"며 "미국은 석유 뿐 아니라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이라크도 한국에게 중요하다고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얼마전 노무현 대통령이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사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미국에서) 공인이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한 전례는 없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언론도 공인이나 대통령을 명예훼손할 정도의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날 간담회에는 이라크전쟁 당시 종군기자로 활약했던 MBC 이진숙 기자를 비롯해 10여 명의 한국 종군기자들이 참석했으며, 1시간반 가량 진행됐다.

다음은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을 간추린 것이다.

피터 아넷 전 CNN 기자
피터 아넷 전 CNN 기자 ⓒ 한국언론재단
- 이라크전 초기 미국에서도 반대 여론이 없지 않았는데….
"물론 있었다. 그러나 주류언론은 부시 정권에 심각하게 도전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영웅만들기'를 통해 부시 정부의 전쟁 정책에 협조했다. 의심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전쟁을 지지했다. BBC 등 유럽언론과 아랍언론이 방영한 전쟁모습, 비판적인 태도와 매우 달랐다. 이라크 사태가 전쟁까지 가게 된 것은 부시정권의 선택이었지만, 미국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던 데도 그 원인이 있다."

- 미국 주류언론이 왜 그랬다고 보나.
"그들은 9.11 테러를 보면서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또 공포보다 그같은 테러에 화가 많이 났다. 또 언론간 경쟁이 심해지면서 재정 문제, 시청률이나 광고수주 등이 정부에 도전하는데 또다른 두려움을 줬다고 본다. 그래서 이같은 영향을 더 받는 TV가 덜 비판적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폭스TV나 워싱턴타임스 등 우파적인 미디어가 리버럴한 상황이 되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기자들에 대한) 공격에 나서는 게 기자들에게 두려울 수 있다. 주류언론에게는 확보된 시청자를 선동하고, 수천통의 전화와 이메일을 동원할 수 있는 정당같은 조직력이 있다."

- 언론의 정부권력 비판 수준은 어디까지라고 보나.
"언론의 가장 큰 무기는 '사실'이다. 의견으로 공격하기보다 사실에 기반해 부패 등 권력을 공격해야 한다. 나는 베트남전쟁에서 증인 등 사실에 근거해 미국 정부를 비판했다."

- 미국에도 대통령이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을 한 전례가 있는가.
"없다. 공인이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적이 없다. 공인은 어떤 종류의 코멘트도 나오기 마련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언론도 공인이나 대통령을 명예훼손할 정도의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 한국군 이라크 파병 문제를 어떻게 보나.
"미국에게는 동원가능한 국제적인 도움이 매우 중요하다. 또 이라크가 안정돼야 하는데 미국 혼자서 할 수 없다. 한국이 파병하면 이라크 안정화를 위한 '단합'에 참여한다는 것과 미국에 신임표를 하나 더 준다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미국은 석유뿐 아니라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이라크도 한국에게 중요하다고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 이라크내 반미 분위기는?
"이라크내에는 최고 수준의 골깊은 반미정서가 있다. 그러나 다수 이라크 국민들은 독재자로부터의 해방을 기뻐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친미정서는 없다. 미국이 이라크 국내를 안정화시키지 못하고 국제협력을 얻지 못하면 반민정서가 크게 확산될 수도 있다."

- 종군기자의 역할은?
"전쟁취재는 위험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임베드'(미국 종군기자 프로그램)의 경우 실제 상황을 취재할 수 있어 그리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은 전체 스토리가 아니라 일부일 뿐이라는 점이다. 기자는 보는 것만 취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 기자가 전쟁에 따라가면 사진찍는 수준이다. 현대전쟁은 매우 빠르고 폭력적으로 전개된다. 전쟁이 끝나고 분석하는 게 본격적인 취재라고 볼 수 있다."

- 자국 이해가 걸린 전쟁보도에서 얼마나 객관적인 보도를 할 수 있나.
"매우 어렵다. 전쟁시 정부에 도전한다는 게 얼마나 외롭고 힘든지 41년간 취재하면서 느꼈다. 전쟁보도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인기없이 살아가는 것과 같다."

"미국은 지금 대중이 언론을 이끄는 형국"
피터 아넷 기자가 말하는 '현대 미국 언론'

다음은 기자간담회에 앞서 피터 아넷 기자의 '모두 발언'을 간추린 것이다.... 편집자 주


"현대 언론의 취재과정은 매우 빨라지고 있다. 80년대 이후 'TV뉴스 때문에 신문이 죽는다'고 얘기했으나 그렇지 않다. 미국의 경우 신문의 숫자는 다소 줄었으나 아직 신문 매체는 건재하고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TV는 기술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91년 걸프전 때 나는 유일한 TV기자로 CNN방송을 통해 전쟁현장을 중계했다. 10년 전만 해도 위성중계 시설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 이라크전의 경우 40∼60개 뉴스기관이 생방송 중계를 했다. 뉴스만 있으면 언제든 보도가 가능한 시대가 된 것이다. 뉴스 정보량도 많아지고 다양성도 늘어났으며 선택의 기회도 높아졌다.

이제 TV와 신문은 경쟁구도라기보다 뉴스시장 전체를 키우는데 성공한 셈이다. 24시간 뉴스를 접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같은 언론환경 변화는 강대국, 특히 미국 같은 나라가 자국정책을 마케팅하고 국제적인 합의를 어떻게 이끌어내느냐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만 해도 연합군 검열 아래 모든 보도가 통제됐다. 기자들은 군복을 착용했고 연합군에 유리한 기사만 내보냈다. 베트남전도 마찬가지였다. 공산당 정보는 삭제되고 검토됐다. 그러나 베트남전을 계기로 미국이 세계 뉴스를 어떻게 통제하는지가 드러났고 자국 이익과 관련해 미국 미디어도 큰 변화를 겪게 됐다.

미국 남부지역의 시민권 운동과 인종문제, 쿠바 문제 등에 대한 취재경험을 가진 젊은 세대 기자들이 취재에 나서면서 그들은 보는 대로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그들은 '미국 정부가 베트남 전쟁에 책임을 져야 한다, 혈세가 어디에 쓰이는가, 남베트남 정부에 정당하게 하고 있나' 등을 언급했고, 전쟁이 진행되면서 미국 정부와 남베트남 정부에 더 비판적으로 기사를 썼다.

미국정부도 언론에 비판적 태도를 취하기 시작했으며 검열과 협력으로 유지된 정부-언론의 관계가 깨졌다. 국민도 이를 통해 '베트남전이 불필요한 전쟁'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베트남전과 '닉슨 워터게이트' 같은 사건을 보도하면서 미국 언론은 세계 언론에 영향을 줬다. 그 이후 80∼90년대까지 미국 정부와 언론의 관계는 계속 불편했다. 정부는 '언론이 정부에 도전한다'고 생각했고 언론은 '진실을 말할 의무와 잘못된 국가 정책을 고칠 필요가 있다'는 태도를 나타냈다. 언론이 정부에 도전하면서 미국 언론이 성장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으며 언론의 본보기를 보여줬다.

그러나 오늘날은 과거로 돌아간 듯하다. 언론은 표현의 자유보다 국가안보를 더 중요시하고 있다. 정부 정책을 지지하는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 이제 미국언론은 세계 언론의 본보기가 되기보다 유럽·아랍·아시아 등의 지역에서 '엄격한 취재기준이 준수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같은 미국 언론의 변화는 9.11 뉴욕테러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 뉴욕은 미국 주요 언론사가 밀집돼 있는 언론산업의 중심지로 테러 현장에서 몇 블록 떨어지지 않은 곳에 월스트리저널, 뉴욕타임스를 비롯 방송사들이 자리잡고 있다.

미국 언론인들은 바로 자신의 눈 앞에서 테러가 벌어진 현장을 목격하며 취재했고, 공포에 떤 듯하다. 이에 따라 미국 주류언론은 기존의 중립적 시각에서 감성적인 태도로 변했으며, 그들의 취재와 기사에 영향을 미쳤다. 미국 주류언론에 기사들은 '컬러링'(coloring. 색깔입히기)될 수밖에 없었다.

이들 주류언론은 아프간전과 이라크전이 일어나기 전부터, 또 전쟁 자체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막대한 방위비 지출과 예산 부담, 국내 인권유린 등을 비판적으로 다루지 않았으며 미국 정부의 복수정책에 발맞췄다.

9.11 테러 이후 지난 2년 동안 아시아와 유럽, 아랍 등에서 미국 언론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으나 미국 언론은 공유하지 않았다. 미국과 미국 언론이 세계에서 어느 정도 고립되고 있으나 미국민은 '왜 그런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언론이 정부에 잘 도전하지 못했던 것인데 말이다.

전통적으로 민주사회에서 언론의 역할은 여론을 이끌고 정책의 시각을 보여주고 대중의 판단·결정을 도와주는 것인데, 이번 이라크전에서 언론은 미국 정부와 같은 편이 돼 비판적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 언론은 2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부시 정부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게 시작했다. 그것도 언론 스스로가 아닌 미국 대중의 주도 아래 변하기 시작했다.

미국민들은 이라크전에서 사상자가 계속 늘어나는데다 이제 시작에 불과한 870억 달러에 달하는 전쟁비용의 증가,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에 대해 우려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같은 대중의 우려를 미국 언론언론이 다시 받아들이면서 보도태도에 변화가 일었다. 현실적으로, 강하게 이라크전 제반문제에 접근하면서 지난 2년간 보였던 심한 불균형을 벗어나고 있다. 언론이 여론을 이끄는 게 아니라 대중이 언론을 이끄는 형국, 즉 거꾸로 된 셈이다.

앞으로도 미국 언론에 대한 비판은 계속 될 것이나, 국수적 취재·기사에 따른 위상 하락을 회복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 정리=신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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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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