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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16일자 2면에 실린 IPI총회 관련 기사.
국제언론인협회(IPI)가 15일 연례총회에서 '한국에 관한 결의안'을 채택했다. 결의안은 노무현 대통령의 언론에 대한 발언들을 구체적으로 열거하며 비판하는 내용이다.

조선, 동아, 중앙은 즉각 그것을 2면에 크게 보도했다. 노 대통령의 언론 탄압에 대해 IPI가 '규탄'했다고 썼다.

그러나 결의안의 원문을 인터넷(www.freemedia.at)으로 찾아 읽어가면서 다시 한번 'IPI의 홍두깨'가 드러났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상황 진단은 없고 비난만 표출됐다. 그래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콩 놓아라 팥 놓아라고 거드는 꼴이 돼 버린 것이다.

결의안 만장일치 밝혀…한국대표단 전원 찬성했나

그런데 그 총회에 참석한 한국대표단을 보면 각 언론사의 주요 간부들이다. 대한매일의 채수삼 사장, 문화일보의 김정국 사장, 연합통신의 현소환 전사장, 동아일보의 김재호 전무, MBC의 구본홍 보도본부장이다.

여기에 조선일보사에서는 김모 기자가 동행했다. 그들이 한국 언론계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IPI 국내위원회의 대표성을 갖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한국의 언론상황에 대해 무지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조선과 동아는 보도에서 대표단 명단을 쓰지 않았다. 총회에 참석자가 없는 중앙일보가 대표단의 이름을 밝힌 것은 이상한 보도 양태다.

자사의 간부가 참석한 행사를 크게 보도하면서 그 이름을 써 온 지금까지 한국 언론의 보도 관행과는 거꾸로다. 왜 그랬을까. 중앙은 국위 손상이라 할 수 있는 IPI의 한국 결의안에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IPI는 문제의 문서에 "독립적인 주요 신문사들을 위협하고 공격하려는 노 대통령의 계속적인 시도에 대한 이 결의안은 회원의 '만장일치'로 통과됐다(the IPI membership unanimously passed a resolution concerning…)"고 명기했다. 따라서 한국측 참석자들은 모두 이 결의안에 담긴 우리의 언론상황에 대한 인식과 비난에 동의했다는 얘기다.

우리는 이번 IPI의 한국 결의안에 대해 1차적으로 책임이 있는 우리 언론계의 참석자들에게 재확인하고자 공개 질의한다.

@ADTOP@
탈세비호 언론자유라면 사교의 종교자유와 다른 게 무언가

첫째, 결의안이 중요하게 언급한 2001년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해 언론탄압이었다는 주장에 동의하는가.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 이후 상속세와 증여세의 탈세 탈루로 그 사주가 형사처벌까지 받은 보수신문들이 민주당 정권에 대한 적대감으로 통일전선을 이룬 것은 다 아는 일이다.

그런 신문사들일수록 이번 IPI 결의안을 크게 보도했다. 언론사의 사주가 탈세한 것 때문에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언론 자유는 안된다는 국민적 인식이 정립된 것이 한국의 상황이다.

언론 자유를 방패막이로 특권 특혜와 함께 반사회적 일탈행위나 일삼는다면 종교 자유의 뒤켠에서 비행을 저지르는 사교집단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신문시장의 소수독과점 방지 정부 책임 아닌가

둘째, 공정거래위원회가 신문시장의 왜곡구조를 바로잡기 위해 조사하는 것도 세무조사와 같은 맥락의 언론탄압으로 보는가. 보수적인 거대신문사들의 시장점유율에 대해서는 전문가, 연구단체, 광고주협의회의 조사결과가 있다.

대체로 조중동 3대 신문사가 중앙일간지 시장의 74-75%를 독과점하고 있다는 것이 공통된 조사내용이다. 그러나 당해 신문사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더 나아가 신문 한 부 6개월 이상 정기구독을 강권하면서 10만원 안팎의 중국산 자전거, 선풍기, 진공청소기 등 온갖 경품으로 끼워팔기식 불공정 판촉행위를 계속하고 있다. 보기 싫다는 신문을 집집마다 무단투입하기도 한다.

이러고도 현재의 신문시장 구조가 독자들의 자연스런 선택에 의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는가. 자유경쟁 시장체제의 밑바탕이 돼야 할 소수독과점 방지에 정부 책임이 없는가.

IPI본부, 한국언론상황 실제 조사해 본 적 있나

셋째, IPI가 최근 수년간 발표해 온 한국언론에 관한 각종 문서가 그럴만한 실제 조사와 우리 언론계의 의견수렴에 바탕한 것인가.

IPI가 한국에 관해 홍두깨 같은 문서를 발표한 것은 이번뿐이 아니다. 최근 수년간 이 단체가 내놓은 결의안이나 서한을 보면 객관적인 조사에 바탕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언론개혁 시민운동 단체들이 매번 반발하는 이유다.

작년에는 5월 11일 조선일보의 김대중 당시 주필이 IPI 총회에 참석, "정부 압력에 비하면 언론사주나 광고주의 압력은 거의 미미하다"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기자들을 상대로 한 많은 여론조사 결과에 반대되는 발언으로 전국언론노조가 반박 성명을 내는 등 국내 언론계의 반발을 크게 샀다.

또 2000년 2월 서울지검 검사들이 조선일보사에 대해 명예훼손 소송을 낸 데 대해 서울지방법원이 1억 8천만원의 배상판결을 내리자 IPI가 김대중 대통령 앞으로 항의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이는 한국의 대통령이 법원을 장악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 아닌가. 대표단은 그런 기본 인식에 문제가 없다고 보는가.

이 단체의 중앙본부는 그곳을 취재해 본 한국의 미디어전문 기자들에 따르면 이름에 비해 너무도 허술하다. 그런 조직 인력으로 어떻게 세계 각국의 언론상황을 파악, 조사하고 평가서를 내는지 감탄스러울 정도라는 것이다.

이 단체는 각 회원국 지부의 요청과 보고서를 거의 그대로 반영해 왔다. 그런 운영이라면 객관적인 시시비비를 가리고 평가함으로써 공공성을 생명으로 삼는 언론단체가 아니라 회원국 언론사의 자사 이기주의를 대변해 주는 이익단체에 불과하다는 것이 시민단체들의 지적이다.

IPI가 그렇게 된 것은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IPI 한국위원회의 위원장은 조선일보사의 방상훈 사장이고, 그 사무국장 역시 조선일보 사원이다.

노 대통령이 야당 정치인 시절부터 가장 첨예하게 대립해 온 조선일보사가 장악하고 있는 IPI 한국위원회가 어떤 보고서를 보냈을 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번 IPI의 한국 결의안을 보수신문사들의 견해가 둔갑해 나온 것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도 그래서다.

군사독재하 언론에 말없던 IPI, 지금 결의안 타당한가

넷째, 군사독재 아래서 신음하던 한국 언론에 대해서는 말 한 마디 없던 IPI가 여러 차례의 시민항쟁 덕으로 민주화가 진전된 지금 이번과 같은 한국 결의안을 낸 것이 타당한가.

당초 IPI는 1950년대 자유당 정권 아래서 한국에 언론자유가 없다는 이유로 회원가입 신청을 거부했다. 그러다가 1960년 말 가입을 승인했다. 그것은 4.19혁명의 덕택으로 언론 자유를 얻은 결과였다.

그러나 5.16군사쿠데타 이후 어둡고 긴 터널 속에 갇혀 있던 한국의 언론상황에 대해 IPI가 이번과 같은 한국 결의안 같은 것을 한 번이나 낸 적이 있는가. 그 시기의 IPI 한국위원회는 동양통신사 설립자로 공화당 정권의 실력자였던 김성곤씨와 동아일보 사주 김상만씨가 주도했다.

국가위상 훼손지경에 한국대표단 토론내용 밝히라

다섯째, 그런 국제 언론단체에서 한국의 언론과 국가 위상을 훼손할 소지가 큰 결의안을 처리하는 과정에 합리적인 토론이 과연 있었는가. 있었다면 그 때 한국측 참석자들이 정말 '만장일치' 결의에 동의해 주었는가.

결의안의 논리구조를 분석해 보면 현재 우리 사회에 언론문제를 두고 정부, 개혁성향 언론, 보수 언론, 학계와 시민운동단체가 논쟁 중인 상황에서 보수 언론의 입장만을 대변하고 있다.

언필칭 언론의 자유를 내세우는 IPI는 한국의 언론상황을 제대로 파악해야 하며 대표단은 그렇게 되도록 하는 것이 본분 아닌가. 그 단체의 회원인 언론사 사주 개인의 이익과 국민의 언론 자유가 대립적인 현실, 그리고 그에 관한 시민사회의 토론이 진행중임을 알고 나서 말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상황 진단의 기회도 못 가진 국제언론 단체가 반사회적 범법행위인 탈세를 언론 자유로 호도하는 여론조작에 이용되는 것이 가슴아플 따름이다.

IPI 결의안에 대한 보수신문들의 보도는 마치 방화범이 더 큰 소리로 '불이야!'를 소리치고 다니는 것과 같다. 불을 질러놓고 갑자기 방화사건이 터졌다는 듯 떠들어대는 쇼를 연출하고 있는 것과 다름아니다.

IPI 한국대표단의 공개 답변과 설명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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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정치학과 학사 석사 박사, 하버드대 니만펠로십 수료. 동아일보 논설위원, 오마이뉴스 논설주간,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 한국정치평론학회 회장,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 제17대 국회의원, 방송통신위 상임위원-방송평가위원장, 서울디지털대 총장 등 역임. 현재 서울미디어대학원대 석좌교수. 저서 : '한국정당과 정치지도자론' '군부와 권력' '우리시대의 정치와 언론' 외 1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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