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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민주인사 명예회복과 귀국보장을 위한 범국민추진위원회'(범추위 공동대표 최병모·천정배 의원)에서 실시하는 한국방문 행사에 참여 거부를 선언한 이영준씨를 9월 17일 베를린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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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민주인사 입국 ' 반쪽행사 ' 우려


▲ 이영준씨
ⓒ 강구섭
<오마이뉴스> 제보란을 통해 '해외민주인사 명예회복과 귀국보장을 거절한다'라는 의견을 발표했던 이영준씨는 65년 독일 생활을 시작해 74년 유신이 시작된 이후 줄곧 반독재 민주화 운동, 해외통일운동을 펼쳐왔다.

현재는 한국민주민족통일해외연합(한민련), 재독한인노동자연맹 등의 단체에서 남북한 해외교류사업을 펼치고 있으며 89년 전대협 대표 자격으로 평양축전을 방문한 임수경씨와 평양에 동행하기도 했다.

행사 불참 선언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밝힌 바 있는 이영준씨는 한국이 진정한 민주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남북통일이 급선무임을 강조하며 이를 위해 무엇보다 민족자주, 민족공조가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또 통일운동의 심각한 병폐로 색깔론을 둘러싼 이념 논쟁을 제시하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역사에 대한 새로운 규명작업과 더불어 새로운 사상에 근거한 통일운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이다.

- 독일에는 언제 왔고 어떤 계기로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나.
"독일에는 65년 3월 25일에 왔다. 74년 유신헌법이 나오면서 독일에서 민주사회건설협의회가 결성되었다. 그 때 결성과정에 참여하면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 간첩단 사건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달라.
"나는 간첩단 사건에는 관계되지 않았다. 89년에 전대협 대표 임수경씨를 데리고 평양에 다녀온 후 공작원이라고 한국 신문에 이름이 나간 적이 있다. 그 후에도 전대협, 한총련 학생들 데리고 평양에 몇 번 갔다. 통일을 하려면 북을 알아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서 그랬다.

당시까지는 주로 유명 인사 중심으로 통일운동을 했다. 이제는 민중들이, 청년들이 이 일에 구체적인 시각을 가져야 겠다는 생각에서 그런 일을 하게 되었다. 통일을 하려는 사람들이 북에 가는 것을 무서워해서야 되겠나. 우리 세대가 못 이룬 것을 (다음 세대가) 이룰 수 있게 힘이 되고 도와야 하는 마음에서 계속 그 일을 했다."

-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했다고 했는데 좀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
"민주사회건설협의회 뿐 아니라 이후 재독한인노동자연맹활동을 많이 했다. 당시 광부, 간호사로 온 사람들이 동포사회 구성원 대부분이었다. 그 사람들이 일을 하다가 문제가 생기고 하는데 문제를 대사관에 이야기하면 노무관이라는 직종에 있는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오히려 독일 기업주 편을 들어 노동자들이 불익을 당하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노동자가 단결해서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강구해보자는 생각에 재독한인노동자연맹을 결성했다.

그런데 민주사회건설협의회에 있는 사람들 중 재독한인노동자연맹 사람들과 같이 일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래서 재독한인노동자연맹 사람들은 민주사회건설협의회가 발전하는데 자신들이 걸림돌이 될 수 없다는 생각에 민주사회건설협의회에서 나갔다. 민주사회건설협의회는 주로 학생으로 구성이 되어 있었으며 회장이 윤이상 선생이었다. 그 후로 재독한인노동자연맹활동을 많이 했다."

- 언제부터 한국 입국이 불허되었는가.
"들어가 보려 해보지도 않았으니까 언제부터인지는 모른다. 내가 북에도 다녀오고 했으니 당연한 일이 아닌가. 한번은 한국 대사관의 정보담당 책임자가 "이 선생 한번 (한국에) 들어가시라"고 권유한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고 해서 가지 않았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그 사람하고 관계도 어려워지고. 그렇게 한번 거부한 적이 있다."

- 진정한 명예회복은 간첩단 사건에 대한 국가의 사죄와 보상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사죄와 보상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달라.
"우리가 활동한 것은 이름 내려고 한 것도 아니고(글에도 쓴 바와 같이) 고향에 가고 싶어서 그렇게 한 것도 아니다. 다만 당시 우리사회가 비민주적이고 노동자들이 당하는 상황을 보면서 의분을 참지 못해 일을 시작한 것 뿐이다. 상황이 바르게 잡혀졌으면 지금에 와서 명예회복, 귀국금지 같은 것이 있을 리가 있는가. 그냥 우리가 가고 싶으면 가는 것이다. 명예회복이 누가 누구에게 하는 건가.

당시 정말 억울하게 당한 사람들, 우리와 똑같이 민중의 생존권을 부르짖던 사람들이 박정희 밑에서 얼마나 많이 죽었는가. 특히 인혁당 관련 사람들, 그 사람들의 자식들 고생도 많이 하고 아주 힘들었는데 우리는 굶어 죽어가는 것도 아니고 그들의 2세처럼 불이익을 당하는 것도 아닌데 그들의 명예가 올바르게 평가되지 않는 세상에서 어떻게 우리만 살아있다고 들어갈 수 있나. 나 자신이 그런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같이 일했던 사람들은 다 같은 생각이다."

ⓒ 강구섭
- 그러면 명예회복과 보상의 구체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명예회복과 보상은 우리 사회가 민주사회가 되는 것이다."

- 언제 한국에 들어갈 생각인가.
"길게 잡아야지 조급하면 판잣집밖에 못 짓는다. 독일의 집들 100년, 200년 간다. 우리는 조급하게 해서 판잣집밖에 못 짓는다. 길게 봐야 한다. 진정한 의미의 민주사회가 되면 명예회복도 다 필요 없는 개념이다. 민주화된 자기 나라에 자기가 가는 게 무슨 문제인가."

- 한국 내 현실을 고려해 일단 들어와서 정당성을 주장하고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해 달라는 말에도 일리가 있어 보이는데.
"상당히 일리 있다. 그들도 나름대로 정당성이 있다. 그것을 뭐라고 하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전된 세상에서 꼭 들어가서 한마디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해외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인터넷 사이트가 얼마나 많나. 그런 곳에 글을 쓰는 것이 오히려 더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애쓰는 사람들의 노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거기 가서도 사실 발표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래서 별 의미가 없다.

수구세력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수구, 보수, 우익은 우리나라에 없다고 본다. 이것은 굴절된 개념이다. 그들은 역사로 따지고 보면 사대주의고 외세의 앞잡이들이다. 그들을 우익이라고 하니까 국민들이 헷갈리고 민족을 위해 싸운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독일의 우익, 일본의 우익을 보라. 전부 외국인들 나가라고 한다. 우익들이 자기 이익을 우선으로 찾는데 우리를 보라. 우리 이익 따지는 사람들이 없다. 우익, 보수라고 하니까 민족적인 무엇이 있나보다하고 생각한다. 그런 언론 자체가 못마땅하다. 여하튼 이런 의미에서 이번 행사는 그리 달갑지 않다."

- 한국 땅을 밟아 본 지는 몇 년이 되었나.
"65년 이후 한번도 가지 못했다. 친지들 불이익 당할까봐…(그 당시는 가족, 친구들까지 해를 많이 당했다).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 일부러 연락을 하지 않았다. 같이 평양에 다녀온 학생들에게도 전화를 일부러 한번도 안 했다. 내가 전화하면 혹시 또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아서다.

- 이렇게 입국할 수 있는 기회는 처음이 아닌가 싶은데.
"이런 기회는 처음이다. 금년에 노 대통령 되면서 해외운동권에 있는 동지들도 노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래서 해외동지들이 주체가 되어 방문단 만들어 들어가자는 논의가 있었다. (한국에) 들어가 민주동지들도 만나고 토론도 하고 강연도 하고 돌아오자고 계획을 꾸몄다. 그게 2월이다. 이게 될까라는 반응들이 있었는데 (국내에 있는 사람에게) 국내에 들어가서 활동할 수 있게 조직을 해달라고 이야기 했더니 국내에서 이야기를 듣고 추진위가 결성이 된 것 같다. 이러면서 명예회복이니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 이번에 추천한 64명 가운데 27명 가량이 독일에서 활동한 분들로 알려져 있다. 그들 가운데 입국을 결정한 사람들을 만나봤는가. 들어가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에서 그렇게 결정한 것으로 보는가.
"그 분들과 연락을 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그 분들도 다 운동하던 분들인데 특별한 의미가 있겠나. 고향에 가보고 싶은 것일 수도 있고 그렇지. 가는 분들 잘 다녀오고 국내에서 뜻을 굽히지 말고 눈물에 쌓여 있다 오지 말고 할 이야기도 하고 동지도 만나고 그렇게 갔다왔으면 좋겠다."

- 입국하는 사람들에 대해 아는 바가 있다면.
"독일에서는 프랑크푸르트에서 3명, 뮌헨에서 1명 이렇게 4명이 들어가는 것으로 들었다. 재독한인노동자연맹의 사람들은 나와 같은 이유로 들어가지 않는 사람들이 많고 다른 사람들은 왜 안 들어 가는지는 모르겠다. 연락을 해 보지도 않았고…."

- 이번 사업이 국내 운동권이 통일운동을 향해 새롭게 자리매김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했는데 좀더 부연하자면.
"그냥 내 구상이다. 한국 정치판에서 새로운 잣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색깔론만 나오면 풍비박산이 된다. 뭉쳐 있던 사람도 그 이야기가 나오면 '나 그 사람과 상관 없어‘하고 나온다. 어제까지 동지였던 사람이 색깔론 나오면 ‘나 몰라라’ 하는 식이다.

색깔론 들고 나오는 사람이 누군가. 색깔론의 본질이 뭐냐를 파헤쳐야 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새로운 잣대가 필요하다. 색깔론 들고 나오는 사람들을 정치사상적으로 풀어보면 외세앞잡이다. 그들은 색깔론을 붙들지 않으면 설 자리가 없는 사람이다. (그들은) 대한민국이 진정한 주권국이 되면 살 길이 없다. 그러니까 민족공조와는 상관없이 죽기 살기로 색깔론을 들고 나오는 거다.

이렇게 민족자주, 민족공조, 외세앞잡이에 대한 잣대가 필요하다. 국민은 살기 바빠서 이런 것 생각하기 힘들다. 이것이 빨리 정리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갑오농민사상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진보운동이 생겨야 한다. 색깔론만 나오면 빨갱이 얘기가 나오는데 갑오경장에서 나온 사상은 칼 맑스가 자본론 이야기하기 이전이다. 그것에 기초한 운동에는 색깔론을 들고 나올 수 없다. 우리 민족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에 색깔론을 들고 나오는 자들은 바로 외세앞잡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갑오농민전쟁의 정치사상이 우리의 민족통일을 불러올 수 있는 사상이고 민족을 해방시키는 사상이라고 주장한다. 바로 그러한 조직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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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독일에서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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