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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있어 풍요로운 것들
함께 있어 풍요로운 것들 ⓒ 김강임
늘 가까이 있어 좋은 것들. 함께 무리를 지어 풍요로운 것들. 서로 얼굴을 맞대어 아름다운 것들. 식물원에서 보는 세상은 풍요 속에서도 허덕이는 '나'를 살찌게 한다.

계절은 무르익어 가는데도 마음은 텅 비어 있는 느낌이다. 이라크 파병 문제, 매미의 상처, 밑바닥인 금리 인하. 신문을 펼쳐들었으나 어디에도 천고마비의 '살찐 말'의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그러나 텅 빈 가슴에 부족한 용량을 채워 올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잠시 그곳으로 떠나 보자.

여미지 식물원 입구
여미지 식물원 입구 ⓒ 김강임
3천 7백여평 원형 온실. 2천여종의 희귀 식물. 1천7백여종의 화초류와 나무가 숨쉬고 있는 '여미지 제주 관광 식물원'. 동양 최대의 온실 여미지 식물원에서 향기 짙은 남국의 정취를 마셔본다. 이곳에서는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와 꽃들을 모두 저장해 오기에는 내가 보유하고 있는 용량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나 각기 고향이 다른데도 한 곳으로 이사 온, 모태가 다른 식물들을 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나는 일이었다.

여미지 제주 관광 식물원 온실 속에서 나누는 식물과의 대화는 가슴으로 나눌 수 있어 더욱 뜨겁다. 느슨한 걸음으로 자판기의 커피 한 잔 뽑아 손에 들고, 그 맛을 입가에 녹이면서 즐기는 여행은 사계절을 누려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꽃향기 그윽한 화접원에서
꽃향기 그윽한 화접원에서 ⓒ 김강임
무거운 발길을 붙잡은 곳은 꽃과 나비가 노니는 정원 '화접원'이다. '화접원'이란 이름 그대로 사시사철 아름다운 꽃이 만발하고 나비가 날아다니는 향기 그윽한 곳이다. 이곳은 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양난류를 전시한 양란 코너와 꽃의 여왕이라 불리는 '구근베고니아'를 전시한 베고니아 가든. 꽃으로 뒤덮인 정자와 각종 아열대, 열대 꽃과 나무, 아름다운 초화류를 전시한 꽃동산같았다.

바깥 세상은 뒤숭숭한데도 화접원의 풍경은 그저 포근하다. 발길 닿는 곳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들이 서로 얼굴을 내민다. 세상에서 예쁜 것 한 번 구경하지 못한 사람처럼 "참 예쁘다, 참 예뻐!"라는 감탄사만 연발한다.

꽃잎 하나에 서린 그 향기까지를 담아오기엔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 향기를 담아 누구에게 선물 할 것인가? 예쁜 것은 예쁜 것끼리만 모여 살아야지. 그 향기를 살짝 훔쳐와 전해 줄 아름다운 사람이 없이니 말이다.

징검다리 같아요
징검다리 같아요 ⓒ 김강임
다음은 습지 지대로 떠나보기로 하자. 수생 식물원은 열대, 아열대 지방의 수생 식물을 중심으로 조성한 물의 정원으로 아마존강 원산의 잎의 크기 2m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큰 수련인 빅토리아 수련과 물 속에서 아름다운 색상의 꽃과 향기를 뿜어내는 열대 지방의 열대 수련, 습지에 사는 식물을 전시하고 있다. 연못 밑의 물보라가 떨어지는 디스크 폭포와 술병처럼 생긴 야자나무 주병 야자의 더욱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이곳에서는 서로 다른 어미의 자궁 속에서 태어난 식물들이 부둥켜 안고 살아가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세상에는 혼자 피어 있어 청초하고 아름다운 식물이 있는가 하면, 수생 식물처럼 함께 어우러져 더욱 풍요로움을 주는 것들이 있다. 모두가 같은 얼굴인데도 그 모습이 다른, 마치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처럼 말이다.

얼굴 맞대어서  더욱 아름다운 것
얼굴 맞대어서 더욱 아름다운 것 ⓒ 김강임
사람들에게도 저마다 성격이 다르듯이 건조한 사막 기후에 적응할 수 있도록 식물의 잎이나 줄기, 뿌리 등이 크고, 육질이 두터운 구조로 되어 있는 다육 식물원.

다육 식물은 크게 선인장과 선인장이 아닌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이곳에서 선인장이 아닌 것을 다육 식물이라 부른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다육 식물원 내에는 각종 알로에가 전시되어 있는 알로에 동산, 각종 용설란류가 있는 용설란, 흰개미 집을 형상화시켜 조성하여 만든 흰개미 동굴, 선인장의 왕이라 할 수 있는 금호 등 각종 선인장을 비롯한 300여종의 다육 식물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이제 막 허물을 벗고 또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는 식물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사람도 저렇게 다른 모습으로 허물을 벗을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식물들처럼 악한 모습의 허물을 벗어 던지고 선행의 길을 가는 것. 개과천선할 수 있는 작업의 구도가 있다면 어떨까?

대롱대롱 매달린 바나나
대롱대롱 매달린 바나나 ⓒ 김강임
정글의 늪 지대와 울창한 숲 속이 펼쳐진 열대 생태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공중에 매달려 살고 있는 박쥐란, 공중 습도를 먹고사는 수염 틸란디시아, 각종 고무나무류, 벌레를 잡아먹는 식충 식물이 서로가 경쟁하듯 살고 있다. 공생하는 모습이 보기만 해도 좋아 보인다.

온실의 맨 오른쪽은 키가 크고 잎이 넓은 나무들이 즐비한 열대 과수원인데 바나나와 망고, 파파야 등40여종의 진귀한 열대 과일나무들이 조화롭게 들어서 있다. 작고 요망진 바나나 한 송이가 눈에 띤다. 성큼 따서 입에 넣기에는 아직 설익었다.

여미지 열차를 타고 떠나봐요
여미지 열차를 타고 떠나봐요 ⓒ 김강임
온실 중앙에 있는 전망대에서 바라보니 중문 관광 단지 일대가 한눈에 보인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우리 나라 최남단의 섬인 마라도와 가파도, 형제 섬이 보인다고 하나 희푸연 안개가 시야를 가려 한라산 중턱만이 간신히 그 모습이 드러나 보였다.

한국정원의 정취에 빠져보고
한국정원의 정취에 빠져보고 ⓒ 김강임
제주도에서는 기차가 없으니 온 김에 여미지 열차라도 한번 타 봐야지. 여미지 열차를 타고 떠나는 한국, 일본, 이탈리아, 프랑스 풍의 '민속정원' 여행은 마치 외국에 온 듯한 기분이든다. 그러나 이 열차를 타고 바다 건너 고향 마을까지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항상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에게만 느껴지는 서글픔이다.

먼저 한국 정원에 들어서니 먼저 온 신혼부부 한 쌍이 추억을 나눈다. 그들의 달콤한 사랑을 깨트릴까 봐 살금살금 걸어서 이태리 정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태리 정원 분수 속으로 ...
이태리 정원 분수 속으로 ... ⓒ 김강임
시원스레 품어대는 분수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든다. 아니 매스컴을 통해 바라봤던 답답함과 찌꺼기들을 이곳에서 모두 날려보냈으면……. 2천 여종의 희귀 식물과 제주도 자생 수목 등 1천 7백여 종의 화초류들과 2시간 동안 데이트를 즐기니 갑자기 포만감이 쌓인다.

프랑스 정원에서  느릿하게 걸어보면 남국의 정취가 흠뻑
프랑스 정원에서 느릿하게 걸어보면 남국의 정취가 흠뻑 ⓒ 김강임
다시 온실 입구에 들어가 매점에서 아이스크림 하나를 입에 물고 그 부드러운 느낌을 입가에 적신다. 간사하게도 세상이 조금은 부드러워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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