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위성(人工衛星. artificial satellite)의 사전적 정의는 '지구에서 쏘아 올려 지구의 둘레를 궤도비행(軌道飛行)하는 인공적인 달'이다. 지구를 중심으로 도는 이 '인공 달'의 궤도는 보통 타원이다.
사흘째 교신두절 상태였던 '과학기술위성 1호'가 발사된 지 56시간만인 어젯밤(9월 30일)에 지상국과의 교신에 성공했다. 과학기술위성 1호는 우리 기술진의 주도로 개발된 국내 첫 천문·우주과학용 위성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
우리별 1·2·3호에 이어 첫 우주 과학 실험용 위성인 '과학기술위성 1호'는 한국 시각으로 지난 27일 오후 3시11분, 북극해 근방의 플레세츠크 우주센터에서 러시아 로켓에 실려 발사되었다. 발사된 지 35분만인 오후 3시46분 고도 690km에서 성공적으로 분리돼 궤도에 정상 진입했지만, 어제 밤까지 10차례에 걸친 교신에 모두 실패해 '우주 미아'가 된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기도 했다.
97년 여야 정권교체로 공직 사회 '인공위성' 양산
공무원 사회에서는 외부에 파견되었다가 끈이 떨어진 공무원들을 빗대어 '인공위성'이라고 부른다. 지난 97년 헌정사상 처음으로 선거에 의한 여야 정권교체가 이뤄지면서 졸지에 미아(迷兒)가 된 '인공위성'들이 화제가 되었다.
청와대 파견 근무자가 많은 부처는 말할 것도 없고, 특히 OECD 같은 국제기구에 파견 근무자가 많은 재정경제부 같은 힘있는 경제부처에서 '인공위성'이 양산되었다. 기존의 인사관행에 따르면 이들은 대개 정권 교체 이후에 1계급씩 승진해 부처로 복귀했다.
그러나 '한번 여당이면 40여년간 여당'이고 '한번 야당이면 만년 야당'일 것 같던 한국적 정치지형을 뒤집는 '수평적 정권교체'로 말미암아 힘있는 부처에서 외부로 파견 나간 고급 공무원일수록 구여권과의 밀착 의혹과 정치 개입 혐의 때문에 인공위성 신세가 된 경우가 많았다.
우선 정권이 교체되면서 인사에 영향을 주던 구여권 후견인들이 야당 정치인이 되는 바람에 힘을 쓸 수 있는 끈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새로 바뀐 장관이 이들을 챙겨줄 리도 만무했다. 여야 정권교체로 끈 떨어진 갓 신세가 된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정권 교체와 겹친 IMF 금융위기 상황 때문이다. 온 국민더러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설득하면서 공무원 정원부터 10%를 감축하는 바람에 각 부처에서 외부로 파견나간 공무원들의 자리(보직)가 먼저 감축되었다. 그 바람에 '때아닌 인공위성'이 양산된 것이다.
대통령 탈당으로 '미아' 된 민주당 파견 전문위원들
그런데 정권교체기에 생겨나던 인공위성이 이번에는 난데없이 정권 초기에 생겨나는 '이변'이 생겼다. 29일 노무현 대통령의 전격적인 '민주당 탈당 선언'으로 민주당 전문위원으로 파견 나간 부처 공무원들이 졸지에 '미아' 신세가 된 것이다.
그동안 정부-여당은 이른바 당정협의회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정부 부처의 1∼2급 공무원들을 적게는 10명 내외에서 많게는 20명까지 파견 받아 당의 전문위원으로 보직해왔다. 이는 책임정당정치를 표방해온 한국 정치의 수십년 된 관행이다.
역대 정부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었지만, 부처 파견 공무원들은 부처의 정원(T.O) 문제 때문에 일단 사표를 내고 여당에 파견을 나가되, 그 대신 일정 기한 근무한 후 부처에 복귀할 때는 1계급 승진시켜 보직을 받은 것이 오래된 관행이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취임 7개월만에 당적을 이탈하는 바람에 이들은 미처 손을 쓸(?) 새도 없이 졸지에 '미아' 신세가 돼 버린 것이다. 왜냐하면 민주당에서는 '우리 당은 이제 야당이기 때문에 부처로 돌아가라'고 하고 있고, 각 부처에서는 '사정은 딱하지만 지금 당장은 자리가 없다'며 복귀에 난색을 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집(민주당)에서는 '내놓은 아들이 조강지처를 버리고 집을 나가 딴살림을 차렸기 때문에 며느리도 나가라'는 식이고, 친정(각 부처) 또한 '시집가서 소박맞은 딸'로 간주하는 형국이다.
'창조적 파괴' 불똥 맨먼저 뒤집어쓴 공무원들
노무현 대통령은 29일 전격적으로 당적 이탈을 선언한 이후 청와대에서 제8회 아시아-유럽 프레스 포럼에 참가한 세계 언론인들을 면담하는 자리에서 "내년 4월(총선)까지 진행되는 정치의 역동적 변화는 창조적 파괴, 창조적 와해"라고 말했다.
인공위성의 궤도는 지구의 중심을 초점으로 하는 타원형이다. 과학자들은 이를 J. 케플러의 행성의 운동에 관한 3법칙으로 설명한다. 이 타원궤도에서 지구에 가장 접근하는 위치를 근지점(近地點), 가장 멀어지는 위치를 원지점(遠地點)이라고 한다. 위성이 궤도를 일주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주기라고 한다. 공직 사회의 인공위성에 이 케플러의 법칙을 적용하면 '근지점'은 정권교체기에 나타나며 그 주기는 5년인 셈이다.
보통의 상식으로는 지구를 도는 인공위성이 고장나 궤도를 이탈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지구(대통령)가 궤도(여당 당적)를 이탈하는 바람에 미아가 된 인공위성(여당 파견 공무원)이 양산되는, 케플러의 법칙으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초유의 사태가 전개된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이 세계 언론인들을 상대로 '창조적 파괴'를 얘기한 저녁에 대통령의 당적 이탈로 인한 창조적 파괴의 '불똥'을 맨 먼저 뒤집어쓴 '인공위성'들은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 모여 대책 마련에 부심했다.
그러나 뾰족한 해답이 있을 리 없다. 승진 복귀는커녕 원래의 1·2급 급수대로 돌아갈 자리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이들은 현재로선 일단 부처로 복귀해 대기발령 상태에서 연말이나 연초 인사 때 새로운 보직을 받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공무원들 입에서 "대통령의 국정운영 실험도 좋지만 그 때문에 졸지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는 푸념이 나올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